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이제는 신뢰·평화 구축기,
‘속도’보다는 ‘공정’이 중요

북한은 지난 2018년 4월 ‘전략적 결단’ 채택 이후,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에서 새로운 변화와 발전 단계로의 진입을 강조하며 이례적으로 두 차례의 북중 정상회담과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실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며 외교무대로 데뷔했다. 최근 2019년 신년사에서는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및 남북군사분야 합의서를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으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한 데 이어서 6·12 북미 공동성명에서 천명한 대로 북한은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당과 공화국 정부의 변하지 않는 입장이며 김정은 위원장 개인의 확고한 의지임을 재차 강조했다.

1992년 10월 22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제9차 핵통제공동위원회가 열렸다.

김정은 체제에 들어와 신년사에서 이처럼 불가침 선언과 비핵화를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흥미롭게도 과거 김일성 시대 1991년 신년사에서도 불가침 선언과 비핵화 선언을 언급한 바 있다.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년 2월),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1992년 3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1992년 5월), 불가침 부속합의서(1992년 9월) 등 일련의 남북 간 합의문이 쏟아졌던 1992년과 현 시점의 한반도 상황은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본 소고에서는 1990년대 초반의 불가침 선언과 비핵화 논의가 어떠한 맥락에서 진행되었고, 2019년 신년사에서 다시 등장한 불가침 선언과 비핵화 논의와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분석해 보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구축을 위한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

1991년~1992년의 불가침 합의와 비핵화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에 불가침 합의를 할 수 있었던 배경과 전개 과정은 1980년 고려민주연방 공화국 창립방안에 기초한 ‘남북 불가침 선언’ 주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김일성은 1988년 신년사에서 “북과 남한 사이의 불가침 선언은 현 군사정전위원회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권능을 높이고 중립국감시군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그 리행이 담보될 수 있것”이라며 정전위 중립국감독위원회와 중립국감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북한은 동시에, 1988년 9월 북한 정부 40돌 기념 경축보고대회에서는 ‘북남최고위급회담에서 북과 남이 그 누구의 구속이나 보증도 받지 않는 불가침 선언 채택’을 제안하고, 1990년 신년사를 통해 처음으로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안했다.

북한의 이러한 제안은 이전의 국회 중심의 회담에서 남북고위급회담으로 회담의 주체를 변화시킨 셈이다. 당시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북한이 외교적으로 열세에 놓이게 되자, 북한은 외교적 고립과 만성적인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남북 불가침 선언의 체결 의지를 지속해서 표명하는 한편, 북미 평화협정도 동시에 요구했다. 대내외적으로 절박한 북한의 상황은 1991년 신년사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났는데 1988년 제안했던 ① 남북 간 불가침 선언, ② 북미 평화협정, ③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 등을 제시했다.

우리에게는 ‘불가침 선언’ 자체가 신뢰 조성의 출발점이라며 남북 간 신뢰 조성에 주저없이 응할 것을 요구했고, 팀스피릿 합동군사훈련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불과 1년 전 1~2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군축문제 우선 해결’을 강력히 주장해 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북한은 1991년 신년사를 통해 ‘군사적 신뢰 구축 우선 해결’로 우리의 입장을 일부 수용하며 4차 고위급회담부터는 신뢰 구축과 군축의 동시 해결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2장 남북 불가침 사항에서는 9조 무력침략 금지, 10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11조 불가침경계선과 구역 명시, 12조부터 13조까지 5대 신뢰 구축 조치인 군 인사 교류, 군사훈련 통보, 군사정보 교환,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군사 당국자 간 직통 전화 설치·운영과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 실현, 그리고 14조에서는 불가침 합의 이행과 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남북 군사분과위원회를 구성토록 합의했다.

