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취업의 시즌, 봄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전공과 적성, 희망에 따라 직업을 선택한 후 입사원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기업에서는 서류심사와 면접 등을 통해 필요한 인재들을 선발하는 방법으로 취업이 이루어진다. 요즘은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져 회사에 다니던 직장인들이 다른 일터를 찾아 재취업하거나 자영업 또는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회사에 취직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우리나라에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북한도 남한처럼 주민들이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까?
북한주민들의 취업활동 실상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인사행정 시스템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북한에서는 인사권을 국가가 철저히 장악하고 있다. 이것이 남한과 다른 북한의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취업과 관련된 업무를 직접적으로 담당 처리하는 곳은 각 기관ㆍ기업체 소속의 인사과라고 할 수 있다. 국가기관의 인사담당 부서에서는 공무원 수요를 파악하고 필요한 인원을 선발ㆍ관리하는 등 인사업무 전체를 담당ㆍ수행하고 있다. 기업체들은 국가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인사담당 부서를 설치하고 해당 기업의 필요에 따라 인원을 선발하고 그들에 대한 교육과 승진 등 인사관리 업무를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간부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와 일반 주민들에 대한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설치하고 인사업무 전체를 노동당과 정부에서 장악 통제하고 있다.
북한에서 간부인사를 담당한 곳은 노동당 조직부 간부과와 간부부이다. 조직부 간부과에서는 전임 당 간부들에 대한 인사를 담당하며, 간부부에서는 행정 및 경제 간부들에 대한 인사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대학졸업생들의 경우에는 주로 간부과와 간부부에서 직업배치를 결정한다. 물론 간부부에서 행정 및 경제 간부들에 대한 인사를 담당하지만 임명과 해임 등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곳은 노동당 조직부의 몫이다.
북한 일반주민들의 직업배치와 관련된 업무는 각급 행정위원회 ‘노동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노동과’는 명칭 그대로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 즉 노동력을 관리하는 부서라는 것이다.
북한에는 한마디로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다. 북한의 모든 주민들은 본인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권리가 없고 당국에서 지시하는 일, 당국이 배치하는 곳에서 일을 해야 할 의무만 있다.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기 위해서는 이동이나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에는 그런 자유도 물론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에서 일반주민들의 직업과 관련된 행정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곳은 각급 행정위원회 노동과와 각 기관ㆍ기업소들에 있는 노동과라고 할 수 있다. 내각 노동행정성에서는 노동행정과 관련된 정책을 담당하고 도(직할시) 및 시ㆍ군(구역) 행정위원회 노동과에서는 해당 지역의 노동행정 업무를 직접적으로 담당 수행한다. 이를테면 시ㆍ군(구역)행정위원회 노동과에서는 관내 공장ㆍ기업소에서 필요로 하는 인원을 수시로 파악하고 해마다 중학교를 졸업하거나 군대에서 제대한 인원들을 지역관내의 각 공장ㆍ기업소에 배치하고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공장ㆍ기업소 노동과에서는 할당된 인원들을 각 직장ㆍ작업반에 배치하고 공장ㆍ기업소의 전체적인 노동력을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북한주민들은 본인의 적성과 희망에 관계없이 노동과에서 배치하는 직장에 가서 평생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생직장인 셈이다. 그래서 광산이나 탄광 등 힘든 일을 하는 직장에 배치된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편한 직장에 옮겨가기 위해 간부들을 상대로 ‘빽(권력)’과 뇌물상납 등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사실 북한에서 농사일만큼 힘든 일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에 나가 농사를 지어야 하고, 또 기계와 농약이 부족해 모든 농사일을 몸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농민’이라는 직업은 북한주민이라면 모두 기피하는 직업, 가장 인기 없는 직업이다. 아마도 북한주민들에게 직업선택의 자유를 준다면 농민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북한 당국도 이를 알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직업을 바꾸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고, 그 자녀들 역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를 이어 농사를 짓도록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서 농민처럼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는 직종도 없을 것이다. 한번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면 평생 농사를 지어야 하고, 농민의 자식 역시 농촌에서 태어났다는 죄 아닌 죄로 대를 이어 농사를 지어야 한다.
농민들의 경우 직접 농사일을 하지 않으려면 관리간부로 승진하는 것인데, 그것도 쉽지 않다. 농민의 자녀들은 군에 입대하더라도 군 복무기간 10년 동안 농사일을 잠깐 중단할 뿐 군에서 제대하면 그때부터 평생 동안 농사를 지어야 한다. 농민 자녀가 대를 이어 농사를 짓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농사와 관련이 없는 대학에 가거나 군 제대 후 탄광이나 광산 등에 집단적으로 배치되는 것 뿐이다.
흥미 있는 것은 권력과 돈만 있으면 본인이 원하는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북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돈이란 북한화폐가 아니라 외화를 말한다. 권력과 돈을 가진 특권층들은 그것을 악용해 본인 또는 자식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결국 권력과 돈을 얼마나 휘두를 수 있느냐에 따라 직업선택의 폭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우리나라와 같이 의사나 판사, 대학교수가 아니라 외화벌이 또는 외화를 만질 수 있는 직업이다. 외화벌이를 전문으로 하는 대외무역기관이라면 말 그대로 대박이고, 외무성이나 해외파견 등 외화벌이 또는 외화를 사용하는 부문에 근무하는 것도 선호한다. 그리고 북한 내부에서 외국물품이나 외화를 취급하는 업체 또는 상점에 근무하는 것도 좋아한다. 요즘에는 권력보다 돈이 모든 분야에서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는 곳이 북한이다. 특히 최근 북한에서는 돈이면 죽었던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뇌물이 성행하기 때문에 돈에 의한 직업선택의 폭은 날이 갈수록 넓어질 것이다.
과거에는 외화벌이기관을 통제하는 노동당의 간부나 보위원(우리의 국정원직원), 보안원(우리의 경찰), 검사 등을 선호했던 때도 있었다. 참고로 북한에서 판사는 검사가 구형하는 것을 그대로 선고하는 일만 하기 때문에 뇌물을 받아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예나 지금이나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원하는 돈을 수중에 넣을 수 있는 정도의 권력을 휘두르는 간부 특히 인사권을 행사하는 노동당 간부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파워를 휘두를 수 있는 간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은 권력기관보다 외화벌이기관을 더 선호한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직업선택의 폭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돈과 함께 권력도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지금도 권력기관의 파워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진제공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