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교류 현장

제18기 국내지역회의 금강산 삼일포 가을 풍경. 10년 만에 열린 금강산의 가을
남북 인사들 훈훈…“자주 오시라”

남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가 11월 3일~4일, 금강산에서 ‘남북 민화협연대모임’을 개최했다. 금강산에서 민간차원의 공동행사가 열린 것은 2008년 ‘6.15 민족통일대회’이후 10년 만이다. 역사적 현장의 기록을 담았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 발표에도 불구하고 남북 민간 교류의 물꼬가 좀처럼 트이지 않던 중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11월 3~4일 이틀간 ‘남북 민화협 연대모임’이 금강산에서 열린 가운데 공동 결의문을 채택한 것이다. 외금강의 가을은 풍악(楓嶽)이란 이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바위산의 굳센 기상과 미인송의 푸른 기개가 11월 가을 하늘아래 맑게 드러났다.

금강산에서 각계각층 남북 대표들이 모여 대규모 민간 공동 행사를 개최한 것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6·15 공동선언 발표 8주년 기념행사 ‘6·15 민족통일대회’ 개최 이후 10년 만이다.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 박왕자 씨의 피격·사망 사건 발생 이후 금강산의 문이 굳게 닫혔고, 남북 당국 간 합의에 따라 몇 차례 이산가족 상봉 행사만 겨우 이뤄졌을 뿐이다. 남북관계가 ‘반짝 유화 국면’이던 2015년 11월 금강산에서 남북 종교인 모임이 열리기는 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금강산은 이따금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리는, 우리에겐 멀고도 먼 곳이었다.

다시 열린 남북교류의 현장, 금강산

남측 민화협 김홍걸 대표상임의장을 비롯한 방북단 256명은 11월 3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주차장에 모여 금강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금강산행’이 가져다주는 설렘으로 참가자의 표정이 밝았다. 오전 11시, 드디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녘 땅에 들어섰다. 문턱 하나 없는 그 선을 가뿐히 넘어서는 순간, 해금강의 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석호인 감호(鑑湖) 위로 이름 모를 흰 새들이 유유히 떠다녔다. 절경이었다. 수차례 금강산을 다녀온 필자도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렇게 유려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것이 그저 한없이 아쉬울 뿐이었다

오랜만에 남측 손님을 맞아서일까. 남북관계 화해 분위기 영향일까. 북측 출·입경 절차는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남측 대표단은 금강산 안에 들어선 옥류관면옥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메뉴는 4월 남북 정상회담으로 장안의 화제가 된 평양냉면. 일행은 숙소인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로 이동해 짐을 풀었다.

그날 오후 3시,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서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민화협 연대모임’이 열렸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니 북측 민화협 김영대 회장의 얼굴이 보였다. 김영대 회장을 비롯한 100여 명의 북측 참가단은 하루 전날 금강산에 도착했다고 했다.

이날 연대모임의 첫 연설자로 강단에 오른 김영대 북측 민화협 회장은 “금강산이 이제 민족 단합과 통일의 물결이 흐르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며 “나는 이번 북남 민화협 연대모임이 민족의 화해와 단합, 북남관계 개선에 활력을 불어넣고 역사적인 4월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 이행에 떨쳐나선 우리에게 커다란 힘과 고무를 주는 의의 있는 계기로 되리라 확신한다”고 감회를 밝혔다.

“남북 민화협부터 ‘딱친구’ 되자”

지난해 11월 남측 민화협 수장으로 선출된 김홍걸 남측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첫 대규모 민간 교류 행사를 주최하게 된 것이 감격스러운 듯 보였다. 김 의장은 “북에서는 속을 터놓고 지내는 친한 친구를 ‘딱친구’라고 한다더라”면서 “남북 민화협부터 ‘딱친구’가 되어 남북 겨레가 ‘딱친구’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구심점 역할을 하자”고 말했다.

그는 “남측 사회문화 교류를 희망하는 단체나 개인들이 민화협을 통해 북측과의 교류를 희망하고 있다”며 “이들을 위해 남북 민화협 간 사회문화 교류 협약을 체결하고 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면 일시적인 남북 교류협력이 아닌 지속적이고 다양한 분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과거 남북 민간 교류가 추진될 당시 여러 부문들은 6·15 남측위원회와 카운터파트인 6·15 북측위원회 통로를 이용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트럼프 대통령의 왼팔을 잡고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다. 남북 민화협 상봉대회 축하공연 모습.

