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이징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 측 인사가 중국 측에 “중국은 북핵 문제와 사드 배치 중 어느 것을 자국에 더 큰 위협으로 보는가?”고 물었다. 중국 측에서 아무 답이 없자, 사회를 보던 중국 측 좌장이 몇몇 인사를 지목하며 답변을 권유하는 배려를 보였다.
“한국으로서는 북핵 문제가 절체절명의 안보 문제이겠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여러 문제 가운데 하나다. 현재 중국은 북핵보다는 사드 문제를 더 큰 위협으로 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토론을 북핵과 유엔 제재에 집중시키려던 한국의 노력은 번번이 중국 측이 사드 배치 문제로 토의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중국 측의 전략적 관심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오죽하면 “북한과 관련된 중국과의 모든 회의는 ‘기-승-전-사드’로 끝난다”는 뼈 있는 농담이 한국 측 인사들 사이에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콜럼버스 효과’
앞서 질문을 던졌던 한국 측 인사는 숙소에 돌아와서도 “중요한 중국 기관 사람에게 직접 대답을 들으니 도움이 된다”고 운을 뗀 뒤, 아까 그 중국 측 답변을 다시 화제에 올렸다.
사실, “중국이 북핵보다 사드를 자국에 더 큰 위협으로 본다”는 것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다. 그럼에도 처음 듣는 입장에서는 매우 ‘신선한’ 정보였을 수 있다. 더구나 중국의 주요 기관 인사의 입에서 직접 처음으로 들었을 경우에는 더욱 깊이 인식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처음’ 발견하고 흥분하는 것과 비슷하다. 콜럼버스에게는 처음 발견한 ‘신대륙’이었지만 사실 훨씬 전에 그곳으로 이주한 원주민들에게는 ‘이미 발견된 대륙’이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책을 둘러싼 한국의 많은 논의 중에는 이렇게 ‘콜럼버스 효과’적인 측면이 많이 있어 보인다. 이것은 여전히 ‘극장 국가’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비밀주의와 중국의 언론 통제, 그리고 일부 ‘지한파’ 중국 학자들이 한국이 듣고 싶어 하는 발언들을 더욱 많이 유통시킨 측면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2013년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한국에 널리 유통된 중국의 ‘북한 포기론’이 대표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중국이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China should abandon North Korea)’라는 칼럼을 썼던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 쉐시(學習)시보의 전 부편집인 덩위원의 발언이 한국에 널리 퍼지면서 촉발된 중국의 ‘북한 포기론’과, 이에 대한 한국의 ‘희망적 사고’는 그가 해고당함으로써 바로 막을 내렸다. 그것을 보고 당시 중국의 한 학자는 “덩은 우리가 북한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버림받은 것은 그였다”라고 평했다.
사드 배치 갈등으로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행사가 대폭 축소되었으며 공동 주최 행사 없이 양국이 개별적으로 기념행사를 열었다.
매번 북한이 핵실험을 한 후 한국 언론은 중국을 주목하며 “북한을 감싸고돌기만 하던 중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에 동의하는 등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한다. 과연 북·중관계에 변화가 있는지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자.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2375호에 동의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를 대북 제재 중 ‘역대 최강(the strongest)’의 조치라는 평가를 내렸다. 분석가들의 관심은 이러한 ‘정치적 수사(Political Statement)’보다는 실제 제재안 내용에 있다.
