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가운데 위치한 빌딩 12층의 한 회의실. 이곳에서 김동신 멘토(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와 김선희(가명) 멘티가 만남을 가졌다. 강남구협의회의 ‘자문위원 멘토화 시범사업’에 참가한 이후 세 번째 만남이자 두 번째 멘토링 시간이다. 회사에서 이뤄진 멘토링은 대학 경영학부 신입생 멘티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한 번에 서로 모든 것을 알려고 하거나 너무 많은 것을 주려는 성급함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민주평통의 ‘통일맞이 하나-다섯운동’ 중 멘토링사업에 관심 있는 자문위원들을 위해 이날 멘토링 과정을 대화체로 엮어봤다.
김동신 멘토 : 이제 곧 대학 입학인데 오리엔테이션은 갔다 왔어요?
김선미 멘티 : 오리엔테이션은 갔는데 새터(새내기배움터)는 못 갔어요. 오늘 멘토링도 있고 내일 저희 학교(하늘꿈학교) 선생님 결혼식이 있거든요.
멘토 : 포기하기 아쉬웠을 텐데 그 마음이 예쁘다. 남한 학생들과 학교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지요?
멘티 : 예. 남한 교회에서 북한 친구들과 같이 만나본 적은 있는데 혼자서는 처음이에요. 오리엔테이션 때는 그냥 강의실에서 잠깐 설명 듣고 바로 헤어졌어요. 아직 제가 북한에서 온 줄 모르는데 밝혀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고민돼요.
멘토 : 지금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소개하면 돼요. 조리 있게 잘 설명하면 친구나 교수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입학을 앞두고 나랑 선미 씨랑 올해 목표를 서로 공유해보려고 해요. 대학생활에 대한 포부나 기대감이 있을 텐데, 막상 다니다 보면 실망스럽거나 힘들 때도 있거든요. 그때 선미 씨를 견디게 해주는 것이 바로 목표에요.
멘티 : 목표를 세세하게 세우지는 못했어요. 사실 북한에 있을 때는 그냥… 진짜… 결혼하려고 했는데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그 꿈이 싹 없어지고 재무, 세무 쪽을 공부해야 겠다고 맘먹게 됐어요. 하지만 목표를 세우려 해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말도, 문화도 잘 모르고 대학교도 정말 어렵게 붙은 것 같아요.
멘토 : 나는 그동안 목표를 세워서 안 이루어졌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건설업이라는 것이 여자로서 결코 쉽지는 않지만 내가 스무 살 때 목표하기를 ‘마흔 살 안에 내가 건물을 세울 거야’했더니 진짜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나는 매년 목표를 세워요.
멘티 : 대학 공부가 많이 어려울 것 같고,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처음 부딪혀보는 상황이라서 일단 1학기 목표는 ‘학교에 잘 적응하기’로 정했어요. 경영학 강의의 50%가 영어로 진행된다는 말을 듣고 학원 수강신청도 했어요. 하지만 2학기 때는 봉사활동도 하고 싶어요.
멘토 : 봉사활동까지 생각했어요? 선미 씨는 마음도 따듯하구나. 올해 내 목표에도 봉사활동이 들어있어요. 다음 멘토링 땐 나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멘티 : 하늘꿈학교에 있을 때 토요일 마다 매주 봉사활동을 했어요. 요양원에 가서 청소하기 같은 거요. 학교선생님들과 멘토선생님에게 받은 사랑을 저도 나누고 싶어요. 대학교 가서도 하고 싶지만 일단은 기초 공부라도 좀 해놓고 시작해 보려고요. 여기(남한) 애들이랑 우리랑 성적이 진짜 많이 차이나거든요. 영어도… 저희는 영국식 발음을 배웠는데 갑자기 미국식으로 배우니까 더 안 되는 것 같아요.
이때 김동신 자문위원이 2014년도 목표를 세운 옥돌을 가지고 와서 멘티에게 보여주었다.
멘토 : 이것 봐요. 내 올해 목표에도 영어공부가 있어요. 중국어도 있고. 대학원 다닐 때 중국어 강의를 듣긴 했는데 기초 입문단계라 올해 목표를 중국어 배우기로 정했어요. 나중에 통일이 되면 비즈니스상 중국어는 꼭 필요해 질 거예요. 목표를 세운 뒤에 이렇게 돌에 새겨서 책상위에 두고 매일 보면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잖아요.
멘티 : 와~! 진짜 이거 무슨 돌이에요? 목표가 정말 구체적인 것 같아요. 저도 지금 가서 빨리 구체적으로 목표 세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계속 보면서 생각하면 정말 이뤄질 것 같아요. (눈을 반짝이며) 저 진짜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멘토 : 그렇게 생각해주니까 나의 ‘긍정에너지’가 선미 씨에게 전해지는 것 같아 기쁘네요. 멘토링은 북한에서 오신 분들 뿐만 아니라 남한사람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네요. ‘우리도 열심히 해야 겠다’ 이런 생각이요. 멘토링이라고 해서 어렵고 힘든 이야기는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문화활동도 즐기고 봉사활동도 한 뒤에 상반기 쯤 지나고 우리가 함께 세운 목표를 중간점검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멘티 : 그런데… 저에게 존댓말 쓰시잖아요. 북한에서는 있잖아요. 어른이면 당연히 말을 놔요. 존댓말 진짜 안 해요. 이런 상황을 많이 못 겪어봐서 좀 어색한 것 같아요.
멘토 : 나도 고민스러웠어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처음부터 말을 놓으면 내가 너무 격이 없이 막대하게 될까봐. 그래도 당장 말을 놓기는 좀 적응이 안 되네.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가 싱긋 웃으며) 그렇다면 내가 다음부터는 말을 좀 놓아볼까? 봉사활동 같은 거 같이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될 거야.
멘티 : 대학교 들어가면 책도 많이 읽고 싶은데 추천해주시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멘토 : 자기개발서 같은 거…. 너무 난해한 책 보다는 읽기 쉬우면서도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는 책이나 남한으로 넘어와서 성공한 탈북 인사들의 책을 선물로 주고 싶네요. 그리고 나중에 멘티 몇 명 모아서 그런 인사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멘토-멘티간 만남도 좋지만 탈북 학생들이 그 분들을 만나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글.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