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바라 본 개성공단과 개성시내 전경 남북경협의 프레임 전환으로
기회의 창 새롭게 열어야

남북경협에 대한 관심과 열망 드러낸 북한 신년사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를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확고히 돌려세우고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경이적인 성과들이 짧은 기간에 이룩된 데 대해 대단히 만족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올 한해는 남북 사이의 교류와 협력을 전면적으로 확대·발전시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공고히 하며 온 겨레가 남북관계 개선의 덕을 실지로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면과제로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였던 남측 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남녘 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도 현 단계에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즉, “남북이 굳게 손잡고 겨레의 단합된 힘에 따른다면 외부의 온갖 제재와 압박도, 그 어떤 도전과 시련도 민족번영의 활로를 열어 나가려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실현 가능여부를 차치하고라도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그의 큰 관심과 뜨거운 열망을 엿볼 수 있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눈길이 쏠린다.

그리고 향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어 남북경협이 재개된다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이 가장 먼저 시작될 것임을 예고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현재 상황에서는 개성공단도 그렇고 금강산 관광도 대북제재와 무관하게 보기는 좀 어려운 상황”이라며 “앞으로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북한의 비핵화가 풀려나간다면 가장 먼저 시작해야 될 것이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조건 없고 대가 없는 재개 의지 환영”

문재인 대통령 역시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북한(김정은 위원장)의 조건 없고 대가 없는 재개 의지를 매우 환영한다”며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위해 북한과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전제조건과 대가 없는 재개 용의’를 나타낸 데 대한 화답으로 해석된다. 이들 사업의 재개를 위해서는 북측이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사업 중단에 반발해 취했던 몰수·동결 조치의 해제 등이 필요하지만, 북측이 ‘조건 없는 재개’를 표명한 만큼 대북제재 완화라는 환경만 조성된다면 적지 않은 걸림돌이 없어지게 된 셈이다. 북측은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인 故 박왕자 씨 피격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후 2010년부터 남측 자산에 대한 몰수·동결, 현대아산 독점권 취소, 재산권 법적 처분 및 남측 관계자 추방 등의 일방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다. 2016년 개성공단 전면 중단 이후에는 개성공단 내 설비·물자·제품 등 남측의 모든 자산을 전면 동결하고 개성공단 지역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했다.

2018년 11월 19일, 금강산 관광 시작 2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 참석차 북한을 찾은 방북단이 구룡연 코스를 참관하고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월 9일 국회에서 열린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금강산 상설면회소를 완공하자면 북한의 금강산 자산시설에 대한 몰수·동결 조치를 해제하는 공식적 조치가 필요하다”며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조건 없는 재개 의지를 밝혀서 이런 걸 풀어나가는 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향후 남북경협이 재개된다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남북경협 추진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향후 여건이 조성되면 남북은 실무회담과 고위급회담 등을 통해 북측의 자산 몰수 및 동결 해제 문제뿐만 아니라 경협추진과 관련한 법제도 전반을 함께 논의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계기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의 경우 안정적 발전을 가로막았던 3통(통행, 통신, 통관) 문제와 관련해 연중 상시통행 보장, 인터넷 연결 등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성공단에서의 고질적인 노동력 부족 문제, 일방적인 법규 적용, 임금, 세금 문제 등도 투자환경 개선 차원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경협 추진도 모색해 볼 수 있게 되는 기회의 창을 열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남북경협은 각종 제약 아래에서 추진되었기 때문에 경협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경협이 재개된다면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남북경협 위한 조건 마련이 우선

남북한 정상은 이미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지만, 현시점에서는 우선 조건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관련 사안은 남북 간의 논의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 및 우리 내부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의를 통해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 재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지체와 이로 인한 미국의 대북제재 입장 고수다.

미 국무부는 개성공단 재가동 가능성이 거론될 때마다 공단 폐쇄 결정을 거듭 옹호해 왔다. 이는 미국의 양해 혹은 동의 없이는 개성공단 재개가 사실상 어렵다는 의미이다.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 조치 이후 미국은 모든 대북 수출·입과 신규투자를 금지하는 제재 확대 정책으로 선회했다. 유엔제재와 달리 미국제재는 모든 물자와 용역, 기술의 직·간접적인 대북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북한으로부터의 수입도 금지되며, 신규 대북 투자도 할 수 없도록 했다. 특히 제재대상자 또는 북한 무역과 관련된 외국 은행의 대리계좌 개설을 금지함으로써 남측 은행을 포함한 어떤 외국 은행도 미국의 독자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유엔이나 미국제재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자체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만, 금융거래와 신규 대북 투자, 북한 근로자 고용 등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 기업들의 대북 진출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의 대북제재에서 예외나 면제, 유예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북제재 강화법에는 ▲실종 미군 발굴 활동 등 미국 정부의 공식적 활동과 관련된 경우(예외) ▲대통령이 의회에 필요한 서면을 제출한 경우와 북한으로의 정보유통 증진과 민주주의적 한반도 평화적 통일 기여에 필요한 경우(면제)로 제한하고 있다. 또 제재를 유예하거나 종료하는 것은 대통령이 의회에 증명하면 가능하게 되어 있긴 하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 준수 검증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 ▲완전한 인권보장 등 사실상 충족이 쉽지 않은 조건들을 내건 상태다.

경협은 비핵화 추동의 지렛대

김정은 위원장이 더욱 안심하면서 비핵화를 추진할 수 있게 신뢰를 조성하는 측면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진전을 적극적으로 추동하면서도 단기적으로 경협 재개를 위한 제재 예외나 면제 조치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 남측 민화협 주최로 금강산에서 대규모 민간행사가 열린 것처럼 민간교류 행사를 더 자주 열고, 우리 기업의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현지에 투자한 시설의 점검을 위한 방북 등을 허용해야 한다. 또한 남북 철도연결행사,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개보수 등에 제재 예외 조치를 받은 사례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는 방안도 한미워킹그룹에서 논의하고 타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향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이후 북한에 유입되는 외화가 핵과 미사일 개발이 아닌 북한 주민들의 민생 개선과 순수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남북한과 국제사회가 함께 협의하고 대안을 찾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2018년 12월 21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외교부 청사 로비에서 워킹그룹 2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는 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협은 비핵화 진전을 추동할 수 있는 지렛대 역할 측면에서 주목해야 한다. 대북제재 완화 없는 경협 재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경협재개라는 지렛대를 통해 북한의 전향적인 비핵화 조치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자력자강의 정신으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2016~2020) 전략 목표 달성을 촉구하고 있지만, 제재 완화를 이끌어내고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아무래도 경제건설의 속도를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남북경협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조건과 대가 없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를 제시한 것에서도 어느 정도 읽힌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의 전략적 가치가 이전보다 높아진 것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진전된다면 초기에는 남북경협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중심으로 추진되겠지만 대북 제재 완화단계에 따라 새로운 남북경협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경협의 상징적 사업이 재개되면 남북한 정상이 지난해 9월 평양선언을 통해 합의한 서해경제공동특구, 동해관광공동특구 등도 본격적으로 조성될 것이다.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도 본격화되면서 그야말로 한반도에 새로운 경제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의미 있는 토대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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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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