이후 1992년 9월 17일 불가침 부속합의서를 통해 무력불사용, 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 불가침경계선 및 구역, 군사 직통 전화 설치 및 운영, 남북군사공동위원회 및 군사분과위원회 임무 등을 합의했다. 한편, 북한은 미국에 하루빨리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조선에서 군대와 핵무기를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이 시기 북한은 남북 불가침 선언을 최우선 순위로 언급한 후 북미 평화협정과 남북 군축을 주장했는데, 이는 노태우 정부가 1988년 ‘7·7 선언’을 통해 민족 내부 거래로써 남북경협을 제안하고, 당시 미국은 북한에 ‘서울을 경유하지 않고는 워싱턴으로 올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기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을 북미관계 보다 우선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은 비핵화와 관련해서도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우리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할 것이라며 1992년 2월 20일 남북 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핵무기를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하지 않고, 핵에너지는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하며,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도 보유하지 않으며,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시행한다고 했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를 이행하기 위해 남북은 1992년 3월 18일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특히, 제2조에서는 핵통제공동위원회의 주요 임무로 7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①비핵화 공동선언 이행과 관련된 사항, ② 검증하기 위한 정보 교환, ③ 사찰단 구성·운영에 관한 사항, ④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한 사찰대상(핵시설과 핵물질 그리고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는 핵무기와 핵기지 포함)의 선정과 사찰 절차·방법에 관한 사항, ⑤ 핵사찰에 사용되는 장비에 관한 사항, ⑥ 핵사찰 결과에 따른 시정조치 사항, ⑦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행과 사찰 활동에서 발생하는 분쟁의 해결에 관한 사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1992년 팀스피릿 훈련을 중지했음에도 북한이 핵사찰을 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자, 남한은 1993년 팀스피릿 훈련을 재개하겠다고 했다. 이후 북한은 팀스피릿 훈련과 남북대화를 연계시킨다면 핵통제공동위원회를 비롯한 남북 당국 간의 모든 대화가 의미 없다며 협상 중단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이에 남한은 남북 간 상호 핵사찰 실시와 1993년 팀스피릿 훈련 재개를 철회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함으로써 1991년~1992년까지의 남북 간 불가침 및 비핵화 합의는 선언적인 합의로 끝났다.

2018년~2019년의 불가침 합의와 비핵화

북한은 2019년 신년사를 통해 2018년은 남북관계의 대전환이 일어난 격동적인 해로 남북관계를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진입시켰다고 평가한다. 2018년 4월의 판문점선언과 9월의 평양공동선언 및 남북군사분야합의서는 남북 간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으로 중대한 의의가 있다며, 이를 철저히 이행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의 전성기를 열어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1992년 불가침 합의 후 이행을 거부했던 과거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남북 간 군사적 적대관계를 근원적으로 청산하고 한반도를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지대로 만들려는 이행 조치로 북한이 요구한 사항은 90년대 초와 큰 차이가 없다. 2019년 신년사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한 이행사항을 보면, 첫째,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을 더 허용하지 말 것, 둘째,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 장비 반입의 완전한 중지, 셋째,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하에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 적극 추진 및 항구적인 평화보장 토대 마련, 넷째, 남북 간 협력과 교류를 전면적으로 확대·발전시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공고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1990년대 초 비핵화 검증을 남북 간에 하자고 했던 것에서 북미관계 발전과 철저히 연계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신년사에서 북한은 “이미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을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왔다”며 북미관계가 더 확실하고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나간다면 비핵화도 속도를 낼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기대한다고 언급하고 이후 김영철 위원장 방미로 2차 정상회담이 가시화되면서 비핵화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2019년 평화를 위한 군사적 과제

2018년 12월 12일, 남북 군사당국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차원에서 시범 철수한 비무장지대 내 GP(감시초소)에 대해 상호검증에 나섰다.

2018년이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그리고 남북군사합의를 통한 ‘평화 만들기’였다면, 2019년은 ‘평화 이행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남북은 신뢰 구축을 위한 첫걸음은 여러 번 있었지만,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 1990년대 초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좋은 합의도 이행하지 못하면 오히려 상호 불신만 높아질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합의에 기초한 실천과 이행을 공고화해 나감으로써 다음 단계에 대한 예측과 전망을 밝게 해야 한다. 2019년 평화를 위한 과제도 이러한 방향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사실, 남북이 추진해야 할 평화과제는 명확하다. 9월 평양공동선언 제1조의 내용, 즉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는 말 그대로 남한 지역으로만 제한되지 않고 북한 전 지역에도 해당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5조의 내용은 바로 제1조의 내용에 구속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018년 ‘평화 만들기’에서 2019년 ‘평화 구축기’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남북은 합의사항을 한쪽으로 치우친 왜곡된 해석 없이 하나하나 이행하면서 상호 검증을 통해 다음 단계로 차분하게 진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 구축기에서 중요한 점은 신뢰의 ‘속도’ 보다는 신뢰의 ‘공정’이다. 신뢰를 하나하나 쌓아가는 과정이 설계한 방향으로 올바르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항구적인 한반도의 평화’에 이르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 호 령 이 호 령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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