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오랫동안 교수 생활을 했던 한 북한이탈주민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40대 중반까지 살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본인의 나이는 ‘7살’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처음 취업문제에 부딪혔을 때 사회적 지위나 경력에 관계없이 닥치는 대로 ‘막노동’을 했다. ‘북한에서 펜을 놀리던 사람이 여기 와서 흑마대를 지니까 대단히 힘들었다’면서도 ‘움직이는 것마다 보수가 있으니 흥이 나더라’고 말한다. 일용직 근로자에서 공공기관의 정식 직원이 되기까지, 당당하고 적극적인 북한이탈주민의 취업성공기를 들어보자.
7년여 전 북한에 있을 때, 대학 교수직을 오래 했던 A씨. ‘로동’도 못해봤고 교도대 6개월을 제외하고는 군대도 ‘아이 갔다왔다(안 다녀왔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교수 경력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았다. A씨는 실망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건설현장에 가서 막노동을 시작했다.
“내 생각했지요. 북한에서 누리던 사회적 지위는 다 잊어버리자. 여기서 열심히 일 하니까 한 달에 200만 원을 벌었어. 북한에 있을 때 내가 남들보다 월급을 많이 받았어도 입쌀을 7kg 밖에 못 샀는데, 여기에 와서는 노가다를 해도 700kg을 사더란 말이지. 여기는 일하면 일하는 것만큼 보수가 있으니까 일하면서도 대단히 흥이 나더란 말이야.”
그러나 ‘인텔리’였던 A씨에게 ‘로동’은 너무 힘에 부쳤다. 그러던 중 북한에서의 경력이면 남한에서 기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3개월 정도 흑마대를 날라보니까 아니겠더만, 정신 차려야겠더만. 내가 왜 북한의 자격을 못 가지겠나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문제는 A씨의 경력을 입증할 길이 없다는 것. 처음에 해당지역 고용센터에 연락을 해봤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다. 그래서 통일부에 요청을 했고, 그 결과 관련 기관들의 협조로 A씨는 전문가들 30여 명 앞에서 시험을 치게 됐다.
“시험을 치려면 일단 책을 좀 봐야 되기 때문에 그날부로 일을 그만두고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봤는데 좀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포항공대를 가면 원하는 전공서적이 많이 있을 거란 말을 듣고 시험 전날 포항에 갔다.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공부를 하다가 아침 첫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는 A씨. 무사히 시험을 치렀고 마침내 금속기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난 금속기사가 최고인지 알았어. 근데 기술사가 있는 건 몰랐어. 기술사는 일한 경력이 있어야 딸 수 있는데 한국 경력이 없으니까 아이 된다더만. 나는 최고를 받자고 생각했지.”
A씨는 현재 공공기관에 경력직으로 정식 취업했고, 전공 관련 행정업무를 맡게 됐다. 경력이 쌓이면 기술사 시험도 칠 계획이다.
사실 A씨와 같은 경력을 가진 북한이탈주민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북한이탈주민들 대부분 자격증을 취득해서 남한사회에 취업하고 싶어한다. 탈북 2년차인 중년 여성 B씨에게 북한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물었다.
“우리야 시집오니까 직업이 뭐 있어요? 벌이할 게 없으니까 집에서 아(아이)나 키우고 돼지나 키우고 술이나 뽑았지요.”
2년 전 남한에 온 B씨는 요양보호사자격증과 조리사자격증을 땄다. 특히 기대를 했던 건 조리사자격증이었다.
“조리사자격증 따면 한국에서 능히 벌어먹을 수 있는가 했어요.”
그래서 자격증을 땄지만, 따도 그렇고 안 따도 그만인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는다. B씨는 인터넷 구인공고를 보고 식당에 취업해 현재 1년 넘게 열심히 다니고 있다.
그래도 남한에 와서 제일 행복했던 적이 언제였냐고 물었더니 ‘내 힘으로 배와(배워) 가지고 자격증을 취득할 때’ 였다고 한다. 특히 북한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운전면허증을 땄을 때가 최고였다고.
“당당하게 운전면허증을 따서 차를 몰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전해보니까 심장이 막 활랑활랑해요. 운전대에 앉았는데 운전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굴러가는 것 같고, 도로주행은 막 떨리고 무섭고… 한 번은 너무 떨려서 내려앉은 적도 있어요.”
실기 말고 필기시험 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물었더니 ‘모르는 단어는 물어보면 되고, 공부하면 되니까 필기는 첫 번에 합격됐다’며 웃는다.
“도로주행이 안 돼 갖고 돌아야 되는데 직진하지 않나 직진해야 하는데 중앙선으로 휙 들어가지 않나…. 그래도 악쓰니까(열심히 하니까) 되더라고요.”
다시 A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A씨는 한국으로 오기 전 중국체류기간이 매우 짧았다.