남북 민화협은 공동 결의문에서 “당면하여 3·1 독립운동 100돌을 맞으며 남북 민화협 단체들이 ‘강제 징용 피해자 공동 토론회’를 진행하면서 남북 민화협 단체들이 합의한 ‘조선인 유골 송환 남북공동추진위원회’를 현실적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민화협의 주요 실천과제로 선정된 일제 강제 징용 문제 해결 방안 마련은 남북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사안이다. 더불어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의 유골을 일본에서 송환한 후 남북이 서로 오가며 이들의 봉환 추모행사를 치르게 된다면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이날 오후 6시부터 부문별로 상봉모임을 가졌다. 금강산에서 남북 민간 교류 행사가 오랜만에 열린 만큼 그동안 쌓아둔 이야기가 많았을 터. 상봉모임은 민화협(주요 성원), 노동, 농민, 청년학생, 여성, 종교, 교육 등으로 나눠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 곳곳에서 진행됐다.

“건배!” 만찬장 곳곳에서 끊임없이 축배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부문별 상봉모임에서 못다한 이야기는 공동 만찬에 이어 다음 날 오전 삼일포 산책길에서 이어졌다. 쾌청한 날씨 속에 이뤄진 삼일포 산책은 남북 대표단이 하나로 어우러지게 할 뿐만 아니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제는 누릴 수 없는 금강산온천의 호사

10년 만에 금강산에서 모처럼 남북 민간 대표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인지 금강산온천은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이고, 교예 공연이 열리던 금강산문화회관도 사용한 지 오래돼 북측에서도 비좁은 금강산호텔 연회장에서 축하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금강산 관광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장소 부동의 1위는 만물상도 삼일포 아닌 바로 금강산온천이다. 특히 야외 온천장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외금강을 한눈에 조망하고 있노라면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 든다.

직접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행복이다. 북측 교예 공연도 관광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떨어질 듯 말듯 아슬아슬한 곡예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한민족 정서를 그대로 녹여낸,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우수한 공연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트럼프 대통령의 왼팔을 잡고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다. 11월 4일 오전 금강산 삼일포 호수 위 흔들다리를 건너며 산책하는 남측 참가단들.

금강산에 남측 관광객 발걸음이 끊긴 것은 남측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사망 사건이 발생한 2008년 7월이다. 2009년 8월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이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만나 면담하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로 합의했지만, 2010년 5·24 조치로 민간 교류가 차단됨에 따라 되돌리기 어렵게 됐다.

북한은 원산 갈마비행장을 ‘국제비행장’으로 이름을 바꿔 달고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개발 중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 8월부터 최근까지 현지지도에 나서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금강산 관광과 연계한다는 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구상으로 보인다. 대규모 원산~금강산 관광지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풀린다면 외부 관광객이 물밀듯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남북, 우리 민족의 금강산을 넘어 세계적인 관광 명소 금강산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민화협 연대모임에 이어 11월 18일부터 19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금강산 관광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리택건 북한 아태위원회 부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이 10년이 지나도록 재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며 “금강산 관광을 하루빨리 재개하는 것, 이것은 현 시기 북남 수뇌분(남북 정상)들에 의해 마련된 평화적 환경을 더욱 공고히 하고 공동 번영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곧 다시 만나자”

남북 대표들이 삼일포 산책에 나선 4일 오전, 유난히 하늘은 맑고 삼일포의 물빛도 푸르렀다. 모처럼 남측 손님들을 맞은 북측은 야외에서 꼬치구이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걸칠 수 있는 난전을 세웠고, 예전처럼 삼일포는 남북의 만남의 장이 됐다.

삼일포 산책길에 오르기 전 필자는 김영대 회장에게 이번 대회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연대모임이 잘 마무리돼 북남 민화협이 우리 민족의 민간 통일운동의 청신호를 올려 힘찬 진군을 개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흔히들 남북관계 개선의 상징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을 꼽는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엄연한 현실에서 민화협 연대모임은 금강산 관광부터 민간 교류 활성화, 이산가족 면회소 상설 가동을 통해 소로(小路)를 내고, 국민 누구나 금강산 관광길에 오를 수 있도록 대로(大路)를 닦고자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트럼프 대통령의 왼팔을 잡고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다. 11월 19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북한 리택건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남북 주요인사들이 지난 18일 오후 고(故)정몽헌 회장 추모비 인근에서 금강산관광 20주년 기념 식수를 하고 있다.

김홍걸 의장은 “남북 간 자유로운 왕래와 교류협력이 활성화되고, 금강산뿐만 아니라 백두산, 원산갈마지구 관광도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기를 바란다”며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또한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뒤로한 채 금강산을 떠나는 길. 북측 인사들이 남측 일행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곧 다시 만나자”고 서로 약속하지만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진전 여부에 따라 그 ‘곧’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곧’을 앞당기기 위해 금강산에서 이번 만남이 이뤄졌고, 앞으로 또 다른 많은 만남이 이뤄질 것이다. 오랜만에 남측 손님들로 북적북적하던 금강산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이곳에 맵짠 추위가 이어질 것은 자명하지만 금강의 굳센 바위와 푸른 소나무는 여전할 것이다.

안 병 민 김 치 관
통일뉴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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