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ll

남북은 문산~개성 간 경의선 철도 연결구간과 동해선 철도 연결구간을 공동 점검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정동진역 부근의 동해선 철도 모습. 남북합의서에 합의한 내용을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비핵화 이끌어낼 남북합의서
생산적인 국회 논의 거치자”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 정상이 전쟁을 종결하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기로 했다. 판문점 선언이 철저히 이행되려면 무엇보다 국내에서의 법적 제도화가 절실하다. 조약 체결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남북 간 합의사항이 국내법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비준 동의 절차를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2018년,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쟁점 중 북핵 문제만큼 복합적인 사안도 흔치 않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국내외 과제가 이행돼야 할 것이다.

대외적으로 보면,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선순환 궤도에 올라서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비교적 다양한 카드를 갖고 있다고 가정해보면, 북한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북·미 간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이유도 북한이 가진 정책 옵션이 다양하지 않아서다. 북한과 미국이 비슷한 등가의 카드를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데, 북한이 미국에 줄 만한 카드가 많지 않은 것이다.

국내에서의 법적 제도화 절실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 비핵화 과정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내 환경은 무엇일까. 남북 간 합의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합의 내용을 기본계획에 담아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계획’을 치밀하게 수립하는 것이다. 남북합의서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은 ‘중대한 재정 부담’을 주는 사안이므로, 국민 지지를 담아내는 법·제도적 과정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60조 1항은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거나 재정적 부담을 유발할 수 있는 조약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비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조약 체결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통제가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북 두 정상이 체결한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은 국가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 아니다. 헌법상 북한은 국가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다. 그렇다 보니 남북합의서에 대한 국회 동의 규정이 헌법에 부재한 상황이다.

그러나 남북합의서에 합의한 내용을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내용의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3항 규정을 마련했다. 다만, 이 효력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3조 제1항에 따라 남북관계에만 적용된다.

법제처의 법리 검토를 종합하면, 판문점 선언은 국회 동의 대상에 해당한다는 것이 행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평양공동선언의 경우, 법제처의 검토의견에 따라 국회에 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고 행정부내 절차를 거쳐 비준을 마쳤다. 앞서 통일부는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이 나온 뒤 법제처에 국회 동의가 필요한지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으며 8월 16일 법제처로부터 검토 의견을 받았다.

법적으로 볼 때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주거나 ‘입법’이 필요한 경우를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대한’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국회의 동의권 행사 여부가 좌우된다.

7월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문희상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 회의를 진행하며 의사봉을 치고 있다.

통일부는 재정의 규모라는 게 어느 정도일 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운다고 볼 수 있는 지 그 여부를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물론 남북 공동 추진 사업에 대해서는 정확한 재원 규모와 추가 입법이 필요한 사안인지 그 여부를 관계부처가 모여 협의해 판단한다. 만약 국회 동의가 필요한 경우, 동의안을 제출하는 등의 절차를 밟는다는 기본 입장이다.

국회 동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행정부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이 동의안과 관련된 법률을 따져 동의 여부를 결정한다. 주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과 ‘국회법’에 따라 동의 성립 여부를 결정한다.

보통 일반적인 남북합의서는 남북 간 회담 대표가 합의문에 가서명을 하면 행정부 내의 법령 정비를 담당하는 법제처가 이를 심사한 후 차관 회의 및 국무회의에서 심의한다. 대통령의 재가를 거친 이후 국회에 동의안을 제출한다. 심의·의결을 마친 국회가 동의 결과를 정부에 이송하면 대통령이 비준한 후 공포하는 절차를 따른다.

그렇다면 지난 남북 정상회담 합의사항에 대한 체결·비준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법제처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 ‘10·4 남북 공동선언’이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거나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워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행정부는 국회에 비준 동의안을 제출하지 않은 채 국무회의에서 10·4 선언을 심의한 후 대통령 비준을 거쳐 관보에 게재하는 형태로 공포했다.

‘국회 비준 동의’의 의미

그동안 국회 안팎에서는 판문점 선언을 조약으로 볼 것인가를 놓고 다양한 논의가 벌어졌다. 이 밖에도 판문점 선언의 국회 사전 협의 유무를 포함한 민주적 통제에 대한 논의, 판문점 선언 체결 주체의 국가성에 대한 논의 등이 핵심 논의사항이다.

현재 정부는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정치권이 여야 가리지 않고 지혜를 모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남북 합의에 대해 성실하게 국회의 동의 절차를 준수하고, 국회는 초당적 관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해 결론을 내림으로써 국정 운영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남북관계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대한 국민 지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치는 문제다. 법적 근거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다.

남북 간 합의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의 수립과 국회 보고, 필요시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침으로써 이뤄진다. 제1차, 제2차 기본계획이 수립돼 국회에 보고됐다. 이제 제3차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해 재정 부담을 수반하는 계획이 포함될 경우 국회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남북이 서로 합의한 사항은 단기간에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따라서 국가 재정 형편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 흐름을 고려하면서 남북의 합의사항을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에 세세하게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만약 이 계획이 국민에게 중대한 부담을 지울 정도로 재정이 소요된다면, 이를 국회에서 논의한 후 필요에 따라 국회 동의 절차를 밟으면 된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살펴볼 때 5년마다 수립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은 특수한 남북관계를 다루는 것이고, 남북관계의 문제는 국민의 동의를 받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년 단위의 기본계획과 별개로 연도별 세부 시행계획을 국회에 보고해 예산 심의를 받는 것도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6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상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회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발휘하고자 ‘대북정책 감독법(North Korea Policy Oversight act of 2018)’을 발의했다.

초당적 관점에서 남북관계 바라봐야

6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상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회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발휘하고자 ‘대북정책 감독법(North Korea Policy Oversight act of 2018)’을 발의했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상황을 정기적으로 미 의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한 법안이다. 이 사례를 참고해 한국도 유사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또는 기존 법률을 일부 개정해 관련 내용을 포함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는 대북정책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인하는 것이며, 나아가 정부가 추진하려는 대북정책의 동력을 강화하는 조치가 될 것이다.

남북합의서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을 국회에서 동의하는 절차를 거칠 경우 ‘표 대결’이나 ‘정쟁’을 격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회에서의 동의 절차가 갖는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공감대를 확인하는 것이므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되더라도 협치의 정신을 발휘해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은 그 특성상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장애물 또한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 이를 극복하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려면 정부 정책의 바탕에 국민의 든든한 지지가 굳건하게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그 지지를 확인하는 법·제도적 장치로서 국회의 대북정책에 대한 민주적 통제 기제를 잘 운영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초당적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 승 현 이 승 현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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