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시들기 시작하는 육신과는 달리 감정이란 놈은 세월의 깊이처럼 점점 더 딱딱한 갑옷을 입는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세 아이 키워 출가 시키고 보니 어느덧 이순을 넘긴지도 오래다.
이래도 흥, 저래도 헝.
모든 것이 심드렁해진 것은 연륜이 주는 자연스런 진통제일지도 모를 노릇이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 꽁꽁 숨어 있던 감정들이거늘, 이상스레 그 곳에 가려면 쿡쿡 무언가에 가슴이 찔린 듯 아리기만 한다. 2013년의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할 12월의 첫 주말. 바쁜 일정을 뿌리치고 차를 달린다. 고향집을 찾듯 해마다 찾아나서는 그 곳으로 향하자니 이미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굵게 패인 주름 사이로 흐른다.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첫 그리고 큰 인연. 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피를 나눈 동기인 큰 오라비를 잃어야만 했다.
손에 잡힐 듯 성큼 걸어가면 이내 도착할 듯. 오늘따라 금강산이 더욱 한 눈에 들어온다. 푸른 파도가 이리저리 너울거리고 솜사탕 같은 구름은 넘실거리며 넘어가는 북을 앞에 두고 발만 동동 구르시던 살아생전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나 코끝이 찡하다. 피난을 가다 큰 아들을 잃은 죄로 평생을 전쟁같은 죄책감으로 힘들게 사셨던, 마지막 날까지 편히 눈조차 감지 못하셨던 내 어머니. 지금쯤은 자유의 몸이 되어 오매불망 그리던 장손의 손을 잡고 이 곳 경기도가 아닌 그리운 북녘 땅으로 나들이 하고 계시겠지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6.25 전쟁 통에 오라비를 잃은 것을 알았다. 큰 오라버니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만이 신기했을 뿐 어린 시절 오라비를 잃은 아픔은 그저 생소한 감정의 일부였을 뿐이다.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고 세월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나는 알게 되었다.
고봉밥을 먹어도 허기지신다는 어머니의 그 심정을…. 매 해 몇 번씩이나 잊지 않고 통일 전망대에 오르셨던 어머니의 통탄스런 가슴을….
세상 누구나 별 다른 것 없는 인생사.
고만고만하게 살다가도 아픔이나 기쁨이 다가오면 먼저 생각나는 먹먹한 그 이름은 형제다.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고,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을 아마 형제를 둔 모든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얼굴을 보지 못하였어도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한없이 당기는 그 이름을 나는 겪어 보지도 못한 6.25 전쟁 속에 묻어야만 했다. 피비린내 나는 한국전쟁은 기억나지 않지만 통일전망대를 오르며 떨리는 어머니의 낯빛을 바라보며 그렇게 6.25 전쟁을 가슴속으로 겪어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목숨을 잃은 어리디 어렸던 오라버니를 품고 살아야 했고 그 세월은 허리가 잘려 버린 한반도만큼이나 슬프고 또 구슬펐다. 어머니 없이 홀로 거닐어 보는 통일전망대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묵념해 본다.
내 오라버니. 그리고 나의 어머니.
또한 6.25 전쟁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전사한 수많은 참전용사들과 무고히 희생된 더 수많은 이들이 이제는 고통 없는 아픔 없는 곳에서 부디 편히 쉬고 계시길 바래본다.
고향을 잃고 형제를 부모를 자식을 잃어 평생을 한으로 살아야 했던 그리고 여전히 아련한 그리움에 몸부림치실 많은 이들의 안부도 넌지시 홀로 건네 본다.
통일전망대에 오른 것이 부지기수. 허나 가슴은 항시 먹먹하다. 전쟁으로 인해 본디 하나의 땅이 둘로 나뉜 아픔도,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핏빛 소용돌이 속에 신음 한번 못하고 사라져 갔을 선량한 이들.
구국이란 막대한 사명감으로 장렬히 전사했을 참전용사들. 그 모두의 슬픔과 고통이 이 통일전망대에 서려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깊은 한숨만 절로 터져 나온다. 넓고 푸른 바다가 맑고 갠 하늘이 수려한 강산이 펼쳐진 이곳에 이 땅에 아직도 뼈아픈 전쟁의 아픔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메어온다.
더 서러운 것은 그 모든 아픔들이 잊혀 가고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나와도 한번쯤은 마주 쳤을지도 모르는 애타게 고향을 찾던 실향민들. 눈시울을 붉히던 이산가족도 전사자와 희생자의 가족들도 이제는 갈 수 없었던 고향을 찾아 먼저 떠난 가족을 따라 나섰을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을지 모른다. 그러니 어쩌면 그 고통과 아픔이 점점 퇴색해 가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였다. 백발이 성성하고 건강하던 무릎이 휘청이는 나이가 되어보니 항시 꺼내어 보고 싶었던 기쁜 일들도 더욱 쉬이 잊힘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 곳 통일전망대에 서서 6.25 전쟁이라는 잔인한 살육과 아비규환의 순간만큼은 꺼내어 떠올리려 애써본다. 그리고 가슴속으로 절절히 통일을 바라고 또 바라여 본다. 피를 나눈 오라비에 대한 연민 때문에, 고향을 그리던 어머니에 대한 효심에서, 국가를 위해 몸을 바쳤던 참전용사를 예우하고 싶어서 뿐만은 아니다. 60년도 훌쩍 지나버린 한국전쟁이란 서글픈 역사를 꺼내어 들춰보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 또 그 아이의 아이들에게 과거의 수순을 밟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일 것이다.
다음번 통일전망대에 오는 날을 손꼽아 본다. 날씨가 조금 더 따스해지면 이제 다섯 살이 된 큰 손자를 데리고 다시 들려야지 하고 스스로 약속한다. 60년, 70년, 100년이 흘러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생각하고 알아야만 할 우리의 역사 한국전쟁. 수많은 희생과 고통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피로 얼룩진 과거가 있었기에 이렇게 찬란한 시절을 살아갈 수 있음을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어서 빨리 통일이 찾아 와 전쟁의 아픔과 이별의 고통이 이제는 멈출 수 있기를….
저 높이 날아오르는 한 마리 철새처럼 아름다운 이 땅을 슬픔이 사라진 눈길로 국민 모두가 바라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