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기행 통일 여행

4· 27 판문점 선언이 이루어진 장소인 평화의 집. 김일성 별장에서 내려다본 화진포 호수. 오른쪽 빨간색 건물이 이기붕 별장이다. 해송 우거진 바닷가에서
통일을 그리다

서울에서 3시간 남짓, 강원도 고성은 때 묻지 않은 천혜의 비경을 품은 관광지이자 통일의 훈풍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통일의 최전선이다. DMZ박물관과 통일전망대,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 김일성 일가의 별장 터가 남아 있는 이곳 고성을 찾아 뼈아픈 역사의 자취를 되짚어봤다.

시간이 멈춘 바닷가.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 해수욕장과 마주한 첫 느낌은 그랬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 이기붕 부통령의 별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이곳 바닷가는 길게 펼쳐진 모래사장 곁으로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고 깨끗한 바다가 이어진다.

2000년 가을 KBS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이곳은 지척에 화진포 호수를 두고 있어 동해의 푸른 바닷물이 화진포 호수의 담수와 어우러지면서 최적의 해수욕장을 형성한다. 수천 년 세월 동안 퇴적된 조개껍데기와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화진포 해변은 수심이 얕고 모래가 고와 오랜 세월 휴양지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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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열면 푸른 동해 바다가 한눈에

해수욕장을 등지고 돌아보면 해송이 우거진 언덕 위로 중세 유럽의 성곽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일명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는 김일성 별장 터다.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된 화진포의 성은 1938년 일제강점기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일본군 비행장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강제 철거하고 그곳에서 100마일 떨어진 화진 포로 선교사들의 휴양지를 옮기면서 지어진 건물이다.

당시 선교사로 있던 셔우드 홀이 히틀러의 공포정치를 피해 망명 온 독일의 건축가 W. 베버에게 예배당 건물 건립을 의뢰해 지었다. 창을 열면 화진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또 하나의 절경을 자아낸다.

그날 저녁 자유시간에 북측에서 운영하는 민족식당을 찾았다. 들쭉술과 함께 남쪽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참새구이가 술맛을 오르게 한다. 눈으로 즐기는 안주도 있다. 저 멀리 어둠 속 공제선이 만들어내는 금강산 풍광이다. 절경이 따로 없다.

1932년 결핵 치료를 위해 한국 최초로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한 셔우드 홀은 평양 감리교 선교 개척자인 캐나다인 윌리엄 제이미스 홀과 병원, 학교, 교회 사업을 전개하며 조선의 개화에 이바지한 로제타 셔우드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미국인 의사 메리언 바텀리와 결혼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의료·선교사업을 펼쳤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 간첩으로 몰려 형무소 생활을 하다 한국에서 강제 추방당하는 등의 수모를 겪기는 했지만, 조선 사람들의 질병 퇴치를 위해 헌신한 셔우드 일가족의 업적과 공로는 세대를 넘어 길이 칭송받고 있다.

100여 명의 광주 지역 청년들은 남북 양측의 국방부, 국토교통부,교육부, 문화체육부, 보건복지부,외교부 등 6개 부처에 소속돼통일 한반도를 위한 각 분야별정책을 토론하고 논의하는시간을 가졌다.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는 김일성 별장(오른쪽). 김일성 별장 안에는 6·25전쟁을 설명하는 전시물이 마련돼 있다.

1948년 이후부터 화진포의 성은 북한의 귀빈들이 묵는 휴양시설로 이용됐는데,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김정일, 김경희 등 김일성 일가도 이곳에 머물렀다고해서 ‘김일성 별장’으로도 불린다. 지금의 모습은 6·25 전쟁 당시 훼손됐던 건물을 1964년 육군이 철거한 후 재건축한 것으로, 1995년부터는 육군복지단에서 개·보수작업을 거쳐 장병 휴양시설로도 사용했다. 1999년 이후로는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화진포의 성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고즈넉한 풍경의 솔숲이다. 고성을 대표하는 산림욕장이기도 한 이곳은 평균 60년 이상 된 노송이 울창한 숲을 이뤄 진풍경을 자아낸다. 줄기가 곧고 붉은색을 띠는 이곳 화진포의 금강소나무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상북도 동해안 지역, 그리고 북한의 금강산 등지에 생육하는 수종이다.

화진포의 성을 시작으로 짙은 소나무 향을 음미하며 응봉, 관목원, 비밀의 숲길, 습지원, 낭만의 숲길을 거쳐 생태박물관으로 돌아나오는 산책 코스도 추천할 만하다.

언덕을 내려오면 바다와 인접한 곳에 이기붕 부통령의 별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20년 외국인 선교사가 지은 것으로, 휴전 후 이기붕 부통령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 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해송에 둘러 싸인 작고 아담한 돌담 건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그 너머 잘 가꿔진 정원이 탁 트인 바다를 향해 있어 그 조화로움이 다시 한 번 감탄을 자아낸다.

고즈넉한 가을 풍경, 화진포 호수 바라보며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화진포 호수는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바다의 일부가 외해(外海)와 분리된 석호(潟湖)로,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다워 1900년대 초부터 외국인 선교사들의 별장지로 사용돼 왔다. 화진포의 풍광은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특히 이맘 때쯤이면 넓은 갈대밭과 호수를 찾아드는 수천 마리의 철새,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고즈넉한 가을 풍경을 완성한다.

화진포에는 오랜 설화 하나가 전해 내려온다. 마음씨 고약한 구두쇠 노인이 탁발 스님에게 시주 대신 똥을 퍼줬는데, 이를 받아든 스님은 화를 내는 대신 공손히 염불을 외우며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멀리서 이 광경을 목격한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쌀을 퍼다 들고 가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자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화진포 고개로 향했다.

