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의 길을 묻다

2016년 8월 12일 열린 북한 평양 대동강 맥주 축전에서 행사 보조원이 맥주를 채운 잔을 배달하고 있다(왼쪽). 북한에서 많이 마시는 대표적인 병맥주는 대동강맥주다. 여자농구 남북 단일팀을 이끈 이문규 감독은 “남측 선수들뿐 아니라 북측 선수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단일팀의 위력을 보여주긴 힘들었을 것”이라며 “남북 선수 모두 노력하고 이기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의 제약도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마음으로 뭉친 단일팀
“평화의 슛 던졌다”

어떤 장면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역사가 된다. 여자농구 남북 단일팀은 중국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한 달 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값진 은메달을 합작해냈다. 남북 단일팀을 이끈 이문규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그동안 한마음으로 경기에 임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여자농구 남북 단일팀 주장 임영희의 중거리 슛이 골대 안으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갔다. 40 대 38. 남북 단일팀이 중국 팀과의 경기에서 처음 역전했다. 그러나 남북 단일팀 로숙영(북측)이 3쿼터 종료 1분 19초를 남기고 5반칙 퇴장을 당하면서 기세는 다시 중국으로 기울었다. 남북 단일팀은 분전했지만 김한별까지 5반칙 퇴장을 당하며 중국 팀을 더 추격하지 못했다. 잠시 후 경기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지난 9월 1일 인도네시아 자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GBK) 이스토라 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결승전.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코리아’의 저력을 보여주던 남북 단일팀이 결국 중국팀에 분패했다. 남북 단일팀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록 우리가 ‘만리장성’을 넘지는 못했지만, 중국 팀도 우리와 맞붙어 ‘아, 단일팀이 이렇게 강한 팀이구나’ 하고 깜짝 놀랐으리라 생각합니다. 호된 맛을 봤을 거예요.”

아시안게임 내내 화제를 몰고 다닌 여자농구 남북 단일팀 이문규(62) 감독이 한 얘기다. 우리 여자농구 팀이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림픽 대회의 경우 2000년 시드니올림픽 4위가 최고 성적이다. 우리나라는 당시 프랑스, 러시아, 브라질 등 세계적인 여자농구 강호들을 연파했고, 이 감독이 여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이 대회에 출전했다. 18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여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이게 한민족인가 싶었다”

하나일 때 더 강한 ‘남북 단일팀’을 이끌어본 소감이 어땠을까. 그는 “만난 지 며칠 만에 주장이자 맏언니인 38살 임영희가 25살 로숙영의 얼굴을 보듬으며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좀 신기했다”는 말부터 꺼냈다. “8월 1일 충북 진천선수촌 농구장에서 북측 선수 로숙영, 장미경, 김혜연이 남북 단일팀에 정식으로 합류 했어요. 얼굴 생김새가 같고,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지 않은 데다 이미 7월 통일 농구 때 평양에서 정을 쌓았던 터라 남북 선수들이 거부감 없이 곧바로 어울리더라고요. 그때 ‘이게 한민족인 건가’ 싶었지요(웃음).”

이문규 감독이 북측 선수들에게서 처음 느낀 감정이 ‘친근감’이었다면 두 번째 느낌은 ‘익숙함’이었다고 한다. 선수들이 뭔가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고, 남측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적응하려 애쓰는 모습, 그리고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이 모두 남측 선수 모습과 조금도 다름이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북 선수들 간 호흡도 잘 맞았던 듯합니다.

“남측 선수들뿐 아니라 북측 선수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단일팀의 위력을 보여주긴 힘들었을 거예요.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북측은 패스를 연락으로, 스크린을 차단이라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없다 보니 속성으로 용어를 가르칠 수밖에 없었는데, 정성심 코치(북측)가 훈련이 끝나면 숙소로 돌아가 북측 선수들에게 농구 용어를 숙제 내주고 시험까지 보게 했어요.

점수가 모자라면 혼도 내고요. 덕분에 빠르게 북측 선수들이 농구 용어를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북측 선수들이 열심히 용어를 숙지해 나중에는 오히려 우리가 북측 용어를 쓰고 북측 선수들이 영어를 구사해 훈련장에 웃음이 흘러나올 정도가 됐지요. 서로가 이러한 노력과 이기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의 제약도 뛰어넘을 수 있었죠.”

