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 찾은 2018년의 남북관계
2018년은 남북관계에서 모처럼 활력을 찾은 해였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11월 말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고 그 결과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남북한의 두 정상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나갈 것에 합의하였으며, 평양공동선언에서는 이를 재확인하고 각각 국내외에 천명했다.
평양공동선언에는 판문점선언의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가 부속합의서로 채택되었다. 정상회담 이외에 다섯 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고 군사·체육·적십자·철도 및 도로·산림 등 여러 분야에서 실무회담이 개최되었다. 2018년 한 해 동안, 정치 분야 19회, 군사 분야 4회, 경제 분야 4회, 사회문화 분야 7회, 인도 분야 2회 등 총 36회의 남북회담이 개최되었고 20건 이상의 합의서·공동보도문이 체결되었다. 회담의 횟수로만 따지면 지난 2007년 55회의 남북회담이 열린 이후 11년 만에 가장 많은 회담이 열렸다.
남북한 차원에서만 적대와 불신이라는 거대한 빙하의 한 부분이 녹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70년 이상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이 열렸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공동성명 역시 북미관계 개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추진을 담았다. 미국의 국무장관과 북한의 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간에도 네 차례의 고위급회담이 열려 정상공동성명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였다. 2018년이 남북관계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1990년대 초부터 남북관계를 옥조여왔던 북핵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물론 북한이 수십 개의 핵탄두와 상당한 양의 핵물질, 그리고 단·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수백 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군사적 핵전략을 포기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비롯되는 심대한 안보 불안요인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또 2018년 하반기 이후 정상 공동성명의 구체적 이행 관련 북미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않고 한국의 ‘중재 역할’도 크게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남북한 사이의 대화와 관계개선 의지는 매우 높고 북미 간에도 대화를 통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희망의 메시지 담은 남과 북의 신년사
2019년의 시작도 수사적으로는 희망이 가득하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남북관계가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고 하면서 그 여세를 몰아 올해에 남북합의사항을 철저히 이행하여 “평화·번영·통일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자”고 적극적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하고 북한이 주동적·선제적 조치를 취했다면서 남북관계의 진전처럼 북미관계 개선에 적극적 의지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물론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관계 개선의 각각 상대방인 한국과 미국이 취해야 할 요구조건의 제시도 잊지 않았다.
2018년 9월 14일,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공동사설 포함)에 ‘비핵화’가 언급된 것은 지난 2011년 이후 8년만이다. 김정일은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 입장과 의지가 불변’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공언과는 달리 핵과 미사일을 3대 유산의 하나로 김정은에게 물려주었다. 권력 세습 후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한 김정은은 집권 6년 만인 2017년 11월 말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21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핵무기 병기화’의 실현을 천명하고 핵시험 전면중지, 핵무기 불사용, 핵무기·핵기술 이전 금지 등을 공약했다. 이어 4월 27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할 것에 합의했다. 최소한 과거 한국과는 핵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부터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또한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완전한 비핵화’로 ‘완전한’이란 수식어가 더해졌다. 이 수식어는 미국이 요구하고 한국도 공조해 온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그 변형인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었다.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한의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이라는 비전 아래 제시된 정책 구상을 빠르게 추진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북핵문제 해결과 항구적 평화정착,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신경제공동체 구현이 3대 정책 목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독일의 쾨르버 재단 연설에서부터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으로의 복귀를 강조했다. 그 두 선언을 선대의 치적으로 강조하며 남북관계의 모범으로 삼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게는 매우 호소력 있는 신호였다.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정권의 상호 접근은 남북관계의 매우 빠른 변화를 가져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장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행한 연설 장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나눈 악수 장면 등은 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기대 이상의 장면들이었다.
