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맛이 연하고 깨끗하며 거품성이 좋은 대동강 1번 맥주는 북한에서 인기가 가장 높다(위). 북한에선 캔맥주를 ‘떼기식 통맥주’라고 부른다. 대동강 떼기식 통맥주는 2017년부터 생산됐다. 2017년 7월 17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린 ‘피스코리아(Peace Korea), DMZ 자전거 평화 대행진’에 참가한 재외동포와 국내 청소년들이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한반도 지형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평화교육의 세 기둥
상상하기, 공감하기, 용기내기

평화 문화는 일상의 권위주의적이고 갈등적인 문화적 요소를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문화적 요소들을 개발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의 바탕 위에서 형성될 수 있다. 평화를 준비하는 평화교육은 학생들에게 상상하기, 공감하기, 용기내기의 능력을 함양시켜 평화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평화와 평화교육이 이 시대의 화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것이 낯설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일과 통일교육 때문에 평화와 평화교육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평화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순진한 학자의 철없는 투정정도로만 받아들여지던 때가 오래된 과거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2014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평화와 통일은 대등한 관계 속에서 조명돼야 한다는 자문단의 요구를 수용해 발주한 ‘평화 ·통일교육 추진전략 연구’에 참여하면서 모처럼 평화교육을 고민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기회였다.

2018년 봄 민주평통에서도 평화 관련 책자를 내자고 했다. 상임위원임에도 불구하고 분과위원회에 참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벌로, 대표 집필이라는 중 책을 맡고 많은 시간을 고민하며 보냈다. 그 후 수 차례의 집담회를 진행하면서 생각을 가다듬었고, 소책자 <평화는 함께 만드는 거야>를 완성했다. 평화는 어느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것이며, 혼자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평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평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가’ 등의 고민을 하게 된다. 평화는 과연 교육을 통해서 실현 가능한 것인가. 우리가 평화교육을 한 적이 있는가. 평화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세 가지 키워드가 떠오른다. 그것은 상상, 공감, 용기이다. 이 덕목과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평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간다.

상상, 공감, 용기가 평화 만들어

평화는 상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팝송 이매진(Imagine)은 반전·평화를 소망하는 대표적인 노래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노래는 전쟁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살인과 죽음, 그리고 불평등도 없이 전쟁을 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 사람들이 더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북한과 미국의 갈등으로 핵전쟁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평화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를 말하고 생각하기 어려울 때에도 학생들은 평화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평화 지향적 사고를 할 수 있다.

평화는 공감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게르니카 마을의 아픔을 그려 유명하지만,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한국에서 전쟁 중 벌어진 양민학살을 그림으로 그려 전쟁의 잔혹함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자신이 사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삶과 행복, 아픔 등을 공감할 수 없다면, 다른 문화의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고 그로써 평화가 가능해지는 것은 바로 우리의 공감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 의장은 “아무리 좋은 합의를 내놓는다 해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바로 폐기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 비준이라는 법적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월 25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에서 민주평통 함평군협의회와 파주 지역 어린이들이 한반도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거리를 상징하는 나비를 날리고 있다.

평화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던 차별적 제도를 용기 있게 거부한 미국의 로자 파크는 이후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그녀의 용기가 수많은 흑인들이 그날 이후 385일 동안 자리 양보 거부운동에 동참하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차별적 제도를 폐지시켰다.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차별, 지역과 학벌에 따른 차별 등 어떠한 차별에도 과감히 ‘아니오’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구조적 폭력이 사라지고 일상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왕따 문화에 대한 저항, 미투 운동, 갑질에 대한 저항 등도 일상의 평화를 위해 필요한 용기 있는 행동들이다.

상상, 공감, 용기를 어떻게 평화교육에 도입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평화교육을 수행한 경험이 일천한 것을 인정한다면, 모든 방법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앞으로의 평화교육을 위해서 모든 실험적인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중·고 학생이 함께 있는 토론대회에서 평화를 강의한다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필자의 경험으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서 학생들이 평화의 가치에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는 것에서부터 평화교육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평화는 모두가 잘 아는 주제인 것 같지만 또 모두가 잘 모르는 주제이기 때문에 평화교육의 내용과 방법은 학생 친화적이어야 한다.

