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2012년 집권 이후 지난 9월 3일 6차 핵실험까지 총 4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했다.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도 2016년 이후 현재까지 폭주하고 있는 상태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75호 채택 3일 만에 북한은 또다시 ‘화성-12형’을 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에서 발사한 후 “화성-12형의 전력화가 실현됐다”며 국제사회 제재가 그들의 계획을 멈출 수 없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6차 핵실험 단행 직후 노동신문을 통해 북한 스스로가 밝힌 평가를 정리해보면, 북한은 ▲첫 수소탄 시험(2016년 1월, 4차 핵실험)에서 얻은 성과에 기초해 탄두부에 탑재할 수소탄의 기술적 성능을 향상시켰고 ▲타격 대상에 따라 핵탄두의 위력을 수십 킬로톤(kt)급에서 수백 킬로톤급까지 임의로 조정 가능하며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초강력 전자기파(EMP)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다기능 핵탄두를 갖췄고 ▲수소탄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100% 국산화됐을 뿐 아니라 무기급 핵물질 생산부터 부품 정밀 가공 및 조립에 이르기까지 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모든 공정들을 주체화했으며 ▲핵무기를 마음먹은 대로 꽝꽝 생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평가를 재정리해보면 ▲북한이 미사일에 탑재하는 핵탄두로 분열탄, 수소탄, EMP탄(핵폭발에 의해 생기는 강력한 전자기파로 각종 전자통신장비를 무력화함)을 제작할 능력을 갖추고 있고 ▲핵탄두의 폭발력 규모도 전술핵무기를 비롯해 전략핵무기를 제조할 만큼 다양화할 수 있으며 ▲자체 기술과 생산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핵무기 생산량은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핵무기 병기화 수준이 당에서 제시한 완결 단계에 이르게 됐다는 점을 시사하며, 외무성 대변인 발표대로 전략 무력의 전력화, 실전화, 현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 북한의 최종 목표는 핵태세 완성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북한은 6차 핵실험 이후 화성-12형 미사일 시험발사와 더불어 전력화 실현을 선언함으로써 사실상의 실전 배치를 승인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6차 핵실험을 전후해 중·장거리 미사일 실전 배치 승인을 두 차례 한 셈이다. 첫 번째는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지대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2형을 2월 12일 처음 시험발사했고, 5월 21일 두 번째 시험발사를 한 후 김정은은 실전 배치를 승인하고 대량생산을 지시했다.
두 번째는 화성-12형을 5월 14일 처음 고각으로 시험발사한 이후, 8월 29일에는 정상 각도로 고정식 거치 발사대를 통해 2700km의 시험발사를 단행했고, 9월 15일에도 정상 각도로 이동식 발사대를 통해 3700km의 시험발사를 단행한 후 전력화가 실현됐다고 선언했다.
북극성 2형과 화성-12형 모두 첫 시험발사 후 전력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3, 4개월 정도만 소요될 만큼 시험발사부터 전력화 단계로까지의 이행기간이 매우 짧다. 특히 괌을 사정권에 두고 사전 배치된 무수단 미사일(화성-10형)이 2016년 8차례 시험발사 중 단 한 번만 성공하고 모두 실패했기 때문에, 북한은 시험평가를 거친 후 안정성을 갖췄음을 확인하고 북극성-2형과 화성-12형 전력화를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러한 조급증은 2016년 김정은의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에 대한 핵무기 병기화 사업 지도(3월 9일)와 조선인민군 전략군 탄도미사일 발사훈련 참관 지도(3월 11일) 이후 한층 더 속도를 내왔다. 북한은 2016년에 들어와 노동 미사일, 신형 스커드-ER, 무수단, 북극성-1형, 광명성호 등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꾸준히 증대해오다가, 2017년 3월 18일 80톤포스(80톤 무게를 쏘아 올리는 추진력)의 대형 엔진 시험 성공으로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는 한층 더 속도를 내며 북극성-2형, 화성-12형, 화성-14형의 시험발사와 전력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북한은 2016년 1월 4차 핵실험 이후 사실상 남북관계를 비롯해 국제사회와 대화·외교의 창을 닫고 핵 개발의 마지막 단계 완성을 위한 전략적 도발에 집중해온 셈이다. 2016년 한 해에 4, 5차 핵실험을 연이어 감행하며 수소탄 실험과 표준화된 핵탄두를 위한 핵실험이었다고 강조하다가, 이번 6차 핵실험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되는 수소폭탄 실험이었을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과 관련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특히 6차 핵실험이 지난 5차례의 핵실험과 달리 폭발력 규모에서 5~16배 정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수소폭탄 실험 여부의 옳고 그름의 판단을 떠나 북한은 그들 나름대로의 핵태세를 갖춰나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지난 8월 23일 김정은의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 시찰을 통한 핵무기 병기화 사업 지도와 관련해 의도적으로 노출하고 있는 설계 도면을 보면 향후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과 ICBM 화성-13형의 시험발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핵국가라는 최종 목표로 가기 위한 북한의 최종 단계란, 협상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추가 시험발사를 통한 핵태세 완성인 셈이다. 따라서 북한은 6차 핵실험 이후에도 추가적인 핵실험 가능성을 열어놓고, 동시에 투발 수단과 탄두를 결합한 표준화, 소형화, 정밀성 향상을 위한 전략 도발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특히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잠수함 및 이동식 미사일발사대를 이용한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와 전력화 완성을 추구하기 위한 시험발사에 집중하고자 할 것이다.
