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 있어요. 기사에 한국말과 젓가락질 잘하는 외국인, 푸른 눈의 이방인, 이런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꽃샘 추위를 피해 카페 한 쪽에 자리를 잡자, 조근한 부탁의 말이 뒤를 잇는다. 그저 우연처럼 한국에 오게 됐고 정붙이고 살다보니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었을 뿐이다.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해외문화홍보원과 온라인 매체 영문에디터로 활동하다, 지금은 북한만화를 연구하고 있는 자코(Jacco Zwetsloot. 네덜란드)씨. 자신을 한국에 사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평범한’ 자코 씨와 ‘특별한’ 남북한 이야기를 나눴다.
조선 효종 4년, 태풍을 만나 제주도로 표류 한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의 한국 성씨는 남이었다. 남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코 씨가 내민 명함 속 한국 이름의 성 역시 남씨다. 남재구. 이제는 이 친근한 한국 이름이 더 편하다는 재구 씨가 처음 한국땅을 밟은 것은 1996년 봄이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란 재구 씨는 경기교육청이 선발한 원어민 강사로 파주의 한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8년 전, 북한의 개성 시와 인접한 파주에서는 간혹 북한선전물인 ‘삐라’(전단지)가 발견됐는데, 재구 씨가 소속된 학교에서는 등굣길에 학생들이 삐라를 주워와 상자에 넣으면 상으로 학용품을 증정했다고 한다.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일이니, 당시 한국생활을 처음 접했던 재구 씨에게는 그야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열쇠가 채워진 작은 상자였는데 그 ‘삐라’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서 하루는 교장선생님께 한번 만 보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허무맹랑한 내용이지만 선동적인 문구도, 빨간색의 현란한 색도 모두 신기했죠.”
더욱이 당시 재구 씨가 살던 마을에서는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북한방송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안보상의 문제로 북한방송을 차단하기 때문에 화질이 좋지는 않았지만 뉴스, 오락 등 북한의 다양한 방송을 볼 수 있었다고.
“물론 북한의 황당한 말들은 믿은 건 아니죠. 정치적, 이념적인 문제를 떠나서 그저 흥미로웠어요. 마침 그 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무조건 자기들이 옳다, 좋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요.”
교사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는 해외문화홍보원으로 자리를 옮겨 2년 여 간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렸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다만 호기심이 많은 재구 씨에게 정부기관의 제약들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는 했단다.
고민 끝에 홍보원에 사표를 낸 다음날 재구 씨는 중국 베이징의 영국회사를 통해 북한여행을 떠났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데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을 잘 아는 아내의 걱정을 뒤로 한 채 찾은 북한 땅은 일견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영국회사에서 파견된 외국인 가이드는 도통 아는 것이 없었고, 북한 가이드는 알아도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자신이 북한을 방문 한 뒤 두 달 만에 김정은의 존재를 공식 발표했음에도 당시에는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이 무조건 김 씨 일가에 대해 모른다고 잡아뗐단다.
진짜 북한을 보고 싶었던 재구 씨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다행히 김일성 광장 옆의 작은 서점에서 일반 북한사람들이 읽는 만화책 세 권을 구할 수 있었다. 내용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데다 왜곡된 사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흥미가 생겼다.
“북한의 서적은 읽기 매우 어려워요. 종이 재질, 글자 간격도 엉망이죠. 또 엄청 두꺼운데다 심지어 내용이 지루하기까지 해요. 그래서 대부분 만화를 즐겨 볼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북한만화를 통해서 북한의 세계관을 연구하는 셈이죠.”
가능하다면 언젠가 그 책들을 영문판으로 출판해 북한의 세계관을 비롯해 실제 모습을 다른 여러 나라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 번역도 도전 중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북한의 세계관이 궁금한 이유가 무엇일까?
“무조건 안 된다. 나쁘다고 말한다고 순응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안보나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 걱정하는 건 알겠지만 북한 문화를 직접 본다고 해도 거기에 동조할 남한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안 된다고 말하니까 더 호기심을 키우는 것일지도 몰라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짜 모습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틀리다 또는 다르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본 모습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남북한 관계와 비교하는 서독과 동독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을 했지만 서로의 다른 세계관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경제적, 정치적으로는 통일이 됐지만 아직도 사람들 마음에는 ‘베를린 장벽’이 있다고 생각해요. 경제적 통일보다 먼저 마음의 휴전선을 부수기 위해서는, 지금의 제가 하는 일과 같은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한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재구 씨는 통일은 향후 20~30년 안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화적인 단절이 커질 겁니다. 현재 이산가족 세대들마저 없어진다면 젊은 세대는 통일에 대해 더욱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것 같거든요. 호주와 뉴질랜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보세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남한에서 가까운 나라로 북한이 있다고 생각해 버릴지도 몰라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랐고, 지금은 한국에서 생활하며 북한만화를 연구하는 재구 씨. 아내마저 처음에는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해 신기해했단다. 하지만 재구 씨가 북한만화를 연구하는 이유는 흔히 주변에서 하는 오해처럼 특정 직위나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북한이탈주민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돕고 싶다는 것 정도가 재구 씨의 소박한 욕심이다.
“호주에 있을 때부터 하나원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남북한 문제와 북한이탈주민 뉴스가 나올 때면 꼭 등장하는 곳이니까요. 그때는 정말 뭘 모르고 하나원에 편지도 보냈어요.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요.”
올 3월 시작하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면 북한이탈주민을 돕기위해 하나원의 문을 두드려볼 계획이란다.
<글. 권혜리 / 사진. 나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