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 | 북한의 변화는 올해 갑작스럽게 이뤄진 게 아니다. 이미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시작된 것이다. 북한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참여했고, 2015년 8·25 남북 합의를 통해 변화를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러자 핵 개발 완성을 통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가지를 생각한 듯하다. 안보 측면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과 경제 측면에서 잘 먹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대북제재 완화를 강조하는 동시에 외부 자본을 유치하면서 북·중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것은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둔 전략으로 보인다.
김현경 | 여느 나라처럼 북한도 안전하고 잘사는 나라가 목표일 것이다. 그럼 핵을 가져야 안전한가. 핵이 없어야 안전한가. 지난해까지는 핵이 유용했던 시점이었다면, 이제는 핵 없이도 잘살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북한이 지난해까지 핵 개발을 하면서 생존 차원의 자력갱생을 도모했다면, 지금은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목적과 전망이 달라졌기 때문에 전략적 결단을 한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선택을 하도록 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컸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데, 시대적 환경과 정세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비핵화 전망이 훨씬 우세하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할 수밖에 없도록 우리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공용철 | 장기 집권을 꿈꾸는 김정은으로서는 시장 요소를 도입해 국제사회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20년간 북한이 겪은 시장화 과정을 보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중국과 최소한의 호흡을 같이 하면서 가야 하는데 폐쇄적인 상태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봤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집권하기 위해선 북한 경제가 지금보다 좋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체제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 결국 김정은 집권 이후 지난 5년은 준비기간이었던 셈이다. 안보와 경제는 김정은의 정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목표인 것이다.
공용철_KBS PD
“북한 입장에선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북정책이 일관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시장주의 요소 도입하고 경제 기초체력 키워
김현경 | 최근 방문한 평양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확인했다. 우선 평양의 겉모습이 확 달라졌다. 2012년 완공된 창전거리를 필두로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의 재개발 사업을 마쳤다. 현재 이곳에는 위락시설이 대거 들어서 있다. 김정은 체제 강화를 위한 사업으로 보인다. 체제강화를 위해서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유통산업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돈을 내고 지불하는 방식이 남한 마켓과 차이가 없다. 가게마다 냉동기가 구비돼 있고, 식당마다 화로를 갖추고 있다. 이는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눈에 띄는 또 하나의 변화가 북한이 시간을 비용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평양 택시 기본요금이 1㎞에 0.5달러라고 한다. 택시비가 비싼 데도 택시가 많다는 것은 사람들이 돈보다 시간의 가치를 우위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요즘 북한 영수증에는 일련번호가 나란히 찍혀 있다. 이는 계산을 정확하게 한다는 의미이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공용철 | 과거와 달라진 평양의 최근 모습이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오늘날 북한의 변화는 시장화 정책과 관련 있다. 북한의 시장화는 북·중관계를 통해 발전했기 때문에 나진, 선봉 등 국경도시가 내륙도시 보다 생활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최근 나진의 모습을 찍은 영상을 보면, 북한 시장과 장마당이 중국의 시장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특히 북한 시장이 거리가 아닌 백화점 건물 안에 형성돼 있다.
눈여겨볼 점은 북한이 최근 국산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관광객이 구매하는 모자, 신발, 기념품 등을 북한이 자체 제작해 판매한다. 국경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외화벌이나 장사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최근 평양에 현대식 아파트 건물이 대거 들어섰다. 그렇다고 평양의 변화를 북한의 전 지역으로 확대해 해석해선 안 될 것이다. 평양, 국경지역과 내륙지역 간의 격차는 매우 크다.
장용훈 |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가 ‘애민(愛民)’이다. 건물 공사 붕괴로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김정은이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 매체가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보도하면서 담당자를 질책하거나 꾸짖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북한 권력자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저 하나의 정치적 쇼맨십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갖는 정치적, 사회적 함의가 굉장히 크다.
시장 제도화… 민생경제를 국가경제로 흡수
공용철 | 김정은 시대 경제정책의 핵심 중 하나는 인민 생활에 시장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농장과 공장, 기업소 등의 경영 자율성과 인센티브 확대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5·30 경제 조치다. 이는 내부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뜻이다. 이미 병진노선을 채택할 때부터 강력한 대북제재에도 인민 생활이 최대한 버틸 수 있게끔 기초체력을 갖추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시장에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시장 스스로 일어나도록 했다. 북한 부동산 경기와 생활 경제가 호조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북한은 시장화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이끌어가고 있다. 부동산 거래에서 이러한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부동산의 사적 소유를 인정한다는 것은 시장화를 제도화함으로써 큰 틀에서 민간의 영향력을 결집해 국가 경제를 키우겠다는 의미다.
