세찬 바람은 나무의 뿌리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비록 지금 남북관계가 심하게 흔들리더라도 통일에 대한 열정과 균형 잡힌 시각, 건강한 안보관을 지닌 청년들이 있기에, 통일은 마치 기적과 같이 이 땅에 가만히 내려앉을 것이다.
권태오 민주평통 사무처장과 청년들이 만나 의견을 나누고, ‘통일을 위해 청년들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어떤 노력을 펼쳐나갈 것인가’ 함께 고민하는 이 자리도 분명 통일의 결실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는’ 하나의 과정일 테다.
권태오 : 최근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청년들이 통일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하지만 정부 정책과는 접근방법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학문의 뿌리는 대부분 전쟁의 위협을 받지 않는 강대국의 논리로 정리된 것들이에요.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다릅니다. 특히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에 대한 시각은 강대국의 시각 보다는 대한민국만의 특수성을 충분히 인지해야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개성공단을 열었을 때는 북한 핵실험이 없던 시절이에요. 핵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남한은 팀 스피리트 훈련도 하지 않았고 전술핵도 철수시키면서 남북이 대화를 통해 안정된 분위기로 가겠다고 했을 때 만들어진 거죠.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북한은 핵실험을 했고, 5차에 이르면서 전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핵실험 국가를 고집하고 있어요. 이처럼 통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지도부에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이 자명한 데도, 중단 없이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사드를 배치하는 이유는 북한의 무기체계가 갈수록 고도화·정밀화되어가기 때문이에요. 마하 8이상의 장거리 미사일을 잡을 수 있는 건 사드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모든 비행장은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사정거리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항공모함이 뜨지 않는 한 공중 전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요. UN군의 무비자입국이 가능한 괌·일본의 미군기지에서나 폭격기를 띄울 수 있는데, 이를 위해 개발된 북한의 무기가 바로 장거리 미사일입니다. 전쟁이 나면 한반도 뿐 아니라 그 범위가 태평양까지 확대되는 거죠. 그래서 사드는 일종의 ‘방범망’이라고 보면 돼요. 내 가정을 지킬 최소한의 방범망을 옆집에서 빌려다 설치한 것입니다.
권태오 : 통일문제는 북한 한 곳만 들여다봐서 안 돼요. 역사, 안보, 경제, 문화, 주변 각국의 외교정책까지 넓게 봐야 해요. 어느 한쪽만 보고 그것만 계속 주장하기는 훨씬 쉽겠지만 이는 무책임한 일이죠. 남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사항들을 다 고려해서 생각해야 해요.
안제노 :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통일에 대해 큰 포부를 가졌지만 취임식을 하기도 전에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튼튼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이른바, 안보에 방점이 찍히게 됐어요. 개성공단 중단은 그동안 ‘도발과 보상’의 악순환적 고리를 끊고 진정성 있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죠. 그렇다면 ‘안보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황주희 :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안보 불감증’이 만연해있는 것 같고, 그 부분에서 남남갈등이 발생하는 것도 매우 안타깝습니다. 이는 한반도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 같아요. 북한은 통일을 해야 할 상대이지만 동시에 주적인 존재예요. 그러다보니 통일을 강조하면 안보관이 약해지는 것만 같고, 반대로 안보관이 강해지면 통일이 멀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공존하는 거죠. 이러한 프레임을 깨는 건강한 안보관이 필요할 것 같아요.
허정필 : 2006년 호주유학 때 북핵실험 기사가 현지 신문 1면에 나왔어요. 주변에서 빨리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다들 걱정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고, 주식시장만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는 주식시장조차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 국방력에 대한 신뢰로 볼 수도 있지만, 너무 자주 반복되다보니 위협으로 인지를 못하는 거죠.
정수나 : 일반적으로 청년들은 남한과 북한을 다른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금 청년들은 태어날 때부터 분단국가였기 때문에 이 환경에 너무 익숙한 거죠.
권태오 : ‘삼시세끼’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면 마당 울타리 안의 오리새끼가 처음에는 강아지를 피해 뱅글뱅글 돌면서 도망 다니는데 나중에는 강아지가 오거나 말거나 무관심해지는 장면이 나와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위태로운 장면인데 점차 무감각해지는 거죠. 하지만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가 있다면 이를 추진해 나갈 수밖에 없어요.
조미영(탈북) : 북한은 항상 전쟁준비를 해요. 15살 때 군사체험을 하고, 일반 학생들은 비상재난경보가 울리면 수업을 듣다가도 방공호에 숨죠. 북한 도발은 주민 결집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전쟁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계속 심어주는 거예요. 반면 우리 국민들은 평소 전쟁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개성공단이나 사드배치와 같이 안보 관련 정책의 경우 국민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상세하고 구체적인 홍보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지철호(탈북) : 최근 한국에 지진이 발생하면서, 미리 지진 대피 훈련을 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많아졌는데, 왜 전쟁에 대해서는 민감하지 않을까, 그런 측면의 관심이 너무 소홀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안제노 : 안보문제는 통일부문과 같이 국가의 존속과 미래사회를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에요. 안보란 안전보장을 말하는 것으로 국가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필수요소들인 국민, 주권, 영토를 지켜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통일문제와 안보문제에 대해 균형감 있는 시각을 가지고 국가의 유지와 미래사회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나가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일구고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해 나가는 주역이 바로 청년세대이기 때문이죠.
정수나 : 청년들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이기도 하고 내부적으로는 취업 등 많은 고민을 안고 있기 때문에 통일 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통일이 된다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야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아요.
