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4·25축구단 제5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 5연패.’

그야말로 난데없는 소식이었다. 북한에 유소년 축구단이 있다는 것도, 지난 5년간 이들과 국내 유소년 축구팀이 꾸준히 교류해왔다는 것도 국내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남한의 아이들과 북한의 아이들이 꾸준히 만나 공을 찼다는 건 누가 들어도 어림없는 이야기였다. 천안함 사태 이후 수차례 이어진 북한의 핵실험, 그리고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으로 꽁꽁 얼어붙은 한반도 정세는 남북 간의 그 어떠한 대화나 접촉마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차갑고 어두웠기 때문이다.

‘4·25유소년축구단’은 북한 최고의 축구팀으로 통하는 북한 인민무력부 소속 축구단인 4·25축구단의 유소년팀이다. 4·25체육단 산하 4·25축구단에는 4·25유소년축구단과 려명유 소년축구단 두 개의 유소년 축구단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4·25유소년축구단은 소속 선수의 절반 이상이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자랑한다. 이번 대회에는 4·25유소년축구단과 려명유소년축구단이 모두 참가해 각각 우승과 준준우승을 차지했다.

2008년부터 유소년 축구단 자취 기록

“남북 유소년 축구팀들의 교류는 2000년대에도 줄곧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2014년 11월, 경기도 연천에서 ‘제1회 아리스포츠컵 대회’가 열렸죠. 횟수만 따지면 2018년 5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매년 빠짐없이 대회가 치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이 그렇게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4개국 6개팀이 참가했던 1회 대회가 2015년 8월 북한의 평양에서 열린 2회 때는 6개국 8개팀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가 그 다음 해인 2016년에는 남북관계 경색으로 일시 중단되는 위기를 겪었으니까요. 이듬해인 2017년 대회가 재개되긴 했지만 남쪽도 북쪽도 아닌 제 3의 나라,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였죠. 심지어 그해 남한의 언론 중 아리스포츠컵 대회 소식을 전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정치적 상황이 어려웠다는 방증일 겁니다.”

어쩌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서민원(49) PD는 4·25유소년축구단이 꾸려진 이듬해인 2008년부터 꾸준히 이들의 자취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하지만 그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My NK Football Team’이 세상에 소개된 건 딱 세 번, 올해 8월 ‘SBS 스페셜’과 2012년 채널A 개국 당시 방영됐던 특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그리고 올해 9월에 열린 MDZ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된 정도가 전부다.

서민원 PD는“축구를 즐기는 북한 선수들의 훈련 모습이 놀라웠다”며 “북한을 대표하는 유소년 축구팀의 감독이 한 번도 교체되지 않고 10년 넘게 꾸준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전 그는 MBC에서 약 12년간 PD로 일했다. 2005년, 마흔 줄에 들어서면서 그 나이대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PD들이 대개 그러하듯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의 전향을 고민하게 됐고, 때마침 MBC ‘통일전망대’에서 연출자를 구한다는 공고가 났다.

“‘이거다’ 싶었죠. 공고를 보자마자 지원서를 내고는 조건을 내걸었어요. 월급은 안 올려줘도 좋으니 저를 북한으로 보내달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통일전망대’는 기자들이 중심이 돼서 꾸려가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름의 변화를 모색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저 또한 뭔가 PD로서 ‘주특기’ 같은 게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휴먼 다큐멘터리 쪽은 사람이 너무 많고 자연 다큐멘터리는 자신이 없어서 고민만 하고 있던 때였죠. 그런데 막상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하는 PD가 되겠다고 했더니 선후배들이 하나같이 말리더라고요. 너 이제 돈은 안 벌 거냐고(웃음).”

그로부터 20여 차례, 그는 소원하던 대로 카메라를 들고 북한 땅을 방문할 수 있었다. MBC PD라는 직함 대신 비영리기구(NGO) 단체 또는 현대아산의 타이틀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백두산이며 묘향산, 금강산 등 북한의 비경을 모조리 카메라에 담아 MBC 다큐멘터리 ‘푸른 한반도를 꿈꾸다’를 완성했고, 그렇게 하나씩 필름을 완성해갈 때마다 알 수 없는 희열과 성취감이 차올랐다. 그러다 만난 것이 4·25유소년 축구단이었다.

남한 PD와 북한 아이들의 축구 스토리

“호나딩요, 카카, 마라도나, 지단, 앙리, 까를로스!”
“몇 살?”
“소학교 2학년.”
“몇 살이야?”
“여덟 살.”
“우와, 엄마 안 보고 싶나?”
“일 없슴다.”

다큐멘터리의 첫 장면. 편집 영상을 돌려보던 서민원 PD의 얼굴에 아빠 미소가 번졌다.

