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최고로 비효율적인 일을 하고 있어요.”
프로젝트 ‘에덴’(www.edengreening.com) 팀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하자, 돌직구(직설화법)의 답변이 돌아왔다. 단 한 명의 북한이탈주민의 취업을 위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한다. 남들은 취업스펙 쌓느라 바쁜 겨울방학 동안에도 팀원 모두가 출근도장을 찍으며, 좌절하고, 실망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기에 정신없었다. 그러니 이보다 더 비효율적인 일이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기에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연세대학교 프로젝트 팀 ‘에덴’. 누가 청춘을 가볍다고만 했던가? 3월 초봄,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진지한 이 시대의 청춘들을 만났다.
‘에덴’은 사회문제를 비즈니스로 풀기 위해 설립된 글로벌 대학생 연합 동아리 ‘인액터스 코리아(Enactus Korea)’의 연세대학교 소속 프로젝트 팀이다. 또한 지난해 환경부로부터 ‘환경형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았으며,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시행한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최종선발 된 바 있는 어엿한 예비 기업이다. 현재 ㈜한국도시녹화와 파트너십을 맺고 총 7명의 학생이 도시녹화사업을 통한 북한이탈주민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는 에덴의 대표인 경제학과 4학년 양순모 씨(사진 중앙)를 포함해 경영학과 오영주 학생(사진 좌측), 행정학과 박현지 학생(사진 좌측에서 두번째), 사회복지학과 전경은 학생(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영문학과 이연수 학생(사진 오른쪽) 등 총 다섯 명의 팀원이 함께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그저 사회에서 제대로 관심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만 생각했죠. 그러다 북한이탈주민, 그 중에서도 탈북청년들이 한국사회에서 잘 정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사회 정착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필수적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생각만큼 쉽지 않은 문제였다.
“주제가 무겁잖아요. 그러니 일 자체는 무거워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들어도 끄덕일만한 타당한 일을 고민하다 보니 옥상녹화를 떠올리게 됐어요. 도시에 버려진 공터를 이용해서 녹지를 만들고 텃밭을 가꾸는 일이라면 훗날 이 일을 하는 탈북청년에 대한 사회적 의식도 더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거죠.”
다행히 북한이탈주민 취업지원센터 등을 통해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과 맞는 지원자들을 만났지만 실제 일을 진행할 때마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말이 팀장이지 팀 내 잡일 담당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영주 씨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해 부족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손꼽았다. “창피한 말이지만 탈북청년들에 대해 너무 몰랐었어요. 같은 말을 쓰고, 같은 공간에 산다고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고방식도 문화도 차이가 컸어요.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만 컸던거죠.” 실제 직원 고용과 업무 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는 현지 씨는 가끔 자신들이 하는 일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됐다.
“신기하게도 서로를 조금씩 배려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러면서 회사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어떤 방향에 집중하는 것이 그분들을 더 도울 수 있는 길인지 고민도 하게 됐고요. 그렇게 정말 딱 한 계단 씩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됐어요.” 팀의 홍보부터 고용까지, 다양한 파트에서 활약 중인 연수 씨의 말에 순모 씨가 능청스럽게 덧붙인다. “정말 딱 한 계단씩이요. 절대 점프가 안돼요. 참고로 현재 4계단 쯤 올라간 것 같아요.”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맞춰가는 사이에 벌써 3명의 탈북청년이 에덴을 거쳐 갔다. 팀을 떠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지속적인 경제적 자립을 돕고자 하는 에덴으로서는 물론 팀원 개개인에게도 꽤나 속상한 일이다. 하지만 실망보다 기대감이 더 크다.
“아세요? 누군가에게 직업을 찾아준다는 건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에요. 사실 우리도 아직 직업이 없잖아요? 그런데 한 사람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움? 그런데 그 무거움이 싫지 않은 거죠. 기분 좋은 무거움이랄까?” 북한이탈청년 외에 지역아동센터 소속의 소외계층 아동들을 위해 텃밭프로그램도 만들고 있다는 현지 씨의 진지한 답변에 영주 씨는 ‘비효율성의 최고봉’이 자신들의 일이라고 덧붙인다.
“딱 한 사람을 위해 이 많은 사람들이 무보수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거잖아요? 비효율의 최고봉이죠. 하지만 우린 이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이 일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일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에요”
에덴 팀원들은 북한이탈주민들과 만나는 횟수가 늘수록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단다. “다른 친구들한테 에덴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섭지 않냐는거에요. 사실 잔소리도 우리가 더 많이 하고 우리가 더 무섭지, 그 친구들이 무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물론 이해는 간다. 팀원들 역시 에덴에 참여하기 전까지 북한이탈주민을 직접 만나거나 그 문제를 고민해 본적이 없었다. 그건 대표자인 순모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란 것을 일을 할수록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자리가 필요한 탈북청년들에게 기술을 알려주고, 동반성장할 수 있는 회사로 키워야겠다는 책임감과 욕심도 생겼어요.”
순모 씨가 책임감을 배운 것처럼 팀원들 역시 해답이 없을 것 같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고. 평소 그저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 영주 씨는 ‘마침내’ 사회적 책임감이란 것을 알게 됐고, 연수 씨는 회사 내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자신의 재능과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단다. 또 평소 겁이 많은 경은 씨는 자신의 믿음으로 타인을 설득하는 방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팀원 전부가 실패는 결코 끝이 아니란 것을 몸 소 깨우쳤다.
탈북청년과 함께하며 왜 북한이탈주민을 ‘먼저 온 통일’이라고 말하는지 공감하게 됐다는 에덴 팀원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통일은 융화다.
“통일은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온 통일’이라고 말하는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해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우리를 이해하라고 했지,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통일이 아니라 정말 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가슴부터 융화가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융화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저 소통하고, 이해하고 그렇게 조금씩 섞이다 보면 언젠가 서로를 평범한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마치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팀원 대부분이 대학 졸업반인 올 해 에덴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탈북청년도 2~3명 더 고용할 계획이고, 그리고 위해서 도시녹화사업 시공 뿐 아니라 관련 제품들도 곧 출시할 계획이다. 또 모든 팀원들이 에덴에서 계속 일하게 될지도 아직 미지수다. 대표와 창업멤버 두 명을 제외한 팀원들은 취업전선에 뛰어들 예정이기 때문이다. 따져 보면 에덴의 모든 것이 ‘예정’인 상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는 있다. 어느 자리에 있던,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해 고민할 줄 아는 이 청춘들이 맞이할 통일은 분명, 행복한 통일일 것이다.
<글. 권혜리 / 사진.나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