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남북 공동선언 합의 11년 만에 처음 열린 민족 통일대회 현장에서는 남북이 화합하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민간 방북단은 10월 4일 10·4 선언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방북해 약 56시간을 머물며 북측 인사들과 여러 차례 만났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비롯하여 정부, 국회, 지방자 치단체, 민간단체 인사로 구성된 160여 명의 민간 방북단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을 두루 만난 뒤 10월 6일 오후 7시 20분께 정부 수송기를 타고 성남 서울공항으로 돌아왔다.
이번 행사는 9·19 평양 공동선언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평양 공동선언은 “남과 북은 10·4 선언 11주년을 뜻깊게 기념하기 위한 행사들을 의의 있게 개최한다”고 명시했다.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방북 이튿날인 10월 5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였다. 현장에는 대형 한반도기와 함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 가자’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기념 행사에는 평양 시민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남북은 ‘공동 호소문’을 채택하고,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계속 전진시켜 새로운 역사를 펼쳐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4·12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을 철저히 지키고 이행해나갈 것을 촉구했다.
11월 적십자회담 개최… 남북 국회회담 추진
이번 평양 방문은 황인성 민주평통 사무처장에게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 황 사무처장은 방북단에 포함돼 평양을 방문했다. 황 사무처장은 “평양 순안공항을 배경으로 우리 측 인사들과 북측 인사들이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북한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황 사무처장은 달라진 평양 거리에 대해서도 소감을 밝혔다. 그는 “거리에서 책을 읽는 학생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평양 시민들로 도시가 활기를 띠었다”면서 “도시 곳곳에 내걸린 미래 지향적인 구호들과 만경대학 생소년궁전에 걸린 교육 관련 슬로건이 변화를 도모하는 북한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방북 당시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바람도 내비쳤다. 그는 “평화로운 한반도가 하루빨리 정착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함께 어울리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9월 평양 정상회담 개최기간 동안 비교적 구체적인 남북 교류협력 방안이 제시됐다. 4월 판문점 선언 이후 논의해온 남북 산림협력사업이 병해충 방제와 양묘장 현대화를 주축으로 11월 본격화된다. 산림청은 10월 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북측 산림 관계자들과 가진 산림협력회담에서 이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양측은 회담에서 소나무 재선충병 등 병해충 공동 방제 계획을 확정했다.
11월 중으로 재선충 방제 약제를 북측에 제공해 내년 3월까지 공동 방제를 진행하고, 올해안에 10개의 양묘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는 게 골자다. 현재 이 사업을 위해 올해와 내년에 걸쳐 1437억 원의 예산이 편성돼 있다.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남북 철도 연결과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도 재개된다. 10월 15일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은 이르면 11월 착공식을 열기로 하고, 이를 위해 중단됐던 공동 조사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경의선은 10월 말, 동해선은 11월 초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남북 정치인들도 11월 중으로 평양에서 남북 국회회담을 개최하기로 뜻을 모았다. 당초 국회는 10월 말 개최를 목표로 남북 국회회담을 추진했지만, 북측의 실무 접촉 보류로 당분간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은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국회회담을 제안하는 친서를 북측에 보냈고, 10월 1일 여야 5당 대표와 만나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명의로 동의한다는 답신이 왔다.
11월로 생각하고 있고, 인원은 30명 정도 규모로 시작할까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개성 만월대 출토유물 남북 공동 전시회 개막식 및 학술회의가 2015년 10월 15일 개성 고려성균관에서 열렸다. 사진은 개성 만월대를 찾은 남북 관계자들이 돌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모습.
