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美 의회 권력 변화 있었지만
대북정책 큰 변화 없을 듯

미국 중간선거가 ‘공화당의 상원 수성, 민주당의 하원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나, 그 정도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은 향후 고위급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체제 보장을 맞교환하는 정치적 의지를 재확인하고, 이를 위해 획기적인 조치를 주고받을 필요가 있다.

국내외적으로 11월 6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야당인 민주당이 선전해 하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선거가 치러진 35의석 중 민주당 의석이 26개나 달해 구조적으로 불리했던 상원에서도 선전했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회복하는 데 실패했지만, 의석을 지키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이 같은 의회 권력의 변화는 미국의 외교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첫째, 투표율이 이례적으로 높았으며 야당인 민주당이 전체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민주당은 새로 차지한 의회 권력, 즉 입법권과 예산권, 그리고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 지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파격을 거듭하며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트럼프의 외교정책에 제동을 걸고자 할 것이다.

셋째, 이 같은 변화는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추동력으로 한 북한의 비핵화 및 북·미관계 개선에 순조롭지 않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것이 ‘파격적’으로 보일 경우, 민주당은 제동을 걸 것이고, 특히 북·미관계 개선에 북한의 인권 문제를 연계해 이미 무거워진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할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발목 잡을 여지 크지 않아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미국은 전통적으로 외교 문제를 대통령의 전권으로 간주하고 의회는 초당적 지지를 보내왔다. 베트남전 이후 그 전통이 수그러들어 외교에 대한 의회의 통제가 강화되긴 했지만, 그조차 근년에는 다시 약해졌다.

둘째, 여느 중간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에서도 외교 문제는 큰 이슈가 아니었다. 이는 외교 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제한적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당이 외교 문제를 의회에서 쟁점으로 삼아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실익이 크지 않다.

셋째,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은 공화당보다 대화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트럼프의 대북 관여정책이 궤도를 크게 이탈하지 않는 한 민주당이 발목을 잡을 여지는 크지 않다. 북한이 의회의 비준을 요구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원한다면, 공화당 행정부와 협상해야 한다는 오랜 주장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6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상원을 지켜냄으로써 대북정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가 아니라 6월 북·미 정상회담, 9월 평양 공동선언 이후 순항할 것으로 기대했던 북·미 협상이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는 데 있다. 11월 8일로 예정됐던 북·미 고위급 회담이 무산된 데서 보듯 미국과 북한이 좀처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어렵사리 마련된 비핵화 과정의 동력이 사라질 수 있어 우려된다. 지금의 동력은 정전 이후 최고의 위기 중 하나였던 2017년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험이 큰 만큼 해결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이 생겨나고, 정치 지도자가 그 여망에 부응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가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위기감이 약해진 가운데 협상이 표류하면 그 동력이 사라지거나 약해질 수 있다. 새로운 동력이 마련되려면 새로운, 아마 더욱 위험할 위기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하에서 필자는 현재 북·미 협상이 표류하는 이유를 따져보고 그것을 타개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표류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과 북한 양국이 서로의 의도를 불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신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위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을 통해 더욱 깊어진다. 즉, 상대의 의도에 대한 선입견에서 그의 행동을 지레 짐작하고, 그 짐작이 맞으면 선입견이 재확인되고 불신이 더욱 깊어진다. 그 불신과 자기실현적 예언의 과정이 양국 사이에 상호적이고 대칭적으로 존재해 빠져나오기 어려운 덫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 유권자들이 11월 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중간선거 투표를 하고 있는 모습.

먼저,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의심한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11월 12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미사일 기지 등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트럼프 행정부가 불완전한 비핵화를 대가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협상을 할까 봐 우려된다”고 말한 것이 이러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불신을 대변한다.

미국이 우려하는 상황은 이렇다. 북한은 특유의 ‘살라미 전술(단계를 잘게 나눠 압박하는 협상)’을 사용해 비핵화 과정을 잘게 쪼개 미국과 하나씩 주고받는 협상을 한다. 그 결과 미국은 협상 카드를 소진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일말의 핵 능력을 보유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협상의 시초에 북한이 모든 핵시설을 신고하고, 그에 대한 사찰받기를 요구하는 등 대폭적인 양보를 북한에 요구한다.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이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전형적인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완전한 체제 보장’ 의지를 의심한다. 과거의 협상에서 미국이 한낱 종잇장에 불과한 대통령 친서 형식으로 체제 보장을 꺼내들었던 것처럼, 최소한의 양보만으로 북한을 무장 해제하고 군사적 압박으로 북한의 정권 교체를 추진하거나, 북한의 협상 카드를 무력화한 다음 경제 제재를 통해 정권의 전복을 노린다고 의심한다. 그래서 종전선언처럼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근거를 약화할 수 있는 사전 조치를 요구한다.

