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에 경쟁과 반목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미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월 29일 대만에 대한 13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수출 품목을 보면 중국의 해군력 증강과 역내 도전에 대응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는 같은 달 28일 미 함대의 대만 항구 정박을 허용하는 ‘2018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개정안’을 의결해 상원 전체회의로 넘겼다.
1979년 단교 이후 중단된 미 함대의 대만 기항이 가시화된 것이다. 남·동중국해 자유 통항과 중·일 접경도서 영유권 분쟁, 그리고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이 양안 문제로까지 비화되는 형국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동북아 신(新)냉전 시대의 개막을 거론한다. 지나친 비약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미·중 갈등의 전개 과정은 미·소 냉전기보다 다극체제하의 영·독 패권세력 간 권력 이전(Power Transition)으로 대변될 수 있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상황과 유사해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그 위험성을 살펴보자.
첫째, 이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제정치의 다극화 현상이 강화되는 추세다. 미·중 갈등이 불확실성과 가변성을 특징으로 하는 다극체제의 환경적 영향 아래 악화될 소지가 커진 것이다. 다극체제에서는 국제 정세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참여 국가의 수가 증가하면서, 다양한 전략적 이해관계와 이슈가 난마와 같이 상호 연계·중첩돼 갈등이 증폭될 개연성이 높아져 위기의 확산(Escalation)을 초래할 수 있다. 미·중 상호 의존이 반드시 안전판으로서 작용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다극체제에서 강대국은 약소 동맹국의 존속을 자국 안보를 위한 전략자산으로 인식해 동맹 보존에 연연하는 경향을 보인다. 압도적 국력을 지닌 냉전기 양대 초강대국과 달리 동맹국 상실을 내부 자원 동원을 통한 견제(Internal Balancing)만으로 만회하기 힘든 탓이다. 이에 따라 신중치 못한 약소 동맹국의 모험적 대외정책에 연루돼 원치 않는 갈등이나 전쟁에 빠져들 위험성(Entrapment)이 증대된다. 핵무장을 강행하는 북한에 대한 압박을 주저하는 중국 태도에서 위기안정성(Crisis Stability) 면에서 취약한 다극체제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셋째, 중국과 같이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의 자존감 증대 및 이에 따른 미국과 같은 기존 패권국의 공포의 증대로 상호 불신과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위기가 조장·확산되는 투키디데스의 덫(Thucydides's Trap, 신흥 스파르타의 도전에 대한 아테네의 공포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으로 지목한 고대 희랍의 역사가 투키디데스에서 연유)에 빠질 위험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하버드대 엘리슨 교수는 최근 저서(Destined for War : Can China and the United States Escape)에서 투키디데스의 덫은 현재의 미·중관계를 설명하는 유용한 틀을 제시한다며, 양국 갈등이 비화될 수 있는 화약고로 한반도를 지목한 바 있다.
우리는 이제 미·중을 포괄하는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연대를 강화해 한반도 문제로 말미암은 미·중 갈등의 폭발을 예방하는 한편, 위기 발생을 최소화하며 북한의 핵무장 포기를 안정적으로 견인해내야 하는 지난한 책무를 떠맡게 되었다. 국난 극복을 위한 국민의 단합된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