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기행 통일 여행

4· 27 판문점 선언이 이루어진 장소인 평화의 집. 금강산 만물상은 수만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만 가지의 형상을 하고 있는 금강산의 진경이다. 만물상은 기기묘묘한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주변의 절경과 어우러져 금강산을 대표하는 풍광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구선봉·구룡폭포·상팔담·만물상 …
금강산 절경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나에게 금강산은 늘 설렘의 대상이다. 19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 초창기부터 이 사업(현대아산금강산 관광)에 참여해온 나는 금강산 관광 준비단으로 차출돼 1년 6개월가량 현지에서 근무했다. 2008년 중단된 금강산 관광이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재개됐다는 가정하에 그립고 설레는 3일간의 금강산 답사기를 적어본다.

남측 출입국사무소에서 금강산 가는 수속을 마친 금강산행 버스가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북측으로 이동한다. 긴장감 감도는 버스 안 분위기와 달리 차창 밖 비무장지대(DMZ)는 이곳이 정녕 65년간 서로 대치한 곳인가 싶을 만큼 무척 고요하다. 남과 북을 나누는 군사분계선을 순식간에 넘어서자 금강산 1만2000봉 중 가장 마지막 봉우리라는 구선봉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쌍봉낙타의 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낙타봉으로 부르기도 하는 구선봉은 우리 일행에게 금강산 마지막 봉우리가 아닌 금강산 첫 봉우리로 다가왔다. 구선봉 앞으로 석호의 일종인 거울처럼 맑은 감호(鑑湖)가 보인다. 역사적으로 동해 북부선 대저역이 있는 곳에 자리한 감호 주변에는 제법 큰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60여 년 세월의 무상함만큼이나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북측 통행검사소 세관원들이 환한 미소로 남측 관광객을 반갑게 맞아준다. 남북관계가 초긴장 상태가 되면 이들의 표정이 굳어지지만, 지금처럼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 땐 이들의 얼굴에도 사뭇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수속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오른 우리 일행은 금강산 관광 중심지인 온정각을 지나 저 멀리 수정봉이 보이는 금강산호텔에 도착했다.

100여 명의 광주 지역 청년들은 남북 양측의 국방부, 국토교통부,교육부, 문화체육부, 보건복지부,외교부 등 6개 부처에 소속돼통일 한반도를 위한 각 분야별정책을 토론하고 논의하는시간을 가졌다. 금강산 육로관광 실시 이후 줄을 이어 이동하고 있는 관광버스 행렬.

비로봉 바라보며 온천 즐겨

이곳 첫 일정은 금강산 온천이다. 금강산 산행의 중심인 온정리(溫井里)는 그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예로부터 온천이 유명한 곳이다.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니 사르르 눈이 감긴다. 미끈미끈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온천수가 여정의 피로를 단번에 풀어주는 것 같다. 금강산 온천의 묘미는 노천탕이다. 소나무 군락 너머로 자태를 뽐내며 솟아 있는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을 바라보면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신선이 따로 없다.

그날 저녁 자유시간에 북측에서 운영하는 민족식당을 찾았다. 들쭉술과 함께 남쪽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참새구이가 술맛을 오르게 한다. 눈으로 즐기는 안주도 있다. 저 멀리 어둠 속 공제선이 만들어내는 금강산 풍광이다. 절경이 따로 없다.

다음 날 아침 금강산호텔 앞에 줄지어 선 버스를 타고 구룡연으로 출발했다. 닭알바위를 지나 창터솔밭에 들어 서자마자 금강산 미인이 줄지어 우리를 반겨준다. 이른바 미인송 군락지다. 마치 미인의 자태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금강산에 자라는 적송을 특별히 미인송이라 부른다. 잔가지가 잘려나간 채 위로 곧게 자란 소나무는 우리가 흔히 보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목적지인 목란관 주차장에 도착한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산행에 앞서 주차장에서 가볍게 몸풀기 체조를 한 후 본격적으로 산에 오른다. 초입에 있는 목란관은 금강산을 대표하는 사진 촬영 명소다. 순서대로 차례를 기다려 독사진 한 장 찍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수림대, 앙지대를 거쳐 거대한 바위에 한 사람씩 머리숙여 통과해야 하는 금강문을 지나자 다리가 저려온다.

