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북한음식점에서 근무하는 정애 아주머니(함경북도 온성)와 옥선 아주머니(함경북도 무산)는 2011년에 직행으로 남한에 왔다. 둘 다 20대 후반의 자녀를 둔 데다, 남한에 온 시기가 비슷해 서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나누면서 산다. ‘남한에 오니 아파트도 크고 깨끗하고 좋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삶, 입에 맞지 않은 음식, ‘한 푼도 깎아주지 않는’ 마트와 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단다. 50~60년을 북한에서 살아온 만큼 생활습관을 고치기도 쉽지 않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말 못할 정도로 크다면서도, 남한에 함께 온 자녀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주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살고 있는 두 분의 삶이 아름답다.
북한사람들이 한국의 편의점이나 백화점, 대형 할인마트를 접할 때 대부분 느끼는 애로사항 중 하나는 물건 이름을 잘 모른다는 것과 가격을 흥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건 이름이야 좀 몰라도 직접 들고 가서 ‘이거 주세요’라며 말하면 되니까 괜찮다지만, 북한의 장마당에서처럼 물건 값을 깎는 건 절대 안 통해 ‘린색하다’고 느낀다.
“북한 상점은 상품이 별로 없다 보니 장마당에 가서 사는데, 고기든 채소든 무슨개(아무거)나 다 흥정을 해요. 내가 얼마밖에 없으니까 깎아 달라고 하면 해주거든. 아무리 비싸도 사람 맘이 오백 원, 백 원이라도 깎아주면 마음이 후해져서 사게 된단 말예요.”
남한도 예전에는 그런 문화가 많았는데 ‘가격정찰제’라는게 자리 잡으면서 전통시장이나 개인상점 외에는 가격을 정해놓고 파는 곳이 대부분이고,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는 장점도 있다며 설득해 봤지만 정애 아주머니는 ‘오랫동안 북한에서 밴 생활이 익숙하다보니 자꾸 깎게 된다’고 말한다. 반면 옥선 아주머니는 ‘한국 마트에 가면 물건이 찾기 쉽게 정리돼 있고 영수증이 있어서 반품하기도 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착 초기 냉장고에 대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집안은 더운데 냉장고를 열 때마다 시원하다고 느낀 옥선 아주머니는 자주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어~ 시원하다~’면서 냉기를 만끽(?)하곤 했다. 그 때문인지 덜컥 고장 나버린 냉장고. 새 냉장고를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할인마트에 가서 구경을 했다.
“막상 가보니 너무 멋있는 냉장고가 많더라고요. 그땐 가격표 볼 줄도 몰랐으니까 정신없이 둘러보다가 얼마냐고 물어보니 세상에, 너무 비싼 거예요. 가슴에서 털렁 돌이 떨어졌죠. 오늘은 그냥 보러 왔는데 후에 다시 온다고 살랑시(북한말, 슬그머니) 말하면서 나왔어요. 북한에서는 물어만 보고 안 사면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여기는 옷을 막 입었다 벗었다 해도 친절하게 대하더라고요. 내(나) 혼자 보고 싶다고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막 따라다니고. 그때 고장난 줄 알았던 냉장고는 한 며칠 꺼두니까 다시 잘 돌아가서 살 필요는 없었어요.”
정애 아주머니와 옥선 아주머니는 각각 북한에서 남편과 사별하고 20대 중반의 아들, 딸들과 남한으로 넘어와 함께 지내고 있다. 자녀들 모두 애 먹이거나 나쁜 길을 가는 경우는 없다고 자랑하는 두 아주머니. 그녀들 역시 탈북민 모임조차 잘 나가지 않고 여행도 거의 다녀본 곳 없이 직장과 집만 오가며 일을 한단다. 퇴근 후 잠깐 보는 TV가 유일한 소일거리. 그런데 몇몇 드라마나 뉴스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없는 현실을 만들어서 도리어 저런 것을 우리에게 배와주는(가르쳐주는) 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죄지은 사람이 값을 받는 건 꼭 있더라고요. 그건 좋은데, 남자들이 막 바람 쓰고(바람피우고), 뉴스에도 보면 온갖 범죄자들이 나오는데 ‘저런 거 따라하게 생겼네?’ 하고 생각한다니까요. 자식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 TV에 나쁜 건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정애 아주머니 뿐 아니라 북한에서 직행으로 온 사람들일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사람 사는 곳이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데도, 북한에서는 TV나 신문에 부정적인 보도가 대부분 걸러지다 보니 그런 사실을 몰랐다가, 남한 TV를 보고 ‘방탕한 곳’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북한은 먹고 살기 힘드니까 도둑질하고 사람 죽이는 거는 있지만 방탕하게 그런 건 없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긴 했지만, “북한에서는 좋은 거, 잘한 거만 TV에 나오니까… 그래서 우린 모르니까…”라면서 말을 흐리기도 했다.
