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경제지도는 끊어진 남북 경제를 다시 연결해 대륙으로 경제 지평을 넓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가 함께 도약하자는 거대한 구상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경협 활성화를 통해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우리의 경제 영토를 동북아와 유라시아로 확장하는 그랜드 플랜이다. 궁극적으로 한국을 반도국가에서 동북아의 허브 국가로 발전시키고, 사실상의 하나의 시장과 경제 통일을 실현하자는 거대 담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인 2015년 8월 16일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처음 제안했다.
“한반도의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려야 합니다. 우리 경제 활동 영역을 북한과 대륙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북한을 고립시켜서는 대륙과의 연결이 불가능합니다. 북한과 협력할 수 있다면 동북아 공동 번영의 꿈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지도에 대한 철학과 의지는 확고하다. 지난 7월 6일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구축과 통일을 주제로 ‘베를린 구상’을 발표하면서도 강조한 것이 한반도 신경제지도다.
“남북한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 협력은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요한 토대입니다. 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가 진전되고 적절한 여건이 조성되면 한반도의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려나가겠습니다. 군사분계선으로 단절된 남북을 경제벨트로 새롭게 잇고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 공동체를 이룰 것입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필요한 이유
왜 이 시점에서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추진해야 할 과제인가. 우리 경제는 새로운 성장동력 및 일자리 창출 확보가 시급하다.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한 미래지향적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저성장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북한 경제 협력을 재개하고 하나의 시장을 지향하면서, 북방경제와의 연계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를 1인당 소득 2만 달러와 인구 5000만 명의 ‘2050 경제’에서 3만 달러와 8000만 명의 ‘3080 경제’로 전환해 내수 시장을 확대하는 담대한 구상이 절실하다. 우리 경제가 북한과 동북아 대륙으로 확장된다면 새로운 일자리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물류, 관광, 도로·철도·통신 연결, 특구 개발, 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다양한 건설 활동과 자원 개발 등은 한국의 젊은이를 비롯해 다양한 계층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 지역은 앞으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반도는 동서 양측에 환황해 및 환동해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는 지경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동북아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동북 3성과 몽골, 러시아 등 북방 지역과의 교통망 연결을 통해 연계를 강화한다면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만들 수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지경학적인 가치를 최대한 활용해 동북아의 경제 중심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동북아를 활용한 새로운 경제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실질적 접근 방안이다. 북한의 대남 의존도를 높여 변화를 촉진하고, 개혁·개방을 유도함으로써 핵 포기 결단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고도화 단계에 있는 북한 핵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압박과 제재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흡수통일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불식하고 남북한이 함께 번영하면서 비핵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인프라 연결과 경제 협력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 새로운 번영과 도약의 토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으며, 이 시발점이 남북관계 안정과 교류협력 활성화이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단순하게 대북정책 차원에서만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미래 구상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적인 성장 정책이다. 경제를 매개로 남북 및 동북아 현안 문제의 접점을 찾고 미래를 함께 개척해나갈 수 있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3개 경제벨트와 하나의 시장을 핵심 축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는 통일 분야 국정 과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한반도 신경제지도 실행 방침을 내놨다. 한반도의 동과 서, 그리고 동서를 잇는 이른바 ‘H 경제벨트’를 조성해 장기적으로는 남북 시장을 통합하고 경제 통일을 이룬다는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3개 경제벨트와 하나의 시장을 핵심 축으로 하고 있다.
북핵 진전에 따라 한반도를 동해권, 서해권, 비무장지대(DMZ) 등 3개 경제·평화벨트로 개발하고, 이를 북방경제와 연계해 동북아 경제의 허브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에너지와 자원 중심의 환동해 경제벨트는 금강산~원산~단천~청진~나선을 남북이 공동 개발한 뒤 우리의 부산 및 동해안과 러시아, 일본까지 연결하는 동방 전략이다.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금강산 관광 재개와 국제관광 협력벨트 조성, 나진·하산 복합물류사업, 두만강(나선) 지역 남·북·중·러 공동 개발, 남·북·러 에너지 협력과 해양자원 공동 이용 및 동북아 에너지망 구축 등이 포함돼 있다.
산업, 물류, 교통 중심의 환황해 경제벨트는 수도권과 개성공단~평양~남포~신의주를 연결해 개발하고, 이를 중국 상하이와 동북아 지역까지 연결하는 서방 전략이다. 수도권~개성공단~평양·남포~신의주를 연결하는 서해안 경협벨트 건설, 경의선 개·보수, 서해 평화경제지대 조성, 환황해 복합물류 네트워크 추진 등이 계획돼 있다.
DMZ 환경·관광벨트는 생태·평화안보 관광지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설악산~금강산~원산~백두산을 잇는 관광벨트 구축, 남북 접경지역(철원∼금강산∼설악산) 생태·환경·관광의 3각 협력, 북한의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 참여 등의 추진으로 DMZ와 접경지역을 평화번영지구로 바꾸겠다는 내용이다. 남북 접경지역을 통일경제특구로 지정·운영해 남북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하나의 시장 협력’은 민관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남북을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 협력 방안을 마련하고, 여건이 조성되면 남북 시장 협력을 단계적으로 실행해 생활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시장을 매개로 남북 경제를 통합해 북한 시장의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경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대북 제재 국면에서 현실성이 있느냐의 이견이 있을 수가 있다. 북한이 호응할까라는 의문도 있다. 물론 여건상 쉬운 게 하나도 없다. 북핵 진전과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 없이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현실화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전략이 필요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만 가동되는 것은 아니다. 긴 호흡과 인내심을 갖고 꾸준하게 추진해야 할 사항이다. 북핵 상황에 맞춰 속도는 조절할 수 있지만, 대북 제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사업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는 전략이다.
우선은 상호 신뢰 회복과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모색 단계’를 거친 후, 이 성과를 바탕으로 중단된 남북 경협의 ‘재개 및 추진 단계’와 ‘본격화 및 활성화 단계’로 구분해서 추진해나간다는 현실적인 방안도 있다. 주변국 정책을 적극 활용해 남북 협력의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방안도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과의 연계,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적극 활용, 중·몽·러 경제회랑과의 접점 모색이 그중의 하나이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서 추진 가능한 사업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대북 제재 국면에서도 인도적 및 개발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스포츠 교류 등을 활성화해 여건을 조성해나가야 한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참가를 지원해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 그것이다.
관건은 북한의 태도 변화
신경제지도 구상 실현을 위한 북한 인프라 실태 조사와 수요 파악 등 사전 조사 및 탐색을 착수해나가야 한다. 경원선 복원 재개 등 우리 측의 선제적 인프라 구축을 재개하고, 기업인 방북 등을 지원하기 위한 북한과의 대화 채널도 복원해나가야 한다.
개성공단 재가동 및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 여건을 조성하고 중국, 러시아 등과의 경제 협력 거점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며, 북한 경제인력 양성 프로그램 추진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여건을 조성해나가야 한다. 북핵 및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해 유연하게 민간 경협 재개를 적극 추진해나가야 한다. 경제 협력 사업은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가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착실하게 준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마스터플랜과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하고, 국내외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며, 대내외적인 추진체계 또한 갖춰야 한다.
관건은 북한의 태도 변화다. 북한은 2020년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남북대화의 장에서 협력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導 遇水架橋)’의 정신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각오로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해나가면 새로운 한반도 경제시대는 반드시 열릴 것이다.
IBK경제연구소 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