산삼이 녹아내린 계곡물인 삼록수에서 목을 축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시원하고 쌉쌀한 물맛이 진짜 산삼이 녹아 있는 듯, 한 모금 마시자 기운이 절로 솟아나는듯하다. 다시 힘을 내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몇개를 지나고 깔딱고개를 넘자 탁 트인 시야에 옥류동계곡이 나타났다.

옥류폭포와 함께 깊은 소(沼)로 이뤄진 옥류동은 남쪽 계곡에서는 볼 수 없는 규모를 자랑한다. 옥류동의 절경을 감상하기 좋은 널따란 너럭바위는 그 이름도 ‘무대바위’다. 무대바위에서 잠시 북측 안내원의 즉석 공연이 열린다.

옥류동을 지나자 연주담, 비봉폭포, 무봉폭포 같은 금강산 명소가 줄지어 등장한다. 특히 수직 절벽에서 떨어지는 139m 비봉폭포는 위와 아래로 나눠 봐야 할만큼 그 규모가 대단하다. 조금 더 오르자 구룡폭포의 웅장함이 소리로 먼저 느껴졌다. 마침내 관폭정에 올라 구룡폭포를 마주했다. 화강암 사이로 세찬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진다.

그 모습이 이름처럼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형세를 띠고 있다. 바위에 부서진 물보라는 오색 무지개를 그려내며 구룡폭포의 신비감을 높이는 특수효과처럼 영롱하다.

정상회담 배경을 실물로 보다

당초 구룡폭포까지 오르기로 했지만, 감흥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상팔담까지 오르기로 했다. 구룡폭포까지 비교적 완만한 구간이 이어졌다면, 이제부터는 철계단의 연속이다. 쉬엄쉬엄 40분가량 오르니 상팔담을 내려다볼 수 있는 봉우리에 당도했다.

시계 방향으로 휘몰아치는 물길을 따라 8개의 소를 이룬 상팔담은 전설 ‘선녀와 나무꾼’에 등장하는 팔선녀가 당장이라도 목욕을 하러 내려올 만큼 그 경치가 장관이다. 내려다보던 시선을 들어 동남쪽을 바라보니 집선연봉과 세존봉이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바로 이 모습이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진 판문점에 걸린 금강산 그림의 배경이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100여 명의 광주 지역 청년들은 남북 양측의 국방부, 국토교통부,교육부, 문화체육부, 보건복지부,외교부 등 6개 부처에 소속돼통일 한반도를 위한 각 분야별정책을 토론하고 논의하는시간을 가졌다. 금강산 옥류관 물냉면(왼쪽)과 단원들 간의 절묘한 호흡과 고난도의 묘기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평양모란봉교예단의 공연.

기분 좋은 산행을 마치고 나니 허기가 밀려왔다. 점심식사 메뉴는 금강산 오기 전 이미 옥류관 냉면으로 결정된 터다. 천하일미라 북한이 자랑하는 그 유명한 평양 옥류관 분점인 금강산 옥류관은 그 외형도 평양에 있는 옥류관 본관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고소한 맛이 일품인 녹두지짐을 맛보는 와중에 냉면이 등장했다.

식당 봉사원들이 직접 육수에 식초와 겨자를 풀어내라며 시범을 보여준다. 모든 일행이 봉사원의 행동을 따라 하기 바쁘다. 일행 중 한 명이 가위를 찾자 봉사원이 “명 길어지자고 먹는 국수를 왜 잘라 드시려고 합니까” 하고 가볍게 타박 하면서도 가위로 먹기 좋게 면발을 잘라준다.

점심 식사 이후 이어진 선택 관광시간. 나는 삼일포와 해금강 관광에 나섰다. 삼일포와 해금강은 구룡연 못지 않은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단풍관부터 시작해 봉래대에서 장군대로 이어지는 삼일포 경치는 그 옛날 신라 화랑이 왜 예정된 하루를 넘겨 사흘이나 머물렀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한다. 삼일포와 해금강 코스를 선택한 이유는 경치만이 아니다. 이 코스를 오가는 와중에 북한 주민과 그들이 사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실제 가는 길에는 우체통이 놓인 작은 우체국이며, 인민학교와 중학교를 볼 수 있었다. 수줍은 듯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북한 주민들과 얼굴이 마주치기도 했다.