미국이 그것을 하지 않으면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또 다른 전형적인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이처럼 상호 불신은 미국과 북한 사이에 완벽한 대칭을 이뤄 양국은 협상 표류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긴다. 먼저 양보하는 것은 자국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거나, 협상력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니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그 결과가 현재의 교착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로의 의지 의심하는 북한과 미국

이 교착 상태를 해소하려면 문제의 본질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바로 핵무기의 본질이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는 올해 11월호에 ‘핵무기가 대수인가?(Do Nuclear Weapons Matter?)’라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된 지 73년이 지나고 그동안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으면서 핵무기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새삼스레 이 같은 의문이 제기된 까닭은 바로 핵무기가 불용(不用) 무기라는 역설 때문이다.

1945년 일본에 투하돼 수십만 명의 인명을 살상한 핵무기는 이후 발전을 거듭해 그 수천 배의 파괴력을 가진 괴물로 성장했다. 이제 핵무기는 적어도 이성이 있는 국가의 지도자라면 절대 사용할 수 없는 불용 무기가 됐다. 물론 불용 무기라고 해서 그 효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핵무기의 효용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하나는 핵무기에 의한 보복을 협박해 적국의 공격을 예방하는 억지의 효용이다. 다른 하나는 상대에게 모종의 행동을 요구하고 따르지 않으면 핵무기로 공격하겠다고 협박하는 공갈의 효용이다.

그런데 핵무기의 사용이 과도한 파괴를 초래하기 때문에 그 협박이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곧 협박의 신빙성이 없는 것이다. 수천 발의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은 월맹(越盟·1941년 베트남에서 호찌민을 중심으 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 베트콩을 지원하지 않도록 억제하지 못했다.

사담 후세인이 핵무장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강제하지 못해 결국 재래식 무기로 침공해야만 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지 못했고, 그 핵무장을 포기하도록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 초강대국인 미국이 그렇다면 북한에 핵무기가 무슨 효용이 있는가?

정치적 신뢰 회복, 관계 개선만이 유일한 해결책

북한은 미제의 침공을 억지한다는 명분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에 따른 온갖 어려움을 감수해왔다. 그렇게 개발한 핵무기와 미국의 완전한 체제 보장을 상호 교환하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그런데 그 체제 보장을 완전히 믿을 수 없어서 일종의 보험으로서 최소한의 핵 불투명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북한의 안보 전략은 가지고 있는 핵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 약속을 받아내려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핵 능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과 해결의 실마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정책은 자체적으로 모순적이어서 절대 성립할 수 없다. 비핵화는 양적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이어서 ‘완전한’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다. 100개의 핵무기 중 99개를 폐기해도 비핵화가 아니다. 또 물리적인 검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유일한 해법은 불용 무기이자 정치적 무기라는 핵무기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조치를 하고, 그에 따라 미국이 체제 보장을 제공하는 정치적 해법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체제 보장의 경우 북한을 안심시키기 위해 미국이 무장 해제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치적 신뢰 회복과 관계 개선밖에는 방법이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가운데)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0월 7일 회담 후 백화원 영빈관에서 오찬을 하고 있다. 김정은부터 시계 방향으로 북측 통역 담당자(추정),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KMC) 센터장,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이연향 국무부 통역국장, 폼페이오 장관.

해법은 다음과 같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하되, 관계 개선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고자 핵 불투명성을 유지함으로써 체제 보장을 추구하는 정책이 자체 모순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불신을 거두고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북한은 향후 고위급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체제 보장을 맞교환하는 정치적 의지를 재확인하고, 이를 위해 획기적인 조치를 주고받을 필요가 있다.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맞교환하는 것은 누가 더 얻고 덜 얻는 제로섬이 아니라 양자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윈윈(Win-Win)의 상황이다. 기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다.

박 경 석 김 태 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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