남북 교류사업을 준비하는 지자체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2019년 전국체전 서울·평양 공동 개최, 경평축구 부활 등 남북 간 체육 교류를 집중적으로 타진하던 서울시는 수질·산림 분야 협력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후다. 서울시는 대동강 수질 개선, 산림 복구처럼 북한이 필요로 하는 분야이면서 대북제재 국면에서도 교류협력이 가능한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강원도는 동해선 철도와 대륙횡단철도 연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산림 협력 등 환경 분야 협력을 통한 남북의 긴장 완화도 강원도의 남북 교류사업 핵심 아이템이다. 강원도는 한반도 및 동북아 차원에서 환경과 에너지 공동체를 구축하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산림 협력, 공유하천, 비무장지대(DMZ) 생태환경의 복원과 보존사업에 집중하고, 여기서 파생하는 다양한 협력사업들을 발굴할 계획이다. 산림 육모 지원, 말라리아 공동 방역, 결핵 퇴치 지원, 송어양 식장 건립, 남북 공동 영농사업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경기도는 11월 15일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를 개최하기로 북측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행사에는 남북한 전문가와 위안부 할머니 등 전쟁 범죄 피해자를 비롯해 중국, 미얀마, 필리핀 등 동아시아 전쟁 피해 당사국 관계자들이 참가하며,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를 초청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옥류관의 남쪽 분점(남한 1호점)을 설치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다만, 대규모 현금 투자가 필요한 만큼 대북 경제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아직까진 ‘협의’ 수준으로 진행하고 있다. 앞서 10월 1일 경기도는 원활한 남북 교류사업 추진을 위해 전국 최초로 평화주지사를 신설하고, 평화주지사 소관 업무를 확대하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정상회담 후 북한 유소년 축구선수들 방한
인천시는 남북 공동어로수역 조성을 비롯한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 구축사업을 추진 중이다. 부산시는 방북기간 중에 한반도 항만물류도시협의체 구성을 비롯한 5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대전시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과 평양·남포에 위치한 평양이과대학·김책공업종합대학 간의 연구 교류를, 경상남도는 통일딸기사업을 비롯한 농수축산 분야 교류협력부터 경제 협력을 위한 현지 조사 등의 실천적 사업을 각각 북측에제안했다.
바이오 의약·천연물을 특화한 충청북도는 대북제재하에서도 추진이 가능한 결핵 및 기초 의약품 지원사업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남북관계의 훈풍 속에 지자체들이 남북 교류협력 사업 준비에 속도를 내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각 지자체의 남북 교류사업이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10월 11일 밝혔다. 이 대표는 “지자체의 남북 교류사업이 중복되지 않도록 행정안전부와 통일부가 협의를 해서 조정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정·청 협의 때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사업도 기지개를 펴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8차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조사가 10월 22일 재개됐다. 2016년 1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2년 9개월 만이다. 만월대에서는 2015년 11월 가로 1.36cm, 세로 1.3cm, 높이 0.6cm 크기의 금속활자가 출토됐다.
3년 전 중단된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사업이 남북 관계 훈풍을 타고 다시 추진된다. 2015년 12월 중국 다롄에서 열린 제25차 공동편찬위원회 회의를 끝으로 잠시 주춤했던 사전 편찬사업은 남북관계의 기복으로 중단과 재개를 거듭해왔다.
남과 북은 11월 중으로 개성에서 실무 접촉을 갖고 연내 26차 편찬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남측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측의 ‘조선말대사전’에서 23만여 개의 어휘를 선별하고, 남북 및 해외에서 발굴한 새 어휘 10만여 개를 더해 겨레 말큰사전에 수록할 예정이다.
남북 교류 재개를 계기로 체육 분야 교류가 속도를 내고 있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북한 유소년 축구선수들이 10월 25일 우리나라를 찾았다. 10월 28일부터 11월 2일까지 강원 춘천에서 열린 제5회 아리 스포츠컵 국제유소년(U-15) 축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북한 선수단은 이날 서해선 육로를 통해 들어왔다.
인원은 문웅 4·25체육단 단장을 비롯해 84명(선수단 74명·임원 10명). 내년 5월 예정된 6회 대회는 북한 원산을 개최지로 검토하고 있다. 남북체육교류협회측은 “원산이 한국에 공개되는 최초의 이벤트로 기록될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개성 만월대 출토유물 남북 공동 전시회 개막식 및 학술회의가 2015년 10월 15일 개성 고려성균관에서 열렸다. 사진은 개성 만월대를 찾은 남북 관계자들이 돌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모습.
개천절 공동 행사, 민화협 상봉대회 등 열기로
과거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 중단됐던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평양 심장전문병원 건립공사도 재개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공사가 70%가량 진전돼 재개될 경우 3개월 정도면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평양 심장전문 병원은 연면적 2만여㎡에 지하 1층, 지상 7층 260개 병상 규모로,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2007년 12월 건설을 시작한 것이다. 의료장비는 미국 사마리탄 펄스 재단이 지원하고, 의료진과 의료 기술 지원은 세브란스병원 등 참여를 희망하는 병원과 논의 중이다.
남한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와 북한 단군민족통일 협의회는 11월 11일 평양 단군동 광장에서 개천절 공동 행사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윤승길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사무총장은 “고대 음력(11월 11일)에 맞춰 개천절 공동 행사를 갖기로 했고, 개천절 공동 행사를 매년 열기로 남북이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남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는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와 11월 3일부터 4일까지 금강산에서 공동 행사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행사의 이름은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민화협 연대 및 상봉대회’로, 남북 민화협이 노동, 농민, 청년·학생,여성, 종교, 문화 등 6개 부문별로 협의를 진행한다. 남북 민화협이 공동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