“남북관계가 나빠질 때마다 반복해서 찾아보던 장면이에요. 북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 거의 대답이며 표정이 천편일률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은 달랐어요. 그렇게 숱하게 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던 표정이 마구 튀어나오더군요. 특히 여기 나오는 성진이는 우리 아들이랑 동갑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매년 4·25유소년축구단과 만날 때마다 성진이부터 찾게 되더라고요.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성진이도 많이 컸겠지, 그런 생각이 들곤 하죠.”

올해 8월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개막한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서 대결을 펼친 북한 4·25유소년 축구단(흰색)과 강원도 대표팀(파랑색)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2008년, 4·25유소년축구단의 전지훈련 소식을 듣고 중국 쿤밍을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만난 아이가 성진이었다. 여덟 살 코흘리개 꼬맹이는 공도 곧잘 찼지만 무엇보다 어떤 가식이나 꾸밈도 없이 마냥 씩씩하고 해맑았다.

“림현호 감독 말로는, 저 앞에선 저렇게 씩씩하게 엄마가 안 보고 싶다고 하던 녀석이 밤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그렇게 울었대요. 그래서 결국에는 평양에서 엄마를 촬영한 동영상을 중국으로 보내 성진이를 달랬다고 하더라고요.”

‘My NK Football Team’을 본 혹자는 그랬다. 이 필름은 북한 축구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그저 서 PD와 아이들 간의 이야기라고. 묘하게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남북을 떠나, 아이들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준비된 의식처럼 카메라를 대할라치면 남한의 아이들조차 판에 박힌 이야기, 주어진 멘트밖에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친구처럼 툭툭 주고받는 이야기에는 이념과 가식이 끼어들 리 만무했다.

북한에 살고 있는 친구, 림현호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어요. 단지 제가 축구를 좋아하고,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죠.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도 당연한 듯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다 막상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이 어려운 시기에도 누군가는 교류를 하고 있다는 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2009년 말부터는 ‘통일전망대’에서도 줄곧 탈북민들만 다뤘다.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졌지만 그 와중에도 서 PD는 4·25유소년축구단이 전지훈련을 간다는 소식만 들리면 만사 제쳐놓고 중국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2년을 더 버티다 독립을 결심했다. 프로덕션을 설립하고부턴 눈치 볼 것도 없었다.

그가 4·25유소년축구단에 매료된 또 한 가지 이유는 림현호 감독이다. 림 감독은 2007년 4·25유소년축구단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쳐온 팀의 수장으로, 이제는 서 PD와 서로 먼저 가족의 안부를 물을 만큼 편한 사이가 됐다.

“제일 놀랐던 건 아이들이 훈련하는 모습이었어요. 모래주머니를 10개쯤은 차고 혹독하게 훈련을 받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죠. 축구를 즐기고 있더라고요. 어릴 때는 축구를 좋아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게 림 감독 나름의 교육 철학인데 그래서인지 단 한 번도 림 감독이 아이들에게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남한에서는 줄곧 감독님들이 아이들을 엄하게 다그치는 모습만 봐왔던 터라 오히려 그런 훈련 방식이 신선한 충격이었죠. 북한을 대표하는 유소년 축구팀의 감독이 한 번도 교체되지 않고 10년 넘게 꾸준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림 감독은 언제나 열정적이었다. 그래서 더 짠하고 안타까운 면도 있었다. 작전판이 없어 잔디 위에 종이를 찢어 말을 만들고 작전을 지시하는 모습은 보기에 따라 충분히 궁색하고 남루해보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북한 4· 25유소년축구단 소속 선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서민원 PD.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저를 북한을 비호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장면에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오히려 림 감독의 열정이었어요.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거든요.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해요. 경제 사정이 안 좋으니 당연히 해진 운동화에 구멍 난 런닝셔츠를 입을 수밖에 없죠. 대부분은 또 그런 것만 찍어서 보여주고 싶어 하고요. 하지만 우리에게도 어려운 시절은 있었잖아요.”

애정을 갖고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10년 전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단된 4·25유소년축구단 아이들은 남한의 아이들과 키가 머리통 하나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체격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왜소했다. 그래도 당시에는 아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서 PD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고 친구가 돼주어 즐거웠다. 정작 마음이 아팠던 때는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난 2010년경부터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거리를 두는 아이들에게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2014년 연천에서 열린 제1회 아리스포츠컵 대회 때는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반가운 마음만 확인했을 뿐 그 흔한 사진 한 장 함께 찍을 수 없었다. 어른들의 싸움에 아이들까지 상하는 것 같아 속이 쓰렸지만 그래도 그 엄중한 시기에 남한 땅까지 와준 것만도 감사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