장용훈 | 과거의 북한 경제 주체는 국가였지만, 지금은 행위자가 기업과 개인으로 확대됐다. 개인의 능력이 발현되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지금 김정은의 경제 개혁은 중국 초기 경제 개혁 모델과 비슷하다.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당시 농업 분야, 기업 개혁뿐만 아니라 금융 개혁도 함께 추진했다. 그 결과 상업은행, 농민은행이 생겼는데, 현재 북한에서도 상업은행이 등장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 변화는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막는 수준이 아니라 시장주의 요소를 적극 받아들이고 이를 제도화하려는 의지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김현경 |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돌아가는 것은 내부적으로 가용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경제 역량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민생경제를 흡수하는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비핵화를 통해 다음 도약의 길을 찾는 것이다. 내각의 책임성 강화 등 경제 현장의 긍정적 흐름을 정치가 막지 않으려는 흐름도 있다. 시장과 사회주의를 대립적 관계로 보는 인식이 있는데, 2018년의 사회주의는 과거와 다르다. 체제에 맞게 시장을 활용하고 있다. 과거의 프레임으로 북한을 규정지으려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김현경_MBC 기자
“사격하기 전에 영점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듯, 남북 교류도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북한 주민 기대감, 발전 동력으로 작용할 것
장용훈 |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이어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네 차례 방북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명 평양 시민 앞에서 ‘핵 없는 한반도’를 주창했다. 북한 사람들로서는 ‘핵 없는 한반도’보다 ‘더 나은 미래가 열릴 수 있다’는 말이 더 가슴에 와 닿았지 않았을까. 북한 주민 사이에서 ‘곧 좋아질 것이 다’, ‘이번에는 다르다’라는 기대감이 생겼을 것 같다. 그러니 북한 매체가 북한 주민들을 향해 기대감을 너무 갖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아니겠나. 결과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기대감이 북한 사회가 발전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공용철 |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평양 능라도 5·1체육관에서 비핵화를 언급했을 때 북한 주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해석은 우리식 접근이다. 북한 사람들은 밖에서 당과 수령에 절대 충성하며 집단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안에서는 가족의 생계를 도모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대립되는 가치의 혼란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또 기본적으로 북한 사람들은 군사는 북한이, 경제는 남한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했기 때문에 큰 충격을 줬을 것 같지는 않다.
김현경 |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모든 분야에서 남북이 교류를 강화하자는 데 의견을 모은 상태다. 다만 세 가지 제약이 있다. 일단 수많은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남북의 역량이 역부족이다. 대북제재도 걸림돌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10년간 남북 교류가 없었던 탓에 민간단체의 대북사업 흐름이 10년 전에 머물러 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대북사업 여건 또한 달라졌다. 사격하기 전에 영점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듯, 남북 교류도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용철 | 한반도 긴장 완화라는 큰 틀 속에서 북한이 교류협력 사업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 북한이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한 단계 열고 나아갈 수 있게 됐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돼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비정부기구(NGO) 측에서 우유, 밀가루, 분유를 지원하면 받았다. 지금은 북한 경제가 발전하면서 북한 주민의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됐다. 남북 교류사업의 볼륨이 커졌다는 얘기다.
민주평통, 평화 여론 조성… 국민적 합의 도출해야
장용훈 | 대북사업을 준비하는 정부와 민간은 북한을 파트너로 생각해야 한다. 비핵화 조치 이후 대북제재가 해제됐을 때 과연 북한이 남한과만 교류할까. 과연 한국 기업은 미국, 중국, 일본에 비해 어떠한 경쟁력을 내세울 수 있을까. 한국 사회가 북한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민주평통이 적극 나서야 한다.
장용훈_연합뉴스 기자
“북한의 경제 변화는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막는 수준이 아니라 시장주의 요소를 적극 받아들이고 이를 제도화하려는 의지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김현경 | 우리 사회 여론 조성 과정이 건강하지 않다. 진영을 나눠 싸우고, 가짜 뉴스를 유포한다. 민주평통은 대통령 자문기구로 우리 사회의 건강한 대북정책 여론을 조성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지향하는 여론을 모아주기를 부탁드린다.
공용철 | 북한 입장에선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북정책이 일관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최근 정부가 공론화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모하고 있는데, 민주평통이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