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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8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일국민협약 추진 방안을 보고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대북·통일정책 위해
‘통일국민협약’ 만든다

지난 8월 23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외교통일 분야 핵심 정책 토의에서 통일부는 평화통일 공감대 확산을 위한 주요 방안으로 통일국민협약을 추진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통일국민협약의 의미와 내용을 살펴보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대북·통일정책은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여야 간에 대북정책의 방향을 놓고 논란이 거듭됐고, 시민사회조차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이분법적인 정책 논쟁을 벌이는 일이 잦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민사회가 보여주는 생각의 간격보다 훨씬 증폭된 이념적 대립이 국회에서 벌어지면서 북한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대북·통일정책의 양극화 현상은 결과적으로 정부 내에서 대북정책의 추진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북한은 북한대로 이러한 남남갈등 양상을 최대한 활용해 대남전략의 소재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정부를 배제하고 입맛에 맞는 민간단체에만 접촉 신호를 보내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남남갈등을 부추겨 우리의 대북정책에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북·통일정책에 만연한 남남갈등은 정치·사회적 비용만 야기한 것이 아니라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보비용까지 들게 만드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젊은 세대에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점점 낮아지고, 거듭되는 북한의 도발로 말미암아 대북 인식도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대북·통일정책마저 양극화함으로써 정책 추진 과정에서 우리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통일국민협약의 필요성은 바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는 점을 뛰어넘어 대북·통일정책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안보비용을 야기하는 남남갈등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라고도 볼 수 있다.

| 국민참여형 대북·통일정책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 간 소통과 협의를 통해 정책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높여나가는 제도로서의 통일국민협약은 국민참여형 대북·통일정책의 설계와 이행으로 가는 첫걸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통일국민협약을 통해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공간을 넓히고 신뢰를 증진시킬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대북·통일정책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통일정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부가 의제를 독점하고 일부 전문가들만의 참여를 통해 완성된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데 그쳐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작 통일 및 북한 문제에 관한 다양한 관심과 이해를 가진 민간단체들과 시민들은 정책 생산 과정에서 배제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방식의 정책 추진은 인도 지원이나 남북 경협 분야에서 민간단체나 기업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을 감안해볼 때 민간의 창의력과 활력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민들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대북·통일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의견 수렴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민간과 정부의 파트너십은 남북관계 발전에서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중반 북한 식량난 당시 민간단체가 제기한 인도적 대북 지원의 필요성을 정부가 수용함으로써 정책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 좋은 사례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정치·군사적 긴장 상황과 관계없이 비정치적인 민간 교류와 협력은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는 만큼 정책 수립과 추진 과정에서 민간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러한 구조를 개선하고 대북·통일정책에 대한 국민 참여의 폭을 넓히기 위한 시도가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정책을 놓고 상이한 의견을 조율해 합의 기반을 넓히는 방식을 뛰어넘어 정책 설계와 구상 단계에서부터 민간의 참여를 보장하는 국민협약을 체결하는 실험은 아직까지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가 시도해보지 않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국민협약의 성공적 체결과 이행은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이를 이해하고 지지하도록 강요하는 일방통행식 정책 집행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에 기반을 둔 통일국민협약을 성공적으로 제정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

| 다양한 주체 참여 보장 필수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일국민협약의 체결 및 제정 과정에 여야, 시민단체, 정부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이상적 추진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대북·통일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의견 수렴 창구도 만들어야 하고 여·야·정 협의체와 같은 방식의 제도화된 기구도 필요하다. 또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같은 헌법상 기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같은 협의기구 등과 민관 협업 차원에서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작업도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채널을 기반으로 여야, 시민단체, 전문가 그룹과 정부가 함께 참여해 의제를 선정하고 국민 의견을 종합해낼 수 있는 추진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통일국민협약 체결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추진체계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해서 과거처럼 정부나 관 주도로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쌍방향의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통일국민협약 체결이라는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게 협약의 체결 과정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전문가 중심의 상부구조보다 광범위한 국민 참여라는 하부구조를 튼튼히 하는 방향으로 추진체계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둘째, 통일국민협약 추진체계를 구성하기 이전에라도 지방자치단체나 시민사회의 직능별 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대북·통일정책 수립을 위한 공론화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통일교육에 대한 민간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균형 잡힌 통일교육을 통해 통일정책에 대한 합의 기반을 넓혀나가는 것도 이러한 공론화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주요 광역시를 중심으로 지역별 통일센터를 설치해 통일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민간 참여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특히 지자체의 경우 여야 단체장을 가리지 않고 남북 교류에 관한 수요가 적지 않은 만큼 남북관계에서 일정한 역할을 부여하고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통일부가 계획하고 있는 ‘지자체 남북교류협력협의체’도 이러한 방식으로 지자체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는 장으로 활용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북·통일정책에 관한 공론화와 협치(協治)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작업은 향후 통일국민협약 체결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통일 공감대 확산을 위한 우선 과제⁎여론조사 시기 : 2017년 6월 9~11일, 대상 : 전국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통일국민
협약 추진 48.5%, 통일 차세대 전문가 양성 20.%, 지역 단위의 시민 통일교육 9.8%, 통일 전시관 등 통일센터 설치 6.7%, 기타 4.0%, 모름·무응답 11.0%

셋째, 대북·통일정책의 지속가능성과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남북 간에 성사됐던 주요 합의들을 제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 간에는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에서부터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 공동선언 등 최고위급 합의들이 탄생됐다. 이뿐만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년)이나 남북 총리회담 합의서 등 기념비적인 합의문들도 다수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들은 정권 교체에 따른 정치적 환경 변화와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이행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합의를 위한 합의’에 그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부 남북 합의에 대해서만 국회 동의나 국무회의 심의를 거쳤을 뿐이다. 따라서 남북한 주요 합의에 대해서는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국회 의결을 거쳐 법적 효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 합의들을 제도화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장기 지속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국민통합적 대북·통일정책의 토양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법적 제도화가 필수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이 기존 남북 합의의 상호 이행을 약속한다면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 국회 의결을 거쳐 합의를 제도화하겠다”고 천명한 것도 이러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합의의 제도화는 통일국민협약이 추구하는 국민적 공감대에 기초한 대북·통일정책 추진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 통일국민협약에 대한 국민 여론 우호적

대북·통일정책에서 남남갈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던 만큼 통일국민협약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 또한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평통이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지난 6월 실시했던 올해 2분기 통일여론조사에서 통일 공감대 확산을 위한 우선 과제로 ‘통일국민협약 추진’을 꼽은 응답자는 48.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는 ‘통일 차세대 전문가 양성’(20.0%)이나 ‘지역 단위의 시민통일교육’(9.8%) 등 다른 과제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로, 대북·통일정책 분야에서 협치의 필요성에 대한 높은 열망을 표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민사회와 여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통일국민협약 체결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남남갈등 해소를 위한 첫걸음을 떼어놓기에는 충분하다. 통일이 ‘과정’이듯 통일국민협약 체결도 ‘과정’ 중심으로 사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성기영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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