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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Vol.45 |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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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통일 | 느낌 있는 여행

이 또한 사랑 이어라 전라남도 함평

처음엔 곧게 몸을 펴고, 고개마저 쭉 뺀 채 두리번거리는 품새가 찾는 이라도 있나 싶었다. 주위엔 새 계절이란 이유로 한껏 치장한 이들로 넘쳐나는데 그 흔한 잎사귀 한 장 없이 볼품없이 마른 몸뚱이를 드러낸 게, 참 보잘 것 없다 싶다. 뭐 꽃대가 시원찮으면, 만개(滿開)했다는 꽃송이라도 좀 볼만해야 하거늘…. 못났다 흉보다 한 걸음 물러서니 붉은 꽃잎이 시야에 들어온다. 다시 한 걸음 더 물러서니, 고만고만한 키를 자랑하는 꽃무리가 모여 있는 모습이 제법 귀엽다. 냉큼 한 걸음 더 물러서자, 굵은 나무둥치 아래 홍운(紅雲)이 자욱하다. 덜컹 심장이 뛰고, 이제는 그 모습이 아쉬워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마음도 사랑일까.

하늘아래 피어난 꽃구름같이, ‘용천사’와 ‘꽃무릇공원’

함평을 여행한다면 파스텔 톤 봄꽃 사이로 하릴없이 날개 짓 하는 나비를 떠올릴 것이다. 보통은 말이다. 그런데 구태여, 계절이 바뀌길 손꼽아 기다려 서해안을 따라 내려간 까닭은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담장 아래 피어난 붉은 꽃무리가 보고 싶어서였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꽃무리가 상징하는 애틋한 감정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 오롯이 그 감정이 지닌 의미를 떠올려 옛 기억을 뒤적이다 보니, 어느덧 새 계절의 출발선상에 서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상사화라고 하면 같은 산 너머 영광의 불갑사와 함께 첫 손에 손꼽힌다는 사찰은, 이맘때 가장 분주하다. 대웅전 돌 층계참 아래, 용이 승천했다는 샘을 품고 있어 용천사라 이름 지어진 사찰은 대웅전과 범종각, 웅진당, 요사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갑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이어진 숲길과 오래된 돌다리, 돌계단. 빛바랜 쪽빛 단청 위로 제 혼자만 색을 가진 듯 더없이 선명한 가을 하늘이 펼쳐진다. 작지 않은 규모임에도 아늑한 기분마저 들게 하는 사찰 안은 꽃무리가 진 후에도 늦가을의 산보를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가능하다면 낮 시간에 들려, 이곳의 자랑이라는 해시계 위의 그림자도 구경해보자. 또 용천사 바로 곁으로 꽃무릇공원도 위치해 있다. 아담한 호수를 옆구리에 끼고 야트막한 산책로가 이어져 있는 데다 쉬어가기 좋은 쉼터도 여럿이라 게으르게 걷기 좋다.

용천사와 상사화

사실 용천사나 꽃무릇공원은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담장 아래 펼쳐진 상사화의 선명한 이미지로 더 유명한 곳.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대신해 대지 위로 피어난 붉은 구름을 오래 지켜보다 보면, 어여쁜 낭자를 연모해 죽음에 이르렀다는 어느 스님의 순정이 한낱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쯤 애 닳게 그리워했던 이름 하나쯤은 있지 않겠나. 그 이름들이 모여 이곳에 꽃구름이 되었나 싶다.

그립고, 그리운 내 부모, 내 형제, 내 조국,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그런데 그리 그리운 이름에 어디 정인의 이름 석 자만 있을까. 연모의 무게가 다를 뿐 어머니, 아버지, 형제, 동무 그리고 내 나라, 나의 조국 부를수록 그리운 이름들은 수없이 많다. 아주 먼 타국 땅에서 시리게 불렀을 그리움들 역시 이곳에 피어있다.

3.1운동 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이 땅이 아닌 중국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 이 땅을 위해 생(生)을 바친 붉은 투혼이 흔적을 남긴 상해임시정부의 청사를 고스란히 재현해낸 곳이 함평에 위치해 있다. 너른 잔디 위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제일 처음 부러 찾아온 후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일강 김철선생 기념관실제 임시정부의 내부를 고스란히 재현해 낸 덕분에 백범 김구 선생이 사용하던 집무실과 빛바랜 태극기가 시선을 끄는 임시정부 회의실은 물론, 침실과 식당 등 개인공간까지 관람할 수 있다. 또 생활공간 반대편으로는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과 일제의 만행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독립운동역사관도 잘 조성되어 있다.

사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함평에 재현된 까닭은 다소 낯선 이름의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 선생을 기리기 위한 후손들의 노력 덕분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교통부차장과 회계검사원 검사장을 역임한 김철 선생은 전라도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독립운동역사관 곁으로 선생의 기념관도 위치해 있어, 함께 둘러보기를 권한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내부 / 일강 김철선생 사당 /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하염없이 고향을 그리워했을 그 마음들이 선연해, 시큰 콧잔등이 울린다. 눈치 없이 누군가 흘리는 말이라도 울고 있냐 물으면 민망해질 것 같아, 부러 입매에 힘을 꽉 주고 한껏 싱숭생숭해진 마음을 애써 추스른다.

쭈뼛대며 건넨 어떤 고백, ‘돌머리해변’

쉬이 가라앉지 않는 물기 어린 숨을 고르며, 꽃구름 아래 주워들었던 심장 닮은 돌멩이를 손바닥 위로 굴리며 인근에서 낙조로 제법 유명하다는 돌머리해변으로 향한다. 예상대로 항구를 끼지 않은 가을날의 서해바다는 한적하기 그지없다.

해변 뒤편으로 온기가 사라진 오두막만이 덩그러니 모여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해변 끝자락엔 도무지 그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전망대가 뻗대고 서있다. 쉬엄쉬엄 한참을 기웃거리며 해변을 걷다 보면 어느덧 새파란 벽과 마주하게 된다. 역시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새파란 벽 위, 식상한 문장이 어색하게 쭈뼛댄다.

‘인연이 반복되면 우연이 되고,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 된다.’
한때 어렸던 심장에는 낭만적으로 들렀던 문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땀이 차도록 내내 움켜쥐고 있던 돌멩이를 그 앞 모래 깊이 파묻는다. 내 그리운 이름들을 함께 묻는다. 때론 묻어두고 떠나는 마음도 사랑일 때가 있다. 그리고 남겨진 마음 위로 또다시 이 가을이 흘러간다.

돌머리해변

<글.권혜리 / 사진.김규성>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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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전체 기사 보기 기사발행 : 2016-10-05 / 제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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