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IN

제18기 국내지역회의 평화와 번영을 강조한 대집단체조. 자력갱생 정신과 과학기술 위력으로
경제건설 대진군 강조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백미는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능라도 경기장 연설이다. 연설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평양 시민 15만 명 앞에서 대중연설을 했다는 그 자체로 획기적인 ‘사건’임에 분명하다. 특히 연설전 남측 대표단이 관람한 것으로 알려진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은 북한 정권의 정치적 입장을 대내외적으로 선전하고, 인민들의 의식 고양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심층적인 해석이 요구된다.

이 사건은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와 정병호 한양대 교수가 함께 쓴 책 ‘극장국가 북한’의 연구를 근거로 살펴보면, 카리스마 권력이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가장 상징적인 수단인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에서 남한 대통령이 인민을 대상으로 직접 연설을 한 것이 된다.

이번 연설이 김정은 위원장의 권력이 인민에게 전달되는 심장부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히 충격적이다. 오직 절대 지도자만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의 한쪽을 남한 대통령에게 내준 북한 지도자의 의미심장한 표정이야말로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참여하는 집단체조에서 보는 예술공연으로

평양시 능라도에 위치한 5·1경기장의 위용은 실로 대단하다. 1989년 세계학생축전을 준비하면서 완공한 이곳은 5월 1일 노동절에 개장했다고 해서 ‘5·1경기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경기장은 1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에서 잘 알려진 대집단 체조 예술공연 ‘아리랑’이 수차례 공연됐다. 사회주의의 가치를 구현하면서도 북한 체제의 공고함을 과시하기 위한 ‘규모’의 정치학이 이 건축물과 공연에도 투영돼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대집단체조 예술공연 ‘아리랑’은 2002년을 시작으로 2005년에 재공연됐고, 이후 2014년까지 약 10년 동안 무대에 올랐다. 북한 체제의 공고함을 과시하는 예술공연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수개월에 이르는 연습 과정에서 아동 인권 문제가 제기되는 한편 경제난으로 주민 동원이 어려워져 문제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북한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이 주체예술을 구현하는 동시에 인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기획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의 변화는 곧 북한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임이 분명하다.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은 2000~2001년에 공연된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에서 시작됐다.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 전만 해도 사회주의 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집단 체조의 목적은 조직성과 규율성 진작에 있었다. 1960년대, 1970년대는 평양과 그 외 지역에서 연간 100만명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집단체조가 일반적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집단체조는 참가하는 규모가 크고 다양한 율동이 결합되는 수준의 형태적 변화를 보였지만,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집단체조의 예술공연화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한때 집단체조의 예술공연화를 경계했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본격화된 2000년대부터 직접 ‘참여’하는 집단체조에서 스펙터클한 공연을 ‘보는’ 예술공연으로 그 성격이 진화했다. 그런 만큼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이 담아내고 있는 메시지와 형식, 미학의 변화 등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아리랑’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김일성 민족’의 우수성과 지도자의 영도력을 강조했다면, 이번에 공연된 ‘빛나는 조국’은 민족, 통일에 관한 메시지와 함께 경제 발전과 과학 강국의 구호가 상당수를 이뤘다는 점 또한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에서 활용된 바 있는 드론을 연상케 하는 ‘빛나는 조국’의 드론 쇼 연출이나 남측 인사를 감안해 음악을 새로 선곡해 무대에 올린 공연은 북한 스스로 외부의 변화에 적극 조응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어쩌면 이번 ‘빛나는 조국’은 남측 대표단과 세계를 향해, 아니 무엇보다도 변화하고 있는 북한 인민들을 향해 북한 정권이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설득하려는 거대한 예술기획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빛나는 조국’은 ‘사회주의 경제 건설’과 ‘과학 발전’이라는 북한의 새로운 노선을 문화적으로 천명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빛나는 조국’에 담긴 메시지

외부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외침에 대해 의구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인원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몸동작을 선보이는 것을 향해 탄성을 넘어 기이함을 느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곳에 모여 자신들이 그토록 찬양하는 지도자의 변화를 직접 목격한 북한 인민들에게는 ‘빛나는 조국’의 메시지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위원장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트럼프 대통령의 왼팔을 잡고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밤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이제는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라는 그 소박한 희망 말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보다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그 미래에 응원을 보내는 것이다. 그들이 평화롭기를, 적어도 배고프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 또한 적대의 틈바구니에서 헤어 나오기를. 진심으로 모두의 건투를 빈다.

안 병 민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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