남북 선수 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나름의 비법이 있었나요.

“남북 선수들이 사용한 숙소가 다르지만 식사할 땐 진천선수촌에서 같이 먹게 했어요. 이동할 때도 같은 버스를 탔고요. 숙소에서 쉬거나 잠잘 때 빼고는 하루 반나절 붙어 지내니 마치 옛날에 알던 사람처럼 서로 위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이 정겹더라고요.

”이 감독은 단일팀에서 뛴 로숙영, 장미경, 김혜연 세 선수가 “부족한 부분을 살뜰하게 메워주었다”고 평가했다. 자질을 타고난 로숙영은 골밑싸움뿐 아니라 내·외곽 능력이 출중하고 장미경은 정통 포인트가드 부재에 신음하던 대표팀의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줬다. 이 감독은 “로숙영과 장미경은 당장 국내 프로리그에 데려와도 최상위급이다. 우리 선수들과 호흡도 잘 맞춰 대견하고 기특하다”고 극찬했다.

북측 정성심 코치도 한마음이 됐던 모양입니다.

“정성심 코치와도 호흡이 잘 맞았어요. 제가 훈련 중에 뭔가 이야기를 하면 정성심 코치가 얼른 나서서 북측 선수들에게 풀이해 이야기를 해줬어요. 따로 또 지시를 하는 것이죠. 그래도 안 되는 부분은 숙소에서 또 숙지를 시키더라고요. 감독 입장에서 볼 때 정성심 코치는 무척 성숙한, 훈련을 잘 받은 지도자입니다. 자신이 뭔가 말하려고 하기보다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에요.

사실 정성심 코치가 남한에 와서 새로운 경기 운영 방식과 전술, 훈련 방법을 많이 배워갔어요. 우리의 운동 기술이나 선수 간 움직임을 무척 신기하게 받아들이더군요. 제가 북측 관리자에게 ‘북측 최고지도자가 농구를 좋아한다고 하니, 너희도 발전된 농구를 보여줘야하지 않겠냐’고 말했고, 결국 허락을 받아 정성심 코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농구 연습경기를 찍은 동영상이나 전술을 기록한 자료를 전해줬어요. 나중에 정성심 코치를 만나면 그 자료 어떻게 했냐고 물어볼 참이에요.”

맛이 연하고 깨끗하며 거품성이 좋은 대동강 1번 맥주는 북한에서 인기가 가장 높다(위). 북한에선 캔맥주를 ‘떼기식 통맥주’라고 부른다. 대동강 떼기식 통맥주는 2017년부터 생산됐다. 2018 자카르타 · 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남북 단일팀이 8월 1일 열린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뒤 함께 시상대에 올랐다. 국제종합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일부 종목에서 단일팀을 이룬 남북은 금·은·동메달을 모두 따내는 의미 있는 성적을 거뒀다.

한민족이 한 팀 구성해 경기… 그 자체에 만족

결과적으로 여자농구 남북 단일팀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언론과 농구 팬들은 여자농구가 이번 대회를 계기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됐다며 크게 반겼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 오랫동안 부진의 늪에 빠졌던 여자농구가 다시금 선전하게 되기까지 감내해야 했던 바가 있었다.

단일팀을 향한 관심이 높았던 만큼 부담감도 컸을 듯 합니다.

“남북 선수 모두 제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해줬어요. 단일팀을 조직하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남북 선수들이 서로 어울리며 경기를 치렀으니까요.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모두 단일팀이 30% 승률을 갖고 있다고 봤어요. 결과적으로 선수들이 결승전에서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치렀지 않았습니까. 선수들에게 잘했다고, 고맙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남북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 선수들의 사기가 저하될까 우려했던 게 사실입니다.