며느리가 계속 쫓아오며 용서를 빌자 스님은 “나를 따라오되 무슨 소리가 나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등 뒤에서 “꽝” 하는 큰 소리가 나자 며느리는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고, 폭우가 쏟아져 자신이 살던 집이 순식간에 물에 잠겨 호수가 돼버렸다. 이를 애통해하던 며느리는 결국 돌이 됐고, 그의 집이 있던 자리는 지금의 화진포 호수가 됐다는 전설이다.

100여 명의 광주 지역 청년들은 남북 양측의 국방부, 국토교통부,교육부, 문화체육부, 보건복지부,외교부 등 6개 부처에 소속돼통일 한반도를 위한 각 분야별정책을 토론하고 논의하는시간을 가졌다. 화진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언덕에 이승만 별장이 들어서 있다(오른쪽). 이승만 별장 내부에 설치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 전시물(왼쪽).

이 화진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언덕에 자리한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과 기념관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전국을 다니던 그는 1911년 이곳에 머물던 외국인 선교사와의 친분을 통해 별장과 인연을 맺었다. 6·25전쟁이 끝나고 1953년 11월,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극적으로 수복한 고성군의 군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일대를 방문한 그는 42년 만에 다시 이곳 별장 터를 찾아 자신의 별장이자 휴양지로 정했다.

1945년 신축해 1960년대까지 사용됐던 별장은 이후 방치돼 폐허로 철거됐다. 이후 육군에서 그 자리에 건물을 새로 지어 관사로 사용하다 1999년 별장 터 아래쪽에 건물을 지어 본래 모습대로 복원했다. 2007년에 이르러서는 고성군과 육군복지단에서 본래의 별장 터에 세워진 본 건물을 보수하고, 별장에 남아 있던 일부의 유품에 기증받은 물품을 추가해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기념관으로 개관했다

통일전망대’ 하면 언뜻 파주와 임진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휴전선 이남 지역 최북단에 위치한 강원도 고성군이야말로 통일의 최전선, 때 묻지 않은 천혜의 비경 속 역사적 유적지가 곳곳에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강원도에서도 가장 북쪽 끝, 동쪽의 바다는 북방 한계선(NLL) 군사경계지역과 맞닿아 있으며 서쪽은 인제군, 남쪽은 속초시, 북쪽으로는 북한의 고성군을 지척에 두고 있다.

100여 명의 광주 지역 청년들은 남북 양측의 국방부, 국토교통부,교육부, 문화체육부, 보건복지부,외교부 등 6개 부처에 소속돼통일 한반도를 위한 각 분야별정책을 토론하고 논의하는시간을 가졌다. 이기붕 별장은 해송에 둘러싸인 작고 아담한 돌담 건물이다(왼쪽). 이기붕 부통령의 침실을 재현해놓은 전시물(오른쪽).

눈앞에 펼쳐진 금강산 절경

해발 70m 고지의 통일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구선봉과 해금강, 김호 등 금강산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금강산 육로 관광의 길목인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철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지금의 낡고 오래된 전망대 자리 바로 옆에는 2015년부터 시작된 ‘해돋이 통일전망타워’ 신축 공사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높이 30m, 넓이 1675㎡ 규모의 전망타워에는 전망대 외에도 카페와 홍보관, 라운지 등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휴전선 너머 북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관 한편에는 들쭉술, 산삼주, 인삼술, 청옥 참대나무술, 더덕주 등 북한산 주류와 북한의 각종화폐 등이 진열돼 있어 기념 삼아 구매할 만하다.

가을 관광여행주간이 끝나는 11월 4일(11월 1일 제외)까지는 금강산 전망대를 일반에 개방한다. 예약 신청은 팩스를 통해 가능하며 1회 80명, 1일 160명 선착순 예약이므로 고성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사전에 문의해 보는 것도 좋겠다.

고성을 방문했다면 반드시 찾아가봐야 할 또 하나의 명소가 DMZ박물관이다. DMZ박물관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의 비원을 담아 북한의 금강산이 바라보이는 동해안 최북단 민통선 안에 개관한 곳으로, 6·25전쟁 직후의 모습과 휴전선이 갖는 역사적 의미, 60여 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DMZ의 생태 환경 등을 전시물과 영상물로 다채롭게 재구성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표는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만 가능하며 1월 1일,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므로 참고할 것. 통일전망대와 DMZ박물관은 민통선 내부 시설이므로 입장 전 출입 신고가 필수다. 출입신고소를 방문해 출입증을 교부받은 후 안내에 따라 이동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두자.

100여 명의 광주 지역 청년들은 남북 양측의 국방부, 국토교통부,교육부, 문화체육부, 보건복지부,외교부 등 6개 부처에 소속돼통일 한반도를 위한 각 분야별정책을 토론하고 논의하는시간을 가졌다. 고성 통일 전망대에서 판매하는 북한의 들쭉술과 개성고려인삼술, 고성 통일전망대를 찾은 관광객이 망원경으로 북녘 땅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시간이 여유롭다면 왕곡마을을 들르는 것도 추천한다. 6·25전쟁의 화마도, 현대 문명의 이기도 모두 비켜간 이 깊은 두메산골 마을에는 남쪽의 전통 가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한옥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려 말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해 은거를 택했던 함부열의 자손이 터를 이뤘다는 이 마을은 영화 ‘동주’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금강산도 식후경, 바다와 인접해 있어 신선한 해산물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도 이곳 고성만의 장점이다. ‘백촌막국수’의 막국수 한 그릇과 수육도 추천한다. 워낙 방송에 소개가 많이 된 곳이라 행여 초심을 잃지 않았을까 염려했지만 맛도 인심도 옛것 그대로다. 점심때는 자리가 없어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 조금 늦은 점심을 계획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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