권태오 : 통일된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일까, 저도 궁금해요. 독일이나 예멘, 베트남의 모습과는 분명 다를 테니까요. 한반도라는 섬이 대륙으로 연결돼 유라시아 철도가 다니고 인구 규모가 늘어나고 GDP가 확장되는 등 수많은 분석이 나와 있는데, 과연 그것이 어떤 세상일까, 내가 거기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게 어떤 장면일지 궁금하더라고요.
허정필 : 현재 청년세대를 가리켜 ‘결혼과 아이, 집, 취업까지 포기한 4포세대’라고 하지만 통일은 청년들에게 충분한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해요. 1970년대에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룬 것처럼, 통일이 되면 제2의 고도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 테니까요. 여기에서 우리 청년들이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통일에 대한 미래상은 매우 긍정적일 것입니다.
채가혜 : 대부분의 친구들은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관심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장기적 불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통일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합니다. 일자리 정책의 실마리도 통일에서 찾을 수 있고, 처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엇보다 통일이 되면 유라시아 시대가 열리게 돼요. 육로를 통해 유럽까지 간다니 상상만 해도 설레요.
권태오 : 각종 통일 혜택을 교과서적으로 딱딱하게 나열하지 않고,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게 있다면 어떨까요? 웹진 ‘e-행복한 통일’의 웹툰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이처럼 통일의 장점을 만화로 표현한 웹툰집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남남북녀가 만나서 결혼한 뒤 평양지사로 발령받아 아이들을 평양에서 교육시키고, 아이들과 대동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는 장면, 명절마다 광주 시댁이나 함흥 친정에 가고, 여름·겨울에는 기차로 블라디보스톡이나 중국 하남에서 휴가를 보내는 일상을 보여준다면 영화 ‘명량’이나 ‘밀정’, ‘덕혜옹주’가 역사를 자연스럽게 국민들에게 알려듯이 국민들에게 통일시대상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안제노 : 그간 웹진을 진행해 오면서 웹툰 기획에 많은 신경을 써왔습니다. 통일 이후 미래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인기가 높거든요. 강연을 할 때도 웹툰을 통해 직접 통일된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면 시끄럽고 산만하던 아이들도 금세 집중하곤 해요. 그런 단편 단편이 모아져서 종합적인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지면 통일 인식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권태오 : 평소 웹진을 보면서 저도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있어요. 통일 웹툰에 대한 고민으로 요새 만화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웃음).
권태오 : 여론조사를 보면 ‘통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점점 줄어드는 걸 볼 수 있어요. 통일에 대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게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통일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지, 여기 청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황주희 : 얼마 전 모 기관에서 실시한 통일리더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함께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이전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이런 행사를 통해 통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들 해요. 우리 청년들에게는 ‘통일’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나 시간들이 더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교과에 ‘통일’ 과목을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통일과 관련된 지속적이고 정례적인 이벤트가 자주 있었으면 해요. 아울러 북한인권 등을 주제로 아이스버킷 챌린지 등의 운동을 펼쳐, 이 이벤트가 세계로 확산된다면 더없이 좋겠죠.
정수나 : 청년세대는 통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나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통일캠프, 북한관, 백일장, 공연 등으로 기획된 축제 형태의 통일 교육이 활성화되면 좋을 것 같아요.
안제노 : 얼마 전 민주평통 청년분과위원회에 13개의 청년 통일운동단체 회원들이 참가했는데, 회의 열기가 고조되더니 나중에는 이런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더라고요. 채가혜 씨의 경우 현재 전국을 순회하며 ‘2030 차 한 잔에 담기 통일이야기’와 같은 청년 통일대화나 강연에 참여하고 있는데, 호응이 매우 좋아요. 그런 장을 많이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채가혜 : 저는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의 한 사람지만 그런 강연을 통해 제가 통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많은 청년들과 통일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한 것 같아요. 덧붙여 말씀드리면 대학교에서도 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한 필수 수강과목이 개설되어 많은 청년들이 통일 문제를 진지하게 접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토크나 노래(랩), SNS 등을 통해 통일을 즐겁게 준비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많이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조미영 : 강연에서 탈북민을 직접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직접 마주해본 것과 말로만 전해듣는 것은 정말 다르거든요. 또 요즘 탈북민 중 VJ로 활동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안보관 등을 정확히 아는 친구가 방송을 한다면 젊은 친구들에게 통일을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지철호 : 지난 여름 태국에 난민봉사를 다녀왔는데, 이들의 열악한 삶을 보면서 한국에서 탈북민임을 숨기려 했던 친구들도 그런 생각을 접고 자신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었대요. 나중에 들어보니 자기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을 도우면서 많은 걸 느꼈다고 해요. 이처럼 북한주민들이 왜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지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하게 된다면, 통일의 필요성을 더 명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권태오 : 탈북청년들이 남한에 적응하고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정부에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들 스스로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도 어릴적 가정형편이 어려워 검정고시를 봐야 했는데,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면 이처럼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과정들을 참고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안제노 : 탈북청년들이 남한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배려와 함께 개개인 스스로의 노력 역시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바쁘신 데도 이렇게 시간 내주신 처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친구들은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청년들 중 한 명입니다. 처장님도 우리 청년들의 힘을 믿으시죠?
권태오 : 네, 그렇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잘 정리해서 통일정책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앞 세대는 광복을 이뤘지만 조국 분단을 허용했고, 우리 세대는 경제개발을 이뤘지만 평화통일을 이루진 못했어요. 이제 분단된 국가를 통일시켜서 하나된 국가로 후손에게 물려주는 과업에 청년 여러분들이 적극 나서주길 바래요. 통일문제에 청년과 여성들이 적극 참여하고 탈북민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정책적 배려를 검토하고 있으니, 완전히 충족되진 않더라도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 기자희 / 사진. 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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