| ‘최소 억제’에서 ‘제한 억제’로
북한의 전략무기 확충을 향한 기술적 도약과 이에 기초한 핵실험 및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는 한반도 긴장 상황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하고 있다. 기술적 도약은 핵태세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핵 운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남 공격력과 방어력을 나름 충족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주변 국가들의 전략적 셈법에 변화를 주는 전략무기를 확충해나가며 ‘최소 억제’에서 ‘제한 억제’로 그들의 전략적 위치를 한층 공세적으로 전환시키고자 할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위한 것도 아니고, 김정은 정권 유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북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물리적 능력을 확충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신격화된 3대 독재체제하에서 김정은이 핵·미사일 완성을 위해 질주하지 않는다고 해서 김정은 체제가 약화되거나 붕괴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온다고 해서 협상의 트랙이 가동될 현실성은 낮아 보이고 북한의 핵·미사일 폐기 가능성은 한층 더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중국과 러시아의 주장처럼 제재의 카드가 거의 소진됐고, 북한과의 대화의 장 마련 이외에는 북한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다. 제재와 압박의 카드는 소진되지 않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따라 더 다양화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북 제재에 동참할 수 있는 압박과 제재 카드가 소진되고 있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다. 북한의 전략 도발은 더 이상 중국과 러시아의 순망치한이 아니라, 한·미·일의 군사력 확대를 불러오는 초청자가 되기 때문이다.
북한 핵무기 개발 실무자들이 김정은에게 수소탄 핵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는 그들의 전략적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북한과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최종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서 중·러 양국이 제안한 로드맵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과 대응전략은, 각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한 중·장기적인 고차 방정식에 의한 해법 강구보다는 우리 안보의 시급성에 기초한 현실적인 단기 방안에서 전략적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우리의 현실적인 단기 방안이 궁극적으로는 동북아의 중·장기 해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비핵화 해법과 관련된 비대칭성부터 수정이 필요하다.
| 북한 비핵화 해법 비대칭성
북한은 핵국가 완성이라는 정해진 목표까지 자신들의 시간표대로 전략적 도발을 단행하는 ‘원 트랙’을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투 트랙’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대화와 압박을 통한 투 트랙이 있다는 것과 투 트랙을 운영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대화의 트랙을 뛸 생각이 전혀 없고 뛰지도 않는 북한을 상대로 투 트랙을 운영한다는 것은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과의 공조 과정에서 불필요한 에너지와 시간만을 소비할 뿐이다. 따라서 대화와 제재라는 투 트랙의 경기장은 개방하되, 운용은 북한의 행동 변화가 가시화될 때까지 압박이라는 원 트랙만 가동해야 한다.
한편 북한은 2016년 이후 전략 도발 폭주와 더불어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북한 주도의 자주통일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이를 감안해볼 때 북한은 대화 재개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우리의 방향과 완전히 다른 트랙을 달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행동 변화를 위한 제재와 압박의 원 트랙에 집중하는 한편, 군사적 대응 능력 강화를 통해 북한이 오판할 경우 북한이 받게 될 비용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그리고 대화의 창은 유지하되, 우리가 먼저 열겠다는 시그널을 보내서는 안 된다. 다급할 때 대화의 문을 먼저 두드린 것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이 대화의 문을 두드릴 때까지 북한을 압박하며 북한이 자주통일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우선적으로 느끼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