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속도감 있는 신뢰 조성
안정적인 이행이 관건

남북 협력은 북·미, 한미 채널과 조화를 이뤄가야 할 ‘전략적 삼각관계’의 일부이다. 이 트라이앵글은 한반도 냉전구조를 평화구조로 전환할 틀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북한과 미국 간의 대결로 국민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고, 정부가 제시한 ‘평화로운 한반도 구상’은 시작부터 좌초 위기를 맞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2018년 한반도 정세는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이다.

2018년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가는 역사에 획기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이 선도해 전쟁 위기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을 향한 관계로의 제도화를 추구하고 있고,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고 이를 남북 군사적 신뢰 구축과 병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이런 변화를 1년 만에 전개한 것은 국민들의 높은 평화 의식과 정부의 추진력이 일차적인 힘이 됐고,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과 국제사회의 지지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빠른 정치적 신뢰 회복

통일부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업무 현황보고’ 자료에 따르면 올 한 해 남북관계를 ‘관계 개선 및 협력의 확대’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남북 회담 차원에서는 ▲남북 회담 재개 및 체계화 ▲남북 간 상시 협의체계 구축 ▲남북 간 합의 제도화 등으로 평가하고 있다.

남북 회담 재개 및 체계화 측면에서 되돌아보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결정이 계기가 됐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들을 참가시키기로 결정하고, 이를 계기로 1월 남북 고위급회담, 2월 동안 두 차례 열린 북측 고위급 대표단 방남 및 3월 남한 특사단 방북 등이 이어져 남북 정상 간 대화를 위한 여건이 조성됐다.

판문점 정상회 담은 지난 10년간의 남북 대결을 청산하고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새로운 협력의 길을 닦고,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통한 비핵화 협상의 길을 연 쾌거였다. 남북은 이어 군사, 체육, 적십자, 철도 및 도로, 산림 등 분야별 남북 실무회담을 잇따라 열어 남북 공동선언 이행 방안을 구체화하고 후속 조치를 추진해왔다. 2018년 10월 기준으로 남북 회담이 총 29회 성사됐다.

한편 9월 14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에 개소해 남북 간 24시간 365일 소통시대를 개막했다. 남북 간 상시 협의체계를 만든 것이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 정상회담 시 김 위원장에게 서울·평양 상주대표부 설치를 제안한 만큼, 향후 남북관계 발전의 추이를 보며 이를 다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1년 내에 기존 대결 상황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고 협력관계의 확대는 물론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9월 14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서 참석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제 남북관계는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길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가며 공영과 통일에 대비하느냐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것이 짧은 시간 안에 가능했던 것은 두 정상 간 신뢰를 중심으로 남북이 정치적 신뢰를 구축하는 데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다만, 남북 간 정치·군사적 합의를 안정적이고 제도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국내 법적 조치가 정당 간 입장 차이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폭넓은 군사적 신뢰 구축

2018년 남북관계 개선 및 발전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정치적 신뢰 구축이 군사적 신뢰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시기 남북관계가 개선됐을 때는 경제적,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신뢰가 높아졌지만, 군사적 신뢰 구축은 보기 어려웠다. 가장 민감한 군사 영역은 뒤로 미루는 선이후난(先易後難)의 자세가 작용한 탓이기도 하거니와, 북핵 문제의 엄중함도 제약 요소로 작용했다.

그에 비해 이번 경우는 북한 최고지도자에 의한 ‘완전한 비핵화’ 공약과 부분적인 관련 조치, 그리고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과 같은 상황이 호조건으로 작용했다. 한국은 재래식 전쟁 재발 방지와 남북 간 전반적인 협력의 보장, 그리고 비핵화 견인 등을 배경으로 군사적 신뢰 구축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북한 역시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이 긴장 완화를 가져오고, 그것이 경제 건설 총력 노선에 유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9월 19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한 직후, 문 대통령이 평양 5·1경기장에 모인 수만 명의 평양 시민들에게 “오늘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 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정치적 신뢰와 군사적 신뢰의 시너지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2018년 세 차례의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남북관계 발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정착에 합의했다. 특히 평양 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남북의 군 책임자가 ‘판문점 선언 군사분야 이행 합의서’에 서명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평양 공동선언은 군사적 신뢰 구축 및 일부 운용적 군비통제의 이행과 군사공동위원회의 가동에도 합의했다.

위 군사분야 합의서는 적대행위 중지, 평화지대화, 평화수역화, 남북 교류협력의 군사적 보장, 군사적 신뢰 구축 노력 확대 등을 담고 있다. 11월 말 현재까지 남북은 상호 비방 중단 및 선전수단 철거를 시작으로 통신선 복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적대행위 중단, 비무장지대(DMZ) 내 시범적 공동 유해 발굴, 한강 하구 공동이용수역 조사, DMZ 내 감시초소(GP) 시범 철수를 이행했다.

위 군사 합의 사항들은 대체로 순탄한 이행을 보이고 있고, 특히 적대행위 중지와 평화지대화 수립에서는 빠른 이행을 보이고 있다. 다만, 평화수역 및 시범 공동어로구역은 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를 확정하기로 했기에 실제 시행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이 문제는 해상 경계선이 없는 가운데 추진하는 것이어서 군사 합의서 내용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지속 가능한 군사 협력을 위해

이상과 같은 군사적 신뢰 구축은 정치적 신뢰 구축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한 해에 속도감 있게 이행되고 있다는 점도 2018년 남북관계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아래와 같은 지적은 정부가 경청해 보완할 대목으로 보인다. 평화수역 및 공동어로구역 설정 문제에 있어서 해상 경계선 문제와 협력지대 설정 문제를 분명히 구분하고, 현지 어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외 지지를 받고 있는 DMZ 일대의 평화지대화의 결과를 어떻게 보존하고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져갈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DMZ와 JSA를 비무장화하는 것은 전폭 지지하지만, 그것은 정전협정의 준수에 다름 아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DMZ 구역의 확대나 그 후방 지역으로 군비통제를 확대할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 비핵·평화 협상과 남북 군사 협력이 함께 진전될 수 있도록 남북대화와 한미 대화를 균형 있게 전개하는 일도 더 세심한 운용이 필요하다.

10월 2일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수색로에서 장병들이 지뢰 탐지 작전을 하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내년 초 개최를 목표로 함에 따라 행사 준비도 착착 이뤄지고 있다. 북한의 본격적인 비핵화와 미국의 가시적인 대북 안전 보장을 적정한 수준에서 동시 추진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남북 간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은 더욱 탄력을 받아 전쟁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고, 남북이 함께 협력해나갈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그것은 다시 비핵화 및 평화체제의 2차선 도로를 더 튼튼하게 할 수 있다.

그 반대로 비핵화 협상이 결렬되거나 정체된다면 2018년 도드라지게 진행된 남북 간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도 제약을 받을 것이다. 결국 남북협력은 북·미, 한미 채널과 조화를 이뤄가야 할 ‘전략적 삼각관계’의 일부이다. 이 트라이앵글은 한반도 냉전구조를 평화구조로 전환할 틀이기도 하다.

전 재 성 서 보 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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