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남북 공동선언 합의 11년 만에 처음 열린 남북 공동 기념행사 개최를 위해 방북단 160여 명이 10월 4일부터 6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평양을 찾았다. 지은희 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기억연대) 이사장도 공동대표단으로 이번 행사에 함께했다.
오늘날 북한은 과거와 어떻게 다르던가요.
“북측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여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에 새로운 빌딩이 대거 들어섰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건물 색깔도 화려해지고,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어요. 북측의 한 인사는 민간 방북단을 향해 ‘우리는 1년 안에 빌딩 수십 채를 지을 수 있다. 그 정도로 기술과 노동력을 가지고 있다’며 자랑을 하기도 했어요.
자신들이 가진 능력과 속도, 효율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사실 2000년만 해도 북한의 전기 문제가 심각했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 적어도 평양은 전기 문제를 해결한 듯 보였습니다. 밤이 되면 고려호텔, 유경호텔 건물에서 조명이 반짝거렸죠. 북측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수력발전’을 통해 자체 전기를 생산한다는데, ‘팩트’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웃음).”
남북관계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방북 기간 동안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 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심도 있게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남북 간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북한은 경제 개발을 원하고 있어요. 북한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른 비약의 시대’를 외치며 빠른 속도로 경제를 성장·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에서도 본인들이 확실히 비핵화 조치에 임할 테니, 우리도 속도를 내달라고 요청을 하더군요. 비핵화 과정을 따르는 북측의 의지는 확고하고 진지해 보였습니다.”
정부와 정당, 민간이 함께한 민족통일대회
11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10·4 선언 공식 기념행사에서 남과 북은 ‘남북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10·4 선언의 의미를 되새기고 남북 정상이 합의한 4·12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을 이행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10월 5일 오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는 남측 방북단 160여 명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북측 인사가 자리한 가운데 ‘민족통일대회’가 성대하게 개최됐다.
북한은 10·4 선언 11주년 기념행사의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던가요.
“남북 양측 정부와 정당, 시민사회가 한데 모여 통일대회를 개최한 것은 광복 이후로 이번이 처음이라고 북한은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남북 공동행사가 민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이번에는 정부가 함께 참여한 것을 높게 평가했죠.
10월 4일 인민문화궁전 무대 뒤로 7·4 공동성명, 6·15 공동선언, 10·4 선언, 4·27 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을 새긴 대형 전시물이 설치돼 있었어요. 북한은 지금이야말로 그간 합의한 선언을 실행할 때라면서 합의 이행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지 전 이사장은 “남측 대표단 6명, 카운터파트인 북측 대표 6명 등 총 12명이 2박 3일 동안 함께 다니며 논의를 이어갔다”면서 “10월 7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하루 앞둔 바쁜 상황임에도 북한이 안내를 한시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향한 북한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은희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왼쪽 첫 번째)을 비롯한 각계 대표들이 10월 4일 오전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남북 여성 교류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는지요.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북한이 여성 교류를 포함해 부문별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여력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특히 일손이 부족한 듯 했습니다. 여성 교류 분야의 카운터파트도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고요.
우선 내년 3월 8일(세계 여성의 날) 기념 ‘3·8 여성대회’나 8월 14일(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 ‘아시아연대회의’ 등을 남북이 공동 개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전체 상황을 고려해 행사 개최 시기를 정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은 3·8 여성대회를 어떻게 개최해왔나요.
“매년 남과 북은 3·8 여성대회를 따로 개최해왔습니다. 북한도 행사를 대규모로 진행해왔어요. 남북이 뭔가 같이 하려면 그동안 서로 해왔고, 또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3·8 여성대회가 남북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어요.
다만, 내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함께 크게 기념하기로 했으니, 3·8 여성대회를 별개 행사로 개최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여요. 그래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안에 3·8 여성대회를 하나의 부분행사로 진행하는 방법도 고려해보려 합니다. 8월 아시아연대회의도 마찬가지고요.”
3·8 여성대회는 남북의 공통분모
1990년대에도 남북 여성 간 만남이 있었다고요.
“1991년부터 1993년 사이에 서울, 평양, 도쿄에서 네차례 걸쳐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를 통해 남북 여성들의 만남이 성사됐습니다. 행사는 도쿄 토론회 이후 단절됐고,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교류만 명맥을 이을 수 있었지요.