“중국에서 몇 년 살다가 남한으로 오는 사람들과 북한에서 바로 자본주의 세계에 온다는 것은 완전히 생판이거든(다르거든)?”
정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A씨였지만 ‘자본주의적’ 충격만큼은 매우 컸다. 특히 신용카드가 그러했다.
“북한에는 카드라는 게 없단 말이야. 카드를 긁어서 돈이 빠져나간는 건 완전히 개념이 없는 기라. 북한에서는 천 원을 주고 남새(채소)를 샀는데, 여기서는 무스개(뭐냐)… 마분지 같은 것을 탁 긁어서 돈이 빠져나가니까 이거 참 믿어 아니지드만(안 믿어지더만).”
주유소에서 3년여간 근무했는데, 돈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열이면 아홉이 카드를 사용하더라는 것. 처음에는 돈이 빠져나가는 게 당장 눈앞에 보이질 않으니 내심 불안해 했다고 한다.
“카드를 긁고 가는 순간 내가 협적(사기)에 걸리지 않는가? 내 돈은 아니지만 기름 넣고 카드를 내니까 정말 이 사람에게 돈을 받는가 의심을 많이 했어.”
A씨는 또한 ‘통장’이라는 개념도 없기 때문에 계좌이체로 돈을 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돈을 벌면 어디에다 모아두는 지 궁금했다.
사실 그동안 만난 북한이탈주민들 같으면 “돈이라는 게 뭐 몇 푼 돼요? 모을 돈이 있어야 모으지”라고 대답했을 텐데 A씨에게서는 뜻밖에도 ‘하밀통, 프랑클린, 짹슨(해밀턴, 프랭클린, 잭슨 - 달러 속 인물그림)’ 이야기가 나온다.
“다 건사하고 있지. 달러로 바꿔서 중요한 곳에 쿡 넣어놓지.”
“북한에서는 잘 사는 집만 털면 돈이 많이 나오겠네요?”라고 되묻자 이렇게 말한다.
“도둑놈 맞추면 다 털리는 거지. 도둑 맞출까봐 잘 사는 집은 창문에 다 살창이 있고. 도둑은 그나마 낫지 불나면 싹 망해요. 돈도 없고 집도 없어지고.”
그러나 도둑이 더 무서운가 화재가 더 무서운가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벽돌 어깃장을 빼서 그 안에 돈을 넣으면 타지 않는다는 의견과 그래도 타 없어지긴 마찬가지라는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비행기 타고 외국에 다닐 수 있는, 즉 여행의 자유가 있는 남한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북한에서는 돈이 있어도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기 때문.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또한 안다고 해도 남한과 명칭에 차이가 있다.
“북한에서는 헝가리라고 말하면 잘 못 알아들어. 뭐라고 하는가 하믄 웽그리아야. 덴마크는 단마르크, 루마니아는 로므니아. 러시아라고 해도 북한 사람들은 몰라. 쏘련, 쏘련이라고 해야지 알아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소련이라고 불렀는데 1991년에 소련이 붕괴되고 갈라지면서 지금은 러시아 연방으로 부르게 됐다고 설명해주었다. 또 ‘호주’라는 이름은 모르고 오히려 영어 명칭인 오스트레일리아라고 해야 알아듣는다고 해서 좀 놀랐다.
“북한하고 가까운 나라 이름이나 알지 다른나라 이름은 몰라. 여기(남한)는 돈만 있으면 미국 가겠습니까 일본 가겠습니까(갈 수 있잖아요)? 한국만큼 세계로 많이 나가는 민족이 없잖아요.”
C씨는 그래서 북한에 있는 자녀들에게도 해외 유학의 꿈을 키워주고 있다.
“우리 자식들이 ‘무서워서 남한으로 못 오겠어요’ 라고 말하면 이렇게 말해요. 한국에 오면 외국에 유학도 갈 수 있고 어느 나라에도 여행갈 수 있다고요. 한 번 놀라라고. 정말 그렇게 갈 수 있는가 생각하겠지요.”
C씨에게 혹시 비행기 타고 외국에 나가보고 싶은지 물었다. 그랬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나중에 통일되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땅에 한 번 가보고 싶을 뿐이라고. 북한에 있을 때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교통이 불편하니까 못 가봤다고 한다. 함경북도로 시집온 이래 한 번도 못 가봤다는 그녀의 고향은 강원도 철원(북한 소재)이다.
“일 하는 데서(직장에서) 서른아홉 살 먹은 애가 강원도 철원에서 왔대요. 내가 반가워하면서 너 철원 어디에서 왔어? 너 혹시 ‘○○리’라고 아니? 그랬더니 ‘○○리’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는 거야. 남한에도 강원도 철원이 있다는 걸 그땐 몰랐던 거지.”
<글.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