“사실 아시안게임 가기 전 서울에서부터 부담을 안고 갔어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 하나가 됐을 때 어떤 경기를 해야 하나…. 생각이 정말 많았습니다. 단일팀 구성에 따른 부담감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냥 안고 갔어요. 다만 ‘단일팀이 약하다’, ‘메달 딸 수 있겠냐’ 이런 말이 있었는데, 주변의 이러한 의구심이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선수들 사기에 영향을 미치거든요.아시안게임 기간 내내 선수들을 많이 독려했어요. ‘너희가 최고다’ 하고요. 선수들 모두 뭉쳐 열심히 했습니다. 마치 친자매처럼요.”

한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지만 그럼에도 선수들 간의 마음이 맞으니 기적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단일팀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줬습니까.

“정치적으로는 난 잘 모르겠어요(웃음). 단지 한민족이 한 팀을 구성해 경기를 했다는 것, 그 자체에 만족해요. 현재 북측에 좋은 선수들이 몇 명 더 있다고 하니 감독 입장에선 이러한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면 역량 있는 선수들과 단일팀으로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독님도 선수 시절에 북측 선수와의 인연이 있다면서요.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 처음 북측 선수단과 만났어요. 당시 정치적으로 남북이 대치하던 때라 특별한 교류가 없었어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땐 남북 선수들과 공동 입장을 하며 북측 선수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사실 대화라고 해봤자 인사 나누는 수준이었고, 보는 눈이 많으면 그나마도 어려웠지만요.”

이번에 만나보니 북측의 분위기가 과거와 달라진 면이 있던가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18년 만에 북측 선수단을 만났는데, 태도가 상당히 적극적이고 협조적이었어요.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북측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죠.”

맛이 연하고 깨끗하며 거품성이 좋은 대동강 1번 맥주는 북한에서 인기가 가장 높다(위). 북한에선 캔맥주를 ‘떼기식 통맥주’라고 부른다. 대동강 떼기식 통맥주는 2017년부터 생산됐다. 이 감독은 “한민족이 한 팀을 구성해 경기를 했다는 그 자체에 만족한다”며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통일 농구대회에서는 남북한 선수를 합쳐서 평화팀 , 번영팀으로 나눠 경기를 치렀으면 한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북한 농구의 특징은 뭔가요.

“북측 선수들이 키가 작고 덩치가 왜소한 편이에요. 체력도 남한 선수에 비해 떨어지고요. 그렇지만 끈기, 의욕은 남측 선수보다 월등히 뛰어납니다. 오히려 우리 선수들이 보고 배워야 해요. 아무래도 북측 선수들 체구가 작다 보니 치고 빠지는 식의 조직화된 플레이를 잘해요. 마치 서커스단이 곡예를 하는 듯 하달까요. 우리와는 경기 스타일이 전혀 다릅니다. 앞으로 정성심 코치를 통해 북측에도 새로운 전술이 도입될 것으로 기대해요.”

한 달 동안 함께 땀 흘린 여자 선수들은 이별의 순간에도 활짝 웃으며 또 한 번의 만남을 기약했다. 남북 선수들의 약속대로 농구인들은 10월 남측에서 다시 만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통일 농구대회를 10월 3일부터 진행하는 데 잠정적으로 합의하고 세부 일정을 북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감독은 “15년 만에 만나 약간 어색했던 첫 통일 농구대회와 달리 10월에 열리는 통일 농구는 이미 우정을 쌓은 남북 선수들이 반갑게 다시 만나는 무대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정치 배제해야 스포츠 정신 발휘돼”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통일 농구대회에서는 어떤 경기를 치르고 싶은가요.

“통일 농구대회처럼 남북한 선수를 합쳐서 평화팀, 번영팀으로 나눠 경기를 치렀으면 해요. 이를테면 여자 프로농구 올스타전처럼 말이죠. 선수도 즐기고 관중도 즐기는 그러한 게임을 했으면 해요. 상금도 걸어서 서로 나눠 갖고요. 경기 후에는 북측 선수들이 남한에서 관광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남북 스포츠 교류의 의미와 과제는 뭔가요.

“지금의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에는 활발한 스포츠 교류의 역할이 컸습니다. 우리 남녀 농구 대표팀이 지난 7월 평양을 방문해 2003년 이후 15년 만에 통일 농구대회를 열었고, 이후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남북 단일팀으로 이어진 것처럼 말이죠. 다만 스포츠에 정치는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할 때 본연의 스포츠 정신이 발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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