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남북은 문산~개성 간 경의선 철도 연결구간과 동해선 철도 연결구간을 공동 점검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정동진역 부근의 동해선 철도 모습.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0일 삼지연초대소를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산책을 하며 대화하고 있다. 비핵화의 새로운 길을 가다

2018년 출발한 비핵화 열차가 2019년에는 더 이상 멈추지 않고 힘차게 달리기 위해선 비핵화와 함께 상응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 정부의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한 북·미 협상의 중재자이자 이행 유지의 보장자 역할을 기대해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핵 무력의 완성을 재차 선포했다.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영원히 핵을 움켜쥐고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던 북한이 비핵화를 언급하고 있다. 4·27 판문점 선언 직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기존의 경제·핵 병진노선을 마무리하고 경제 건설에 매진하는 새로운 전략 노선으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4·27 판문점 선언 3조 4항에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했다. 이어 개최된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의 완전한 비핵화 공약을 재확인하는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9월 평양 공동선언 5조에는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공개적으로 폐기하고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다.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 스스로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겠다고 발언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을 향해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해 보이던 비핵화에 대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비핵화의 희망을 얘기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얽히고설킨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나갈 시작점이 바로 북한의 비핵화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밝은 미래를 위해서 북한의 비핵화가 필요충분조건인 것만은 틀림없다.

비핵·평화 병행 접근의 성과

2018년 비핵화를 평가해보면 아쉬움 속에도 적지 않은 긍정적 성과를 얻었다. 북·미관계가 더디게 흘러가고 있고, 아직 본격적인 비핵화 조치가 시작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 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고 가보지 않았던 비핵화의 길을 가고 있다. 그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 우리 정부의 비핵화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6일, 독일 베를린 구 시청에서 열린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한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국제사회에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핵과 전쟁의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또 대북정책의 목표를 북핵 해결에 그치지 않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과 연결 지어 북핵 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을 제시했다. 2018년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고 밝혔다.

평양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최초로 공식 의제화하고 추가적인 비핵화 공약을 이끌어내어 평양 공동선언문에 담았다는 데 의의가 크다. 지금까지 비핵화는 북·미 간의 문제 였다는 점에서 북한의 비핵화 공약을 남북 정상 간의 선언에 명시한 것은 남한을 비핵화 문제의 당사자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뜻한다.

또 북·미 간 비핵화 문제를 조율하고 풀어나갈 중요한 중재자임을 북한도 인정하는 것은 물론 남측의 도움이 필요하며 남측이 그 역할을 잘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시사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평양 정상회담 이후 9월 24일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 촉진을 위한 미국의 대북 상응 조치를 촉구하면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병행 접근을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프로세스를 본격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종전 선언과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 완화도 요구하고 있다. 북·미 간 일련의 고위급회담과 실무 접촉을 벌여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이 시작되기를 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그를 위한 고위급회담이 확정되지 못하는 등 북·미관계는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고, 비핵화 프로세스 역시 초보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합의문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북한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이미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의 유예를 발표하는 한편 종전선언 등 미국의 상응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공약을 의심하며 신고와 같은 좀 더 실질적인 추가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인 페기를 언급했지만 사실 방점은 ‘미국이 6·12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에 찍혀 있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비핵화 과정이 미국의 시나리오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 동시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오히려 분명히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은 미국에 완전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한편 종전선언 및 제재 완화 등 미국으로부터 더 큰 가시적인 군사적, 경제적 상응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오히려 비핵화의 판이 커져버렸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서 기존의 ‘신고 대 종전선언’ 프레임을 넘어선 ‘영변 대 제재’의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는 점에서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과 대응이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중간선거 이후 협상 반대파의 공격 수위가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미국 측의 상응 조치 마련 에 부담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르막의 입구에서 정체돼 있는 비핵화 프로세스가 속도 를 내기 위해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의 줄다리기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그러나 북·미 간에 심각한 의견 차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반발씩 양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중재자 역할이 더욱 절실함 시점이다.

비핵화의 기차는 출발했다

북한의 비핵화는 단순히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를 모두 없앤다는 의미이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이미 완성돼 보관 중인 핵무기나 확보한 핵물질(과거 핵)뿐만 아 니라 핵물질의 양을 증가시키는 시설과 프로그램(현재 핵), 그리고 질적으로 더 정교하고 확실한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와 같은 기술(미래 핵)까지 비핵화의 범주에 모두 포함돼야 한다. 그런 만큼 비핵화는 하나의 결과나 사건이 아니라 긴 과정이다.

비핵화라는 기차는 이미 출발했다. 오르막을 앞두고 지금은 잠시 속도를 죽이고 멈춰 있지만 이미 유예라는 역을 통과했고 신고, 폐쇄, 동결의 역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비 핵화의 마지막 역인 폐기까지 다다를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았던 비핵화의 철길은 상호 불신으로 말미암아 끊어져 있고, 교각과 터널도 무너 져 있을 것이다.

이 무너진 교각과 터널, 끊어진 철길을 누가 보수하고 다시 그 터널을 뚫고 교각을 세워야 할지 생각해보자. 북한 스스로가 기차에서 내려 길을 뚫고 가도록 하는 비핵화만을 강요해서는 폐기의 역에 도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승 현 김 동 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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