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남북은 문산~개성 간 경의선 철도 연결구간과 동해선 철도 연결구간을 공동 점검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정동진역 부근의 동해선 철도 모습. 2월 25일 강원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 공존의 시대…
민간 대북지원·교류협력의 길 찾는다

북한의 변화에 맞춘 정교한 지원사업, 일상에서 평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교류협력사업을 상상하고 준비해나가는 것이 지금 당장 우리 시민사회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올해 2월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는 과거 남북한 관계를 옥죄던 낡은 패러다임을 걷어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남북 두 정상 중 어느 일방이 과거와 다른 방식, 즉 선의로 선물을 줬을 때 상대방도 다른 선물로 화답하는 열린 자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의의 선물은 곧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았던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만들어냈다.

지난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 앞에서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한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000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이라며 짧지만 울림 있는 역사적인 연설을 남겼다.

연설 내용대로 지금 한반도는 ‘대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 시민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대전환을 정치 지도자들의 결단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특히 민간 교류협력사업의 주요한 축인 대북 지원활동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10여 년간 대북 지원 행위를 짓눌렀던 ‘퍼주기’ 프레임과 반대로 잘사는 남한이 못사는 북한 동포를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동포애’ 프레임 모두 과학적,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언어에 불과했다.

이제 대북 지원은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공동 협력사업을 매개로 한 남북한 격차 해소와 균형발전, 이를 통해 평화 공존을 증대시키는 포괄적 평화 측면에서 계획되고 실행돼야 한다.

‘9월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당국은 상호 호혜와 공리공영의 바탕 위에서 교류와 협력을 더욱 증대시키고,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들을 강구해나가기로 했다. 인도적 개발협력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산림 분야, 협력 분야, 전염성 질병 유입 및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조치를 비롯한 방역 및 보건·의료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2005년 10월 14일 을지병원의 지원으로 새로 문을 연 북한 평양의 조선적십자종합병원 종합수술장에서 김주승 을지병원 신경외과학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이긍전 조선적십자병원 신경외과 과장(김 교수 맞은편)이 수술현미경을 보며 척추 디스크 환자를 함께 수술하고 있다.(사진 제공·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9월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좀 더 명확해진 것은 지난 20년간 진행돼온 인도적 대북 지원의 별도 영역이 공식적으로 사라지고 이제부터는 공리공영과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틀에서 대북 지원의 영역이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교류와도 다른 차원이다. 소위 대북 지원은 문화, 예술, 체육, 공동 행사와 같이 일반적 교류협력의 카테고리와는 다른 영역이다.

결국 대북 지원 행위를 앞으로 무엇으로 부르든 간에 지난 20년간 남북관계의 하나의 상징이었던 인도적 대북 지원이란 패러다임은 이제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종언을 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도 지원에 대한 북한의 수용 의지가 현격히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전과 같이 동포애와 인도주의 원칙에 입각해 잘사는 남한이 지원하고 못사는 북한이 이를 수용하는 일방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접근만으로는 더 이상 대북 지원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과거의 북한’에서 벗어나 ‘새로운 북한’을 상대해야 하고,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상력으로 대북 지원사업을 디자인해야 한다.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에는 이러한 환경이 생존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는 점에서 소위 ‘담대한 발상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

또한 역설적으로 남북관계의 질적인 변화가 곧바로 민간 교류의 확대·발전으로 이어진다고 낙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남북관계의 근본적 특성상 대북정책과 통일 논의를 국가가 독점하는 상황이 더욱 강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시민사회가 독자적 활동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가 시민사회에 제기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앞으로 대북 지원 활동이 그간의 ‘인도적 대북 지원’ 활동과 전혀 별개의 프로세스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자 지원과 인적 교류라는 상호 협력의 기본 틀은 여전히 유지된다. 핵심은 대북 지원의 방향성이다.

그동안 대북 지원이 인도주의와 동포애를 원칙으로 삼아 추진됐다면, 앞으로는 대북 지원 활동이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남북한의 격차 해소와 균형발전, 이를 통해 평화 공존을 증대시키는 포괄적 평화 측면에서 계획되고 실행돼야 한다. 즉 앞으로 대북 지원 활동의 첫 번째 방향은 ‘남북 간 격차 해소와 균형발전을 통한 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실현’이 돼야 한다.

인도 지원에 대한 북한의 수용 의지가 현격히 약화됐지만 북한의 인도적 상황은 여전히 복합적 위기 상황(Complex Emergency)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유엔 북한팀(UN HCT)이 올해 초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전역에서 1030여만 명이 지속적인 식량 불안정과 영양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북한 인구의 41%에 이르는 수치다.

2008년 북한 정성의학종합센터에서 직원들이 남측 기술자로부터 약품 분석기기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 제공·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또한 ‘세계기아지수 2017’에 따르면 북측 어린이 170만 명이 치명적인 질병 위험에 노출돼 있고, 생후 6~23개월 된 어린이 중 최소 필요식을 섭취하는 비율이 26.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5세 미만 발육 부진 아동 비율은 27.9%로 3명 중 1명이며, 량강도 지역에선 무려 31%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북한 아동의 영양 상태는 과거에 비해 호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유엔의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의 달성 기준과는 여전히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래의 주역세대인 어린이들이 서로 가속적으로 불균형적으로 성장해가고, 한반도 남북 주민들의 삶의 질이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상황에서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란 구호는 자칫 공허할 수 있다. 결국 ‘격차 해소와 공동 발전을 통한 인도주의 공동체’가 밑받침이 돼야 지리적 분단만이 아니라 마음의 분단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민간 분야 자율성 · 독립성 보장해야

대북 지원 활동의 두 번째 방향성은 ‘지속 가능한 개발협력의 본격적 추진’이다. 북한이 우리 민간단체의 활동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동안 정권 변화에 따라 민간의 사업이 좌지우지돼 지속성과 예측성을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 동안 민간단체들이 힘과 역량을 상실함에 따라 북한이 예전과 같이 남측 민간단체들을 중요한 파트너로서 대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민간 차원의 활동이 다시 힘을 얻으려면 민간의 활동은 남북 간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 지원과 교류협력에 있어 민관 분리 접근을 통해 민간 분야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앞으로 대북 교류협력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새로운 경제 발전 전략의 목적과 노선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보이는 북한의 경제 발전 전략은 아시아의 또 다른 경제 발전 모델을 만들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근 6년 만에 올 10월 이후 평양을 세 번 다녀왔다. 세 차례 방북기간 동안 경제 발전에 대한 북한의 열의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도심 거리의 구호도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 ‘과학 중시, 인민 중시’ 일색이었다. 지금부터 북한과의 협력사업은 바로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고 변화를 더욱 촉진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물망같이 촘촘한 대북제재가 엄존하는 현실에서 본격적인 협력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은 정부와 국제사회, 시민사회의 협력 하에 북·미 간 협상이 원활하게 타결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내는 일이 우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에 맞춘 정교한 지원사업, 일상에서 평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교류협력사업을 상상하고 준비해나가는 것, 이것이 지금 당장 우리 시민사회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이 승 현 강 영 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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