2018년 한 해 동안 남북관계에서는 정상회담, 고위급회담을 비롯하여 각종 실무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 회담이 비교적 체계화되었다. 개성공단 지역에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설치됨으로써 남북 간 상시협의체제의 단초가 마련되었다. 당국 관계의 회복으로 사실상 닫혀 있던 남북교류협력이 제한적이나마 재개되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남북한을 다시 접근시키는 시의적절한 장을 제공했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각종 국제경기대회에 공동 진출하고 남북 체육교류가 추진되었다.
남북 예술단의 상호 방문공연도 실시되었다. 남북 산림협력의 단계적 추진이 합의되고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북한 현지 공동조사가 실시되었다. 민간·지자체 차원의 교류협력도 일부 이루어졌다. 그러나 남북교류협력과 경제협력이 본격화되지는 못했다. 북핵문제가 근원적으로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재를 넘어 당사자로 적극 역할해야
문재인 대통령의 2019년 신년기자회견에 나타난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정책 구상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남북관계 발전, 그리고 한반도 신경제공동체 구현의 목표를 계속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첫째, 이를 위해 지난해에 이행되지 못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계속 추동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제도화를 향한 발걸음을 촉진시키겠다는 의사를 보여주었다. 마침 북한의 당 중앙위 부위원장 김영철이 워싱턴을 방문하여 지난 1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하고 미국과 북한은 2월 말에 2차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조치와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의 상응 조치를 두고 워싱턴에서는 고위급회담이,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에서는 실무회담이 열렸다. 한국의 역할이다시 한 번 중요한 동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다. 문재인 정부는 단지 미국과 북한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넘어 양자 간 협상을 촉진하고 타협에 이를 수 있는 제안을 강구·제시하는 당사자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가 의심 없이 납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체적인 조치, 예를 들어 북핵 동결과 신고·사찰·폐기 및 검증의 이행 일정 제시와 같은 조치를 준비하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남북 핵심 당국 간에 유지되고 있는 창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하여 제재 완화와 해제, 종전선언을 포함한 평화협정의 체결 일정을 준비하도록 한미 공조체제를 풀가동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북미의 조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촉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미중 간에 전개되고 있는 전략적 경쟁 심화 현실과 특히 북한을 대미 전략의 방책으로 활용하려는 중국의 전략에 유의해야 한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가 곧 경제’라면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하반기에 국제사회에 대해 외교를 펼쳤던 것처럼 대북제재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국 등 국제사회와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한 국제제재는 애초 북한이 합의와 약속을 깨뜨리고 핵·미사일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원인을 해소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제재도 당연히 완화되고 종국적으로 해제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합리적인 일원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지지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북한이 처한 입장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고 흡수통일을 추진하지 않으며 인위적인 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고 평화가 우선임을 강조하고 있다. 신년기자회견에서도 강조된 한반도 정책의 핵심 메시지는 평화다. 그러나 평화 건설은 일방의 선언과 조치로서만 이루어지지 않음을 국제 정치의 역사와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남북 간 평화를 통한 공동 번영의 실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북한은 남북관계를 쌍방 지향적으로 인식하고 운영하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북한 비핵화의 추동 전략은 바로 남북관계를 쌍방향의 관계로 만드는데 그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
셋째, 신년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평화의 북방 및 남방으로의 확장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동북아 경제, 안보 공동체와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 형성이 지향할 목표로 제시되었다. 이는 한반도 신경제공동체 구상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동북아지역의 경제 또는 안보공동체 형성은 그동안 여러 가지 형태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의 형성은 동북아철도공동체 형성의 추진처럼 북한을 포함시켜야 궁극적인 의미를 가진다. 남북 간 경제협력뿐 아니라 대륙으로는 중국, 러시아, 해양으로는 미국, 일본 등과 연계되어야 동북아에서의 공동체가 경제 차원에서는 물론 안보 차원에서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역시 필수조건은 북한의 비핵화 진전 여부이다. 동시에 북한이 동북아의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긍정적인 기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김정은 위원장이 ‘개혁의 지도자’로 변신할 수 있는 여부다. 과거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의 경험에서 한국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