강력한 무기가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던 알프레드 노벨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도 결국 무기가 평화를 담보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노벨은 자신이 번 돈으로 노벨상을 만들면서 평화운동과 관련 분야에서 귀감이 되는 이들을 선발해 평화상을 수여케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과학자로서의 업적이 결국 인류를 파멸케 할 수도 있는 핵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는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그가 버트런드 러셀과 반핵을 위한 공동선언문에 서명을 함으로써 강력한 무기가 평화를 담보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강력한 무기가 평화 담보하지 않는다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퇴임연설에서 전 세계의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것이 군산 복합체(軍産 複合體)라고 할 정도로 소수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따라 평화가 위협받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 밖에도 군부독재, 통제되지 않은 국가 폭력 등도 우리의 평화를 위협한다.

일상의 차별과 불평등도 우리의 평화를 위협한다. 이러한 것들을 온전히 들어내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과거의 실수를 늘 경계함으로써 평화를 위협받지 않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광주민주항쟁과 4·3사건을 비롯해 국가 폭력에 의해 민간인들이 피해를 본 것이 있다면 과거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출발에 해당된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20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돌 행사에 참가해 “독일은 세계가 더 평화로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밝혔다.

그녀는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그것도 자국이 항복문서에 사인했던 콩피에뉴 숲에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며 미래지향적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메르켈 총리는 201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영상 메시지에서 “역사에 종지부는 없다”고 선언했고,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 해방 70년 기념일에 앞서서는 “나치의 만행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아무리 좋은 합의를 내놓는다 해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바로 폐기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 비준이라는 법적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4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형 판문점 사진을 배경으로 어린이들이 악수를 하고 있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도 1970년 12월 폴란드의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독일인들과 유대인들 모두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을 멈추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쉼 없는 성찰과 반성을 통해서 우리 삶의 비평화적 요소들을 제거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2015년 12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합의를 둘러싼 일본의 태도는 독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튼튼한 안보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만을 전부로 삼을 수도 없다. 비무장지대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곳의 무장도와 긴장도가 왜그리 높은가. 분단에 의한 남북한의 경쟁은 비무장지대의 왜곡을 심화시켰다.

수많은 전방 감시초소와 지뢰들은 남북한의 단절의 상징이었다. 이제 남북이 시범적으로 전방 초소를 폐쇄하고 지뢰를 제거하는 것은 단절로부터의 복원을 위한 시작이고, 평화의 시작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담보되지 않더라도 남과 북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군축을 진행하는 것은 평화교육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일이다.

선악 이분법 세계관 아닌 공존 패러다임 필요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 디터 젱하스의 이 경구는 평화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 속에서 평화는 사람들이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정보의 부족으로 생긴 오해 등에 의해 위협을 받아왔다. 국제관계나 남북관계나 개인의 일상에서나 나와 관계하는 대상을 악마화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서로 만남을 지속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신뢰를 쌓아갈 수 있다. 따라서 평화로운 관계 맺기를 위해서는 과거의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이 아닌 공존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평화는 일상의 문화 속에서 배양돼야 한다. 평화 문화는 일상의 권위주의적이고 갈등적인 문화적 요소를 폐기하고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문화적 요소들을 개발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의 바탕 위에서 형성될 수 있다. 대화를 통해서 갈등을 해결하려는 태도, 타인의 입장과 감정을 고려하는 역지사지의 마음가짐, 과거와 현재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자세는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평화 문화는 이렇게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승인뿐만 아니라 다름을 존중하는 포괄적인 것이다. 결국 평화를 준비하는 평화교육은 학생들에게 상상하기, 공감하기, 용기내기의 능력을 길러줌으로써 평화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박 경 석 송 영 훈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카카오톡 아이콘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스토리 아이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