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는 다가올 듯 말 듯 늘 저만치 있다. 평화로 화려하게 수사된 말들을 보면, 정작 평화라는 그릇 속에는 내용물이 비어 있다. 분단 정부 수립 이래로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론을 제외하고 평화는 통일의 필수조건처럼 혹은 수식구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평화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적은 없었다.
기적처럼 성사된 평창동계올림픽, 4·27 판문점 선언, 북·미 정상회담, 9·19 평양 공동선언에서 한반도 평화의 길을 제시했다.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무장의 상징이던 감시초소(GP)가남북의 중부전선에서 동시에 철거되는 등 전례를 찾기 힘든 합의 이행이 일어나고 있다. 철도·도로에 이어 항공 실무회의까지 개최돼 협력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8월 11일에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 노동자축구대회가 37℃의 폭염 속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11월 3일과 4일 금강산에서는 남북 민화협이 10년 만에 만나기도 했다. 이날 남북 민화협은 남북 민화협 결성 20주년 공동 기념행사를 치렀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단된 금강산 관광이 대북제재만 풀리면 곧바로 준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웬일일까. 이러한 변화들이 일반시민들의 삶과는 여전히 유리돼 있는 듯하다. 개성공단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여전히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국면에서 다양한 교류들을 진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일까. 우리 사회의 현안이 경제 문제에 쏠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성찰해볼 문제는 한국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북한에 대한 혐오감과 불신, 통일 허무주의 태도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방송계와 학교 현장에선 연일 통일이 머지않은 듯 각종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평화건 번영이건 통일 문제에서 일반시민이 배제되고, 이것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70년간 반공과 전쟁의 공포, 대북 적대감, 혐오증에 시달려온 내성은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으로 진행돼온 통일교육으로는 어렵다.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이해는 물론 우리 사회의 폭력적인 분위기, 불통 문제, 혐오, 전쟁, 나눔과 배려기피증을 극복하려는 평화교육이 선결돼야 한다, 전쟁과 분단을 겪은 나라에서 평화교육이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일랜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미국 등에서 수많은 갈등과 폭력을 극복하기 위한 평화교육이 이뤄졌다.
평화교육은 학교뿐만 아니라 기업, 군대, 시민, 시민사회 곳곳에서 이뤄져야 한다. 평화는 정치나 군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평화가 사라지면 여성, 어린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가장 처절한 삶을 살게 된다.
노르웨이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설파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철학과 한반도 방식의 방법 및 정책 등을 담은 평화교육이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 이뤄져야 한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방법, 상호 존중,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을 살리는 교육이다. 배우지 않고 어찌 의료인이 될 수 있겠는가.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교육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