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7월 4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개최된 남북 통일농구경기에서 여자 평화팀과 번영팀이 혼합 경기에서 점프볼을 하고 있다. 비핵화의 핵심 주체라 할 수 있는 북·미 대화가 지난 8월 말 이후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는 장면. 비핵화·종전선언 해법 찾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열려야

현 시점에서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협상의 진전을 위한 핵심 걸림돌은 연내 종전선언을 이룰 수 있느냐다. 종전선언에 대한 개념 규정 및 의미 부여가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이에 따라 종전선언을 핵심으로 한 향후 북·미 간 대화의 방향성에 대해 전망해본다.

지난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북한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지도자는 ‘9·19 평양 공동선언문’을 통해 한반도의 실질적인 평화 정착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들을 발표했다. ▲비핵화 부문 ▲군사 위협 해소 부문 ▲남북한 교류협력 부문 등 세개 영역에서 중요한 합의를 도출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우리 국민들과 국제사회는 최근 잠시 정체 국면을 보였던 북·미 대화의 향배, 그리고 이와 관련한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 진전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올 초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로 비롯된 남북한및 북·미 간 대화 국면의 전개는 지난 약 10개월 동안 한마디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6·12 북·미 정상회담은 이러한 시간들 속에서 백미의 순간이었고, 남북한은 물론 모든 주요 당사자 국가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역사적인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대와 희망이 큰 만큼 역경과 고난 역시 크듯, 한반도 협상 국면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특히 북한이 과연 언제 어떤 방식으로 비핵화를 위한 결정적인 행동을 보여줄 것인지, 또한 이와 관련해 미국은 얼마나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응할 것인지 그야말 로 운명적인 순간에 직면해 있다.

진척 내지 못하는 북·미 대화

사실 비핵화의 핵심 주체라 할 수 있는 북·미 대화가 지난 8월 말 이후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참고로 현 국면에서 비핵화 프로세스의 경우 북한과 미국을 협상의 주체로 간주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스탠스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 과정에 다소 답답한 흐름이 계속되면서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차츰 우려와 걱정이 쌓였던 것 역시 사실이다.

6·25전쟁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쟁 상태를 먼저 종식시켜달라는 북한의 입장이 옳은 것인지, 이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충분히 약속했으니 비핵화의 실질적인 조치를 먼저 취해 달라는 미국의 입장이 옳은 것인지 선뜻 판단하기 어려운 요소까지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평양 공동선언문’이 밝히고 있는 전향적인 내용들은 높이 평가할 만하고, 김정은 위원장과의 담판을 토대로 또다시 미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불씨를 다시 살려낸 것이다.

잠시 돌이켜보면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예방하고 회담 결과를 설명한 바 있다. 이어 6월 19일 김정은 위원장은 또다시 중국을 방문해 올 들어 세 번째 북·중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3차 북·중 정상회담에서 향후의 북·미 대화가 너무 속도를 내지 않도록 합의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고, 결국 7월 초 세 번째로 평양을 찾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 귀국을 했다는 논란을 빚게 된다.

그사이 언론에서는 북·미 간 기 싸움이 본격 전개됐다, 종전선언의 시점이 문제다,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닌가, 미국이 대국(大國)답지 못하다 등의 각종 분석과 설명들이 이어진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말로 예정됐던 폼페이오 장관의 네 번째 평양 방문을 전격 취소했고, 이후 북한 9·9절 행사 전후 북한 방문이 예상되던 시진핑 중국 주석의 북한 방문을 취소하게 된 중국 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한 강경 입장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5월 8일 랴오닝성 다롄의 휴양지 방추이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4일 오후(현지시간)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악수를 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는 바로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작동하기 시작한 것인데, 아직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머지않은 장래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도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미 간 중요한 외교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모두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9월 25일 유엔총회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북·미 간 협상의 불씨를 다시 한 번 확실히 되살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고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추가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종전선언과 교환할 만한 비핵화 관련 조치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협상의 진전을 위한 핵심 걸림돌은 연내 종전선언을 이룰 수 있느냐의 문제로 알려져 있다. 종전선언에 대한 개념 규정 및 의미 부여가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전제로, 종전선언을 핵심으로 한 향후 북·미 간 대화의 방향성에 대해서 잠시 전망해보면 다음과 같다.

