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미래를 찾는다

1998년 10월 8일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합의·서명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소고(小考) 한일관계 패러다임 근본적 전환
함께 공감하고 행동할 것부터 찾아야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 ·오부치 선언)’을 합의·서명한 지 19년을 맞는다. 요즘 양국 전문가들 사이에 이 선언의 정신을 재조명하고 되살려내야 한다는 주장이 오가고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한일관계는 현재 문재인 정부가 처한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전임 김영삼 정부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을 목표로 대대적인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전개했다. 광화문 뒤편에 자리한 구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이러한 대일 강경노선은 식민지 지배 사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독도 영토주권 문제, 어업협정 등 가히 전방위적인 영역에 걸쳐 있었다. 특히 일본 우파 정치인들의 과거사 관련 망언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은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거친 언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연히 한일관계는 최저점을 찍었다.

전임 박근혜 정부도 독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진전이 없는 한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는 초강수를 두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전제조건을 너무 높게 설정하고 다른 이슈들과 과도하게 연계했다. ‘12·28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그러한 자충수의 대가라고 할 수 있으며, 문재인 정부는 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 김대중 정부의 대일 햇볕정책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는 어떠한 방식으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임했는지 살펴보자. 김대중 정부가 설정한 기본 원칙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과거사 문제 해결. 김대중 대통령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 측의 사과 없이 진정한 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측 모두 과거사 인식의 갭을 좁힐 자세가 돼 있지 않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일본인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한국인에겐 탈(脫)식민지화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양측이 여전히 과거사의 포로로 남아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김대중 정부가 일본에 외압을 가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은 부분이다. 과거사 문제 해결은 일본 자신이 자발적으로 풀어야 하며 바로 그것이 전제돼야만 한국은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98년 10월 방일 때 일본의회 연설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500년 동안 임진왜란 기간 7년, 식민지 지배 36년을 제외하면 한일관계는 비교적 양호했다는 역사인식을 밝혔다. 이에 일본 측은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오부치 일본 총리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표현을 명기함으로써 이에 화답했다. 일본의 저명 칼럼니스트 후나바시 요이치가 말하듯, 과거사 문제의 문맥에서 보면 그의 대일 정책은 대일 햇볕정책이라 할 만했다.

두 번째 원칙은 양국이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강조였다. 양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이란 세 가지 가치를 공유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확산이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그는 민주주의 국가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확산은 이 지역의 지속적인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핵심적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보았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한일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는 등 한일관계에 순풍이 불었다.

이와 더불어 경제적 상호 의존을 심화시켜 시장경제에 대한 기득권을 창출하면 국가 간 관계는 더욱 협조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양국은 미국을 경유한 준동맹관계에 있는데 이는 일본과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자산으로 여겼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이 모델로 삼은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프랑스 간 화해였다. 독·불 양국은 상호 적대감을 극복했을 뿐 아니라 유럽연합(EU)의 산파 역할을 수행했다.

세 번째는 실질적인 국익을 고려한 대일정책의 성격과 영역 규정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일본의 금융 지원은 사활적인 것이었는데 대일 유화적 자세는 부분적으론 이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일본의 지지 확보도 필요했다. 대북 햇볕정책의 목표 중 하나는 북·일 수교 촉진도 들어 있다. 직접적으론 북한 경수로 지원 사업에 대한 일본의 재정적 공헌을 재개시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의 성공도 중요했다.

| 반일 아닌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로 접근

김대중·오부치 선언, 그리고 함께 채택된 행동계획은 이 같은 원칙들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었다. 행동계획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둔 교류와 협력의 촉진, 국방 관계자 인적 교류 및 정보 교환을 통한 안보 협력 강화, 대북정책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관한 긴밀한 정책 공조, 일본수출입은행 융자 확대를 비롯한 경제 협력 강화, 일본 대중문화의 한국 시장 진출 개방, 일왕의 한국 방문 추진, 일본 입국비자 간소화, 과거사 공동 연구와 같은 비공식적 교류의 확대 등을 망라했다. 가히 한일관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 기획이었다.

우리가 이 선언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할 때 과연 어떠한 점에 유의해야 하는가. 먼저 과거사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뜨거운 갈등을 촉발할 쟁점으로 남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일정책은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로 그간의 성과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그만큼 폭발력이 강했고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당시 한일 위안부 합의 재검토를 공약했고, 얼마 전에는 합의 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발족시켰다. 태스크포스는 1주일에 2회 이상 회의를 여는 등 강행군을 하고 있으며, 연말까지 최종 결과 도출을 목표로 한다고 전해진다.

합의를 준수하라는 일본 측의 압력이 드세어짐을 느낀다. 특히 평화의 소녀상 문제는 일본의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식도에 박힌 가시처럼 여긴다. 주한 일본대사관 및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을 하루빨리 이전해달라는 말이다. 하지만 양국 국민 사이에 과거사 인식의 갭을 좁힐 마음의 준비는 여전히 되어 있지 않다. 이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도 말한 바와 같이 일본이 자발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물론 우리도 이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계기로 일본에게 외교적 주도권을 넘겨주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디까지나 반일 민족주의 프레임이 아닌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인권 규범을 신장하는 중대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그 분들의 희생이 값질 수 있으며 후손들의 삶도 좀 더 나아질 것이다.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는 한일 교류의 정점을 이뤘다.

다음으로 김대중 정부가 보편적 가치를 강조한 이래 적어도 양국 지도층 사이에선 가치의 공유가 한일관계를 파악하는 기본 틀로 정착됐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공유는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확산이 지역의 평화를 위한 핵심적 디딤돌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다만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주의 또한 과거사 문제와 마찬가지로 타국에 강제할 수는 없는 것으로 생각한 점은 되새겨야 한다. 군부 독재 시절 김대중 대통령은 케네디나 라이샤워 등 미국 인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곤 했다고 한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도움을 바라지만 내정 간섭은 원치 않는다. 민주주의는 한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할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일본과 미국 정부가 한국의 독재정부에 협력하고 있으니 그것은 중단해달라.”

| 하나씩 다시 시작해야 할 시점

최근 정부나 전문가들의 논조를 보면 민주주의 공유론을 양국 간 군사·안보 협력의 근거로 거론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은 같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비(非)민주주의 국가인 북한, 중국 등에 대항해 강고한 해양·민주주의 연대를 구축하자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전통지정학적 사고가 자리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중국의 부상으로 지정학적 지형이 요동치는 가운데 대륙과 해양에 끼이거나 중국의 팽창에 대한 두려움에서 일단 동맹 개념에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간 안보 협력을 기존의 냉전 질서를 극복하기 위한 탈전장화 국가전략 차원에서 추진했다. 전장화를 심화하고 냉전구조를 강화하는 식의 한일 간 안보 협력을 결코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다시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현 상황에 비춰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과 원칙들을 차분하게 재해석하고 그것이 주는 함의를 도출해낼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선진국이자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일관계에만 서로의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지역 차원에서 양국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서로 묻고 함께 행동하자. 그것이 김대중 대통령이 지금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는 말일 것이다.

서승원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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