우선 중국이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유엔의 제재 결의안에 동의한 것은 전혀 특이사항이 아니다.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했고, 중국은 6차례 모두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동의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 문건 어디에도 그렇게 명시돼 있지 않다. 이것이 중국을 연구하는 데서 겪는 어려움이다(이것은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 조치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중국 정부는 지시를 문건으로 내리지 않고 ‘구두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모든 새로운 유엔 대북 제재안은 기존 제재안보다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제재를 설정할 필요가 없다. 이번 대북 제재 결의안 2375호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유류 공급 제한 ▲제재 대상 추가 ▲북한 해외노동자 제한 ▲북한과의 합작사업 설립, 유지, 운영 전면 금지 등이 골자다. 언뜻 보면 많은 내용이 담겨 있지만 유엔 제재안을 평가할 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유엔 대북 제재를 주도한 미국이 추구했던 목표치를 달성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롯데마트가 중국에서 철수하는 등 중국의 사드 제재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추구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김정은을 제재 명단에 포함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북한 정권의 핵심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대북 원유 금수(禁輸) 조치, 즉 전면 중단이다. 둘 다 중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미국은 미국이 설정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그런 취지에서 미국의 빌 리처드슨 전 유엔대사는 이번 유엔 결의안을 “없는 것보다는 낫다(better than nothing)”라고 혹평했다.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인 조지 로페즈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얻기 위해 제재 강도 수위를 “낮췄다(water down)”고 평가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면 결의안이 아예 통과가 되지 않으므로 결의안 통과를 위해 물러선 쪽이 미국이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결의안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미국이 원했던 소기의 성과는 달성하지 못했다.
유엔 제재가 효과가 없는 근본 이유
흔히들 유엔 제재가 효과가 없는 이유가 ‘중국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중국이 유엔 제재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지 않는 이유’도 알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질문을 중국 정부에게 하는 것은 우문(愚問)이다. 중국 정부는 자기가 유엔 제재를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항상 말하기 때문이다.
유엔 제재에 관해 중국 학자들은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유엔 제재를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으나 이것을 실행하는 지방정부가 법망을 피한다고 설명하곤 한다. 사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중국 중앙정부가 대북 제재에 예외조항으로 둔 ‘민생’ 때문에 발생한다. 즉 유엔 제재가 북한 주민들의 ‘민생’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중국 측은 유엔 제재의 ‘민생’ 부문 예외를 주장하면서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미국 측에 대해서 정 그렇다면 민생 부문이 군수용으로 전용되는 ‘증거’를 중국에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이 9월 12일 오전(현지시간)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 2375호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중국도 찬성 표를 던졌다.
완벽한 유엔 제재가 불가능한 두 번째 이유로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근본적 이익 관점의 차이가 지적되고 있다.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의 동북 3성 지방은 지역경제 발전이 지방 관리의 업무 평가와 승진에 반영되므로 중앙정부의 엄격한 제재 시행 방침에도 불구하고 중앙과 지방정부 간에 근본적인 이익 충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유엔 제재가 적용되려면 결국은 지방정부가 시행해야 하는데, 그것이 근본적으로 잘되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시의 한 중국 학자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랴오닝성 정부를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지방 경제의 상당 부분이 북한과의 국경무역에 의존하는데 당신은 유엔 제재를 어떻게 하겠는가?”
표결이 끝난 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왼쪽)가 류제이 중국대사와 악수하며 대화하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는 대북 제재와 관련해 중앙정부의 지시를 받았음에도 지역경제를 발전시키는 자구책을 또한 찾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밀수를 눈감아준다. 특히 대북 밀수는 유엔 제재가 강화되면 오히려 ‘활기’를 띤다. 공식적으로 무역이 금지되면 밀수 가격이 껑충 뛰어 이익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인기 토론 프로그램 봉황위성TV의 ‘一虎一席谈’에서 한 여성 패널은 고향이 북한과 국경을 맞댄 단둥이라고 소개한 뒤, 친인척 중에서 많은 수가 북·중 무역에 끼어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유엔의 대북 제재는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밀수 부추기는 ‘역대 최강’ 유엔 제재
중국의 대북 제재가 효과가 없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이 제재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유엔의 대북 제재를 ‘엄격 이행’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근본 해법은 북과 대화’하는 것이라는 기본 입장을 꼭 제시한다. 여기서 핵심은 후자다.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열의를 가지기는 힘들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제재만으로는 조선반도(한반도) 문제를 풀 수 없다”며 북한과 대화와 협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결국 중국은 미국에 떠밀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이행하는 ‘외교적 제스처’를 보여주고 있을 뿐 정말 북한을 아프게 옥죄어 북한의 행동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할 동기는 갖고 있지 않아 보인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