온정각으로 돌아와 평양모란봉교예단의 교예 공연을 관람했다. 평양교예단과 함께 북한을 대표하는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공연은 신기 그 자체다. 북한이 교예를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듯하다. 단원들 간 절묘한 호흡과 고난도의 묘기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데, 무엇보다 널뛰기, 꽃줄놀이 같은 우리 전통 민속놀이를 응용한 교예 종목은 ‘노들강변’, ‘풍년가’ 같은 민요 가락과 어우러져 신명이 난다.

셋째 날 아침. 하루 전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달달한 맛이 일품인 백두산 들쭉술을 과음하긴 했지만, 공기 좋은 금강산에서 아침을 맞으니 숙취 없이 머리가 상쾌하기만 하다. 오늘 갈 곳은 금강산의 웅장하고 기묘한 산악미를 만끽할 수 있는 만물상이다.

버스가 구불구불한 온정령 고개를 오르느라 멀미가 날 뻔했지만, 차창 밖으로 마주한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만들어낸 절경을 구경하느라 멀미마저 잊는다. 웅장한 바위를 뚫고 고고하게 서 있는 소나무는 마치 옥황상제가 정성스럽게 키우는 분재 같기도 하다.

드디어 버스가 망상정 주차장에 다다랐다. 삼선암과 귀면암을 구경하고 칠층암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등 뒤로 보이는 절부암에서 곰이며 원숭이, 토끼 등 온갖 동물의 형상을 찾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다 돌 틈으로 석간수인 망장천이 새어 나온다. 북측 안내원이 “이걸 마시면 짚고 온 지팡이를 두고 갈 만큼 젊어집니다” 하며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우리는 줄을 서서 석간수로 입을 축였다. 석간수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산을 오르려는데, 뒤에 있던 일행이 내게 등산용 스틱을 챙기라고 일러준다. 확실히 물 효험이 있나 보다. 만물상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인 습경대와 안심대를 거쳐 마지막으로 천선대까지 오르자 270도 방향으로 보이는 만물상이 장관을 이룬다. 파노라마 사진으로도 여러 장 이어 붙여야 담을 수 있을 만큼 그 형세가 장엄하다. 이곳에 붙은 명칭 만물상은 삼라만상 형상을 아우른다는 뜻이다.

100여 명의 광주 지역 청년들은 남북 양측의 국방부, 국토교통부,교육부, 문화체육부, 보건복지부,외교부 등 6개 부처에 소속돼통일 한반도를 위한 각 분야별정책을 토론하고 논의하는시간을 가졌다.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해금강.

금강산 관광이 남긴 것

3일간의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나자 왜 금강산을 ‘서부진 화부득(書不盡 畵不得)’이라 했는지 수긍이 간다. 글로 다할 수 없고 그림으로 얻을 수 없다는 그 뜻처럼 눈에 들어오는 금강산 연봉들이 펼쳐놓은 장관은 그 어떤 필설로도 표현할 수 없을 듯하다.

금강산 관광은 시작 이래 지금껏 195만 명의 남한 사람들이 다녀갔다. 금강산 관광의 가장 큰 의의는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북한과 그곳에 사는 북한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결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금강산은 남과 북의 만남의 장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리운 이산가족의 만남의 장이 됐고, 남북 대학생과 노동자, 종교인들의 만남의 장이 펼쳐진 곳도 바로 이곳 금강산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만남과 평화의 장을 통해 이질성을 극복하고 민족의 공통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정상회담, 군 장성급회담 등 정치·군사적 화해·협력의 밑거름을 만들었다는 점, 고성군을 중심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금강산이 있었기에 동해선을 통해 유럽까지 관통하는 철로를 연결하겠다는 구상도 나올 수 있었다.

금강산 관광은 1998년에 시작해 2008년에 중단됐다. 10년간 운영하고 10년째 중단된 상황에서 금강산 관광 20주년을 맞는다. 금강산 관광의 가치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가치를 계량하기 이전에 남북이 하나되는 자리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그래서 가봐야 할 곳이기도 하다. 철 따라 다른 이름을 가진 금강산은 마침 봉래에서 풍악으로 고운 옷을 갈아입고 우리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이희옥 이 영 호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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