옥선 아주머니의 아들은 북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개인선생을 맞차 가지고(개인교습을 통해)’ 텔레비전 수리 기술을 배웠다가, 탈북 후 전기공학과에 진학했지만 따라가기 쉽지 않아 휴학을 한 상태다.
“북한은 수리점이 없으니 무조건 돈 주고 기술 있는 사람들을 부른단 말예요. 그런데 여기는 고장 나면 새것 사서 쓰니까 그 기술을 쓸 수가 없는 거죠.”
현재 다른 학교 합격통지를 받아놓은 아들은 백화점에서 9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있다. 게다가 연애를 막 시작했는데 그 아가씨가 옥선 아주머니 맘에 꼭 든단다.
“북한사람들끼리 결혼하는 게 좋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한국 여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남한에 왔으니 여기 사람들을 따라가야 하잖아요.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한국 문화도 알려주고…. 이번에 항공대학, 철도대학에 원서를 냈기에 아들에게 ‘너 그런 대학이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 하고 물었더니 여자친구가 알려줬대요. 양가 집안끼리도 서로 알고 현재까지는 잘 되고 있는데 끝까지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애 아주머니 역시 한국 사위를 얻고 싶다고 했다.
“몇 년 전에 한국 남자를 만났댔는데, 우리 딸은 성질이 칼칼하고 남자는 좀 꽁한 성격이다 보니 성질(성격)이 맞지 않아서 헤어졌대요. 그 뒤로는 아직까지 없는데, 싸위(사위)를 얻자면 성실하게 일하는 남자, 여자 귀하게 생각해주는 남자, 그저 재산이 없어도 부지런히 벌어가면서 사는 거 말고는 더 바랄 게 없어요.”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어떤 사위가 인기가 많은지 물었더니 제대군인, 대학생, 군관, 사무직을 꼽는다. 반면 안 좋은 사위감은 술 먹은 사람, 농장일 하는 사람이란다.
“딸 가진 부모들은 농장에 안 보내려고 해요. 힘들고 쪼들리고, 자식까지 대대로 농장에 가야 하니까요.”
며느리감의 경우 교원이나 유치원 교양원(교사) 등 몇몇 전문직 외에는 대학을 나와도 마땅히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직업보다는 됨됨이를 많이 본다고 한다.
“높은 데는 바라 못 봐요(못 바라봐요). 같은 급을 만나죠. 안전원이면 보위부 사람들끼리 결혼하거든요. 우린 그저 착하고 부모 잘 모시고 일 잘하는 여자가 최고죠.”
정애아주머니는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한 다음’ 나중에 두 딸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손주를 돌봐주는 게 노후 계획이란다. 그런 정애아주머니를 부럽게 바라보는 옥선아주머니.
“딸이 둘이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북한에선 아들가진 부모들은 ‘국제고아’라고 했어요. 장가가면 여자한테 다 주니까. 며느리 잘못 얻으면 국수조리를 쓴다(구박 받는다)는 말도 있고요.”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옥선아주머니는 “아들 하나니까 내가 열심히 벌어서 모든 거 다 주고 며느리도 딸같이 잘 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옥선아주머니는 “대한민국이 워낙 여자 코 세우는(여자를 우대하는) 곳이라 아들을 자꾸 시킬까봐 걱정은 되지만, 밖에 나가 일 안해도 좋으니 며느리는 깨끗하게 집안일만 잘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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