핵보유 리스트 제출 약속 vs 종전선언

우선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4·27 판문점 선언’에서 연내에 종전선언을 한다고 남북한 정상이 합의한 바 있고, 또한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안 중 세 번째 사항이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이므로 당연히 미국이 연내 종전선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비핵화와 관련해 각종 주요 실험장과 시설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선제적으로 폐기하고 있으니, 북한이 가지고 있는 비핵화의 진정성을 의심해서는 안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미국 입장에서 보면, 김정은 위원장과 가진 정상회담 자체가 미국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신뢰성과 진지함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은 내심 미국 내 거의 모든 전문가들과 언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과 정상국가에 준하는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이 알아주기를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종전선언은 필요한 상황에서 당연히 이뤄져야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좀 더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 정착과 비핵화의 커다란 관문으로 알려진 ‘종전선언’을 위한 북·미 간 접점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모종의 메시지에 대한 언론 보도 및 국내 외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각종 분석들을 종합해보면, 비핵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한 북·미 간 빅딜은 ‘핵보유 리스트 제출 약속 vs 종전선언’ 수준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이 주장해오던 비핵화 로드맵(시간표) 약속과 관련해서는 최근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를 암시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이 부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종전선언은 격식을 갖춘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이뤄질 수도 있고, 혹은 다양한 회담을 통한 정상들의 일련의 발언 및 약속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집착은 미국 내에서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과거 어떤 미국 대통령도 이룩하지 못한 북한문제 해결이라는 업적을 달성하고 싶은 것이고, 이 점은 다양한 경로로 통해 이미 수차례 밝힌 바 있다.

북한 문제의 해결은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동맹, 한·미·일 군사협력, 미·중 간 경쟁 게임의 복잡성 등을 포함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속셈에 의하면 북핵 문제를 해결 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본인의 리더십 및 국내 정치적 입지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의 통큰 담판을 통해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 경제의 성장을 확실하게 견인할 수만 있다면 비핵화가 북한의 생존과 안정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러한 판단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데 유리한 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역사는 무수히 많은 우연의 경로와 우연의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의도한 각자의 이익에 따른 전략적 선택과 행동을 우리가 적극 활용해 영구적인 한반도 평화 정착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 변수에 유념해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동북아 체스판으로?

첫째, 오는 11월 6일로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과 대북정책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만약 상하원 모두 민주당의 지배하에 놓이고 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지가 더욱 좁아진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본인의 정치적 계산과 의도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대폭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한 전략적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둘째, 지금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다. 6월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대미 수출품 500억 달러어치 상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 조치를 시작으로 이후 다양한 관세 조치를 통한 대중국 압박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미국 경제의 4% 성장을 약속했던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5월 8일 랴오닝성 다롄의 휴양지 방추이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 미· 중 간 무역전쟁이 자칫 북한 문제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자칫 잘못하다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이 우리의 정책 역량을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동북아 체스판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사진은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런데 문제는 미·중 간 무역전쟁이 북한 문제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자칫 잘못하다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이 우리의 정책 역량을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동북아 체스판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단은 중국을 향해 ‘미국과 우호적이고 핵을 갖지 않은 북한’ 과 ‘미국과 적대적이고 핵을 보유한 북한’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시밭길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대체로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를 얻고 있다. 그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과 미국을 모두 끌어안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부들의 교훈을 잘 숙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상대적으로 진보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전제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략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미 대화가 성공적으로 이어져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연내 종전선언, 그리고 비핵화를 이룰 실질적인 조치가 동시에 진행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기 영 노 박 인 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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