그러던 중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이 있었고, 이후 변화된 환경 속에서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자 2001년과 2002년 남북 여성계가 6·15와 8·15 민족 공동 행사에 참여해 상봉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중 2001년 남북 여성 100여 명이 평양에서 ‘6·15 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 여성통일대회’를 개최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 교류 행사를 갖기로 합의했지요. 2002년 10월 금강산에서 남한, 북한, 해외 참가자들이 모여 ‘6·15 공동선언 실천과 평화를 위한 남북 여성 통일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남북은 2000년 3월 ‘위안부’ 문제를 놓고 공동 대응 회의를 가졌다. 1998년 서울에서 열린 제5차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2000년 도쿄에서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을 개최하기로 합의했고, 남북이 공동 기소팀을 꾸려서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그해 7월 남북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공동 기소장 작성 원칙에 합의했다.
12월 도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 법정을 통해 명실공히 ‘남북통일’을 이루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모든 협의가 일제히 중단됐다. 2015년 12월 28일에는 느닷없이 한일 양국 간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남과 북의 입장은 어떠한가요.
“위안부 문제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남북이 연대해온 이슈였습니다. 남북 양측이 위안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추구하는 해결 방식 또한 같았지요. 북한이 성노예 문제를 비롯한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 해결에 적극적입니다.
올 7월 16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사업 및 조직을 통합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로 재탄생했습니다. 북에도 1992년에 조직되어 우리와 연대해 온 단체가 있어요. 바로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입니다. 남북 간의 상호 이해가 있고, 함께 사업을 해온 역사가 있기에 앞으로도 협력할 수 있는 의제라고 봅니다.”
지 전 이사장은 “북측의 명칭이 바뀐 것은 남한과 함께 국제적 흐름에 따라 호흡을 맞춘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은희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이제 NGO는 우리 내부적으로 평화 여론을 도모하고 남북 협력을 강화하되 남북이 서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운동계의 대모인 지 전 이사장은 1983년 광복 이후 첫 진보적 여성단체인 여성평우회(한국여성민우회 전신) 공동대표를 시작으로 20년간 여성운동가로 활동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여성부 장관과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덕성여대 총장을 지냈다.
2007년에는 남북 정상회담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하기도 했다. 30년 넘게 여성계를 훑으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사회가 남북교류를 위해 애쓴 수고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안다.
남북 교류가 봇물 이루듯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향후 남북 교류 국면도 달라질 듯합니다.
“그동안 비정부기구(NGO)는 정부가 직접 나서지 못할 때 대신 나서서 북한과 교류하곤 했습니다. 대북제재로 북한 지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을 통해 남북 교류의 통로가 닫히지 않게 하는 것도 NGO의 역할이었죠. 하지만 우리가 평화통일 운동을 이야기하는 지금은 남북 교류 국면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남북 양국 정부가 선도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이럴 때 NGO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예요. 첫째, 우리 내부적으로 평화 여론을 도모하는 겁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도 이제 NGO가 정부와 발맞춰 움직여야 해요. 분야별로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는 건 마땅한 일이지만 조급해하지 않았음 합니다. 남북 정부가 큰 틀의 논의를 마무리하면, 남북 교류는 일상적으로 이뤄질 겁니다. 그때를 기다리자는 겁니다.
둘째, 남북 협력을 강화하되 남북이 서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내는 겁니다. 이를테면 역사문제를 비롯해 남북 겨레말 큰사전 공동 편찬사업, 남북 공동 유해 발굴사업 등 상호 협의할 수 있는 이슈를 찾는 겁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우선순위를 정해 효율적으로 진행해야겠죠.
남북 모두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니 무작정 이것저것 같이 하자 할 게 아니라 서로 속도를 맞춰 일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각자 내부의 평화 여론을 강화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테고요.”
지 전 이사장은 남북 교류사업을 둘러싸고 지자체, NGO가 과열 경쟁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우리가 남북 교류를 추진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한반도 평화와 공동 번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우리 내부적으로 통합적인 남북교류가 추진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외국민에 대한 존중 필요”
1999년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민주평통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민주평통과 자문위원에게 당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민주평통이 재외국민과의 관계를 긴밀히 가지면서 포용적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고국에 대한 재외국민의 기억은 자신이 한국을 떠나던 당시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얼마나 변했는지, 남북관계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울러 정치적 편향에 따라 재외국민 사회가 분절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극복할 있도록 노력해주기를 당부합니다. 통일운동 분야에서 여성의 리더십이 강조되는 만큼 여성 자문위원의 비율도 더욱 늘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