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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 영상 사진으로 본 평양지역의 2005년과 2012년 산림 황폐화 정도 비교. 두만강대교에서 본 북한 원정리세관. 중국 지도부 방북 계기로
전략적 소통관계 강화

앞으로도 중국은 북한의 경제 건설 총력 노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등 북·중관계를 역대 최상의 수준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핵화의 진전과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라는 장애물도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인도주의적 지원 등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초부터 기대를 모았던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행사(이하 9·9절)가 종료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과 함께 올해 9·9절을 ‘민족의 대경사’로 규정하고 성공적으로 치를 것을 독려했다. 이러한 ‘교시성 독려’를 배경으로 북한은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데 이어 9·9절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열병식은 내용 면에서 다소 축소됐지만 규모 면에서는 여느 정주년과 다름없었고, 기존의 ‘아리랑축전’을 대신해 대집단 체조 ‘빛나는 조국’을 새롭게 공연했다.

내용 면에서 전략군의 열병식 참여를 배제하고 대집 단체조를 새롭게 구성한 것은 대외적으로 공언한 비핵화 의지를 고려한 것이자, 대적으로 체제 결속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중대한 대내 행사를 치르면서도 대외 메시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행사의 첫 번째 특징은 행사 전반에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은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이미 대내 보도매체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공개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번 행사에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정권 수립 70주년이라는 상징성과 의미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의 치적들을 부각해야 하는 행사에서 비핵화를 언급한다는 것은 자체적으로 모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9·9절 70주년 행사의 특징

하지만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시사하는 행사를 기획했다. 대표적으로 북한은 열병식 대열에서 핵·미사일과 같은 전략무기를 운용하는 전략군의 비중을 대폭 축소했다. 북한이 자랑해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은 전략무기들을 열병식에서 제외했다. 이는 앞서 여러 차례 열병식에서 전략군을 부각시켰던 사례와 사뭇 다른 점이다. 한마디로 북한은 이번 행사를 통해 비핵화 표현이 없는 비핵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미국의 반응을 의식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번 행사에서 비핵화 표현과 더불어 미국이라는 용어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지 않았다. 북·미관계는 현재 교착 국면에 처해 있지만, 북한은 이러한 조심스러운 대미 태도를 통해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접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대북정책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적 입지를 강화해주고 이를 통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의 이러한 대미 접근 그리고 이러한 대미 유화 메시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특징은 70주년 행사의 성격과 취지와는 달리, 김정은 대신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경축사를 했다는 점이다. 김영남이 헌법상 국가를 대표하는 직책을 갖고 있으므로 국가 행사에서 경축사를 하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프로토콜로 읽힐 수 있다.그러나 북한 스스로 ‘민족의 대경사’로 규정한 행사에서 국가의 최고 직책인 국무위원장이 연설을 하지 않은 것 역시 부자연스러운 프로토콜로 읽힐 수 있다.

여기에는 북한의 복잡한 내부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자신의 치적을 자신의 입으로 자랑하기 어려운 젊은 지도자의 고민이 담긴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럴듯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으며, 공개석상에서 김정은의 입으로 직접 비핵화를 언급하기를 바라는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어려운 여건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네 번째 특징은 북·중 혈맹관계를 과시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 해남도 전선부대 종대와 군수공업 부문 노동계급 종대를 참여시켰다. 지금까지 많은 열병식을 치렀지만 이들 부대가 참가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 부대는 과거 중국의 국공내전 당시 북한이 중국 공산당을 지원했던 부대들이다.

북한은 이러한 이례적 퍼포먼스를 통해 북·중 혈맹의 역사를 보여주는 한편, 북·중 혈맹의 역사는 중국의 일방적 원조의 역사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은 최근 진행 중인 북·중관계 긴밀화 추세 속에서 양국관계가 대등한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던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공위성 영상 사진으로 본 평양지역의 2005년과 2012년 산림 황폐화 정도 비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월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최근 북 · 중관계 동향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을 앞두고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북설이 비등했다. 김정은이 올해 들어 6월까지 세 차례 중국을 방문함에 따라 시진핑의 답방이 기정사실화되고, 9·9절 축하 방문이 적절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방북설은 그야말로 ‘설’로 그쳤고,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해 9·9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이로써 시진핑의 방북을 9·9절 행사의 최대 이벤트로 삼으려던 북한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시진핑 방북의 무산 원인을 둘러싸고 다양한 추측들이 나돌았다. 애초부터 계획이 없었다는 설, 북한의 핵우산 제공 요구에 대한 부담설, 비핵화 교착에 대한 중국 책임론 회피설 등이 그것이다.

필자는 마지막 해석에 무게를 두고 싶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책임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중국이 미·중 무역전쟁의 무기로 북한을 활용한다는 발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가뜩이나 비핵화 협상이 교착에 빠진 상황에서 시진핑의 방북에도 불구하고, 교착 상황이 지속되거나 악화될 경우 중국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적 제약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철회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자 중국의 부담이 훨씬 컸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남북 정상회담과 9월 말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보고 시진핑의 방북을 재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관련해 반신반의하다가 최근에는 진정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양상이다. 그동안의 북한 동향을 예의주시한 결과, 1978년 중국 공산당 제11기 3중 전회를 계기로 본격적인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했던 상황과 유사한 것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이다.

중국은 북한이 지난 4월에 개최한 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의 한 축인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하고 경제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새로운 노선을 표방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경제 건설 총력 노선의 성공을 위해서는 북·미관계 개선을 비롯한 우호적인 대외 여건 조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평가와 판단을 바탕으로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넘어 최고의 관계 형성을 지향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3차례 방중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북 추진은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됐던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접근 방식은 북한과의 관계 긴밀화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올해 북·중관계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지난 6월 19일 개최된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밝힌 ‘3불변 약속’이다.

중국이 북·미관계 고려하는 까닭

시진핑은 어떠한 국제정세의 변화에도 변하지 않을 세 가지 약속으로 첫째, 북·중관계의 공고한 발전을 위한 중국 당과 정부의 노력, 둘째, 중국 인민의 북한 인민에 대한 우호관계 유지, 셋째,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중 앞의 첫째와 둘째는 북·중 양국이 전통적으로 견지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세 번째 약속은 의미심장하다.

사회주의라는 공통의 정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리더 격인 미국을 겨냥해 공동 협력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러한 포석은 현재의 국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향후 북·미관계를 고려한 약속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중국은 북한의 경제 건설 총력 노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등 북·중관계를 역대 최상의 수준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비핵화의 진전과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라는 장애물도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인도주의적 지원 등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비핵화의 진전이 이뤄진다면 이에 상응하는 대북제재 완화를 앞장서서 독려할 것이다. 북한 역시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중국이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또한 경제 건설 총력 노선의 중간 점검인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2020년 종료)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도 중국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인공위성 영상 사진으로 본 평양지역의 2005년과 2012년 산림 황폐화 정도 비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9월 26일(현지시간) 제73차 유엔총회가 열린 미국 뉴욕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박 경 석 이 기 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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