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7월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방향을 보여줄 설계도이자 시기별, 단계별 정책 집행의 로드맵 구실을 할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7월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방향을 보여줄 설계도이자 시기별, 단계별 정책 집행의 로드맵 구실을 할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 주도하고
남북 화해협력과 핵 없는 한반도 만든다

정부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5월 22일부터 7월 15일까지 앞으로 5년 동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할 100대 국정과제를 수립했다. 이 가운데 외교·통일·안보 분야 총 16개 국정과제를 정리했다.

오늘날 한반도와 세계는 격동이라는 단순한 표현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변화의 소용돌이 그 자체다. 글로벌 위기와 동북아 역내 위기, 한반도 위기가 중첩되면서, 그것도 협력과 갈등의 패러독스 구조가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촉발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변화 압력은 중동, 유라시아, 동아시아 등 외곽에서 분출되다가 그 응축된 에너지가 국제 정치·경제의 심장부인 유럽과 미국에서 폭발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와 트럼프 주의로 상징되는 자국 우선주의 확산, 장기적 저성장 기조는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됨을 의미한다. 이제 극도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미·중 패권 경쟁과 연동되며 국제정치의 뉴노멀(New Normal)이 되었다.

한국이 속한 동북아는 미·중 두 패권이 직접 마주하며 첨예하게 갈등하고 대립하는 지점이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중국·대만 양안, 한반도 등 4개의 단층선은 미·중 패권 대결의 경계선이자 전략적 이해 충돌의 잠재적 발화점으로 상존하게 되었다. 시진핑의 중국과 아베의 일본도 배타적 민족주의로 갈등하면서 동시에 미·중 갈등의 또 다른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의 푸틴도 구소련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면서 대미전략으로서 중국에 접근하고 있다.

한반도 상황은 더 심각하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강력한 핵무장 의지와 주변국들의 외교적 무능력이 결합해 핵무기 실전 배치라는 임계점에 도달하려 한다.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였던 개성공단마저 폐쇄되고 남북관계를 규율하던 모든 합의가 사문화되어 사실상 과거 냉전시대로 회귀했다.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안보 포퓰리즘은 우리의 외교안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사드 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등 중대한 안보 사안이 충분한 검토와 공론화 과정 없이 졸속으로 처리되면서 우리의 외교 선택지는 극도로 좁아졌고 국민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역사적 책임 문제를 값싼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써 한일관계에서 오히려 우리가 수세에 몰리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외교안보 위기 해결의 출발점은 바로 이러한 외교 적폐를 극복하고 새로운 외교안보정책을 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지난 5월 22일부터 7월 15일까지 약 두 달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외교분과가 향후 5년의 외교·통일·안보정책을 수립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핵심 기조였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선거기간 중 제시됐던 201개 공약을 100대 과제로 압축하고, 실행 가능하도록 구체화했다. 이 가운데 외교분과는 외교·통일·안보 분야에서 총 16개의 국정과제를 수립했다.

먼저 외교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생존의 공간인 동북아는 물론이고 이를 넘는 적극적인 평화협력 외교를 지향한다. 기존의 4강 외교를 업그레이드하면서도, 중국의 ‘일대일로’나 러시아의 ‘동방정책’처럼 우리의 국력에 맞는 장기적인 지역 비전인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 형성’을 모색한다.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는 한국판 중·장기 생존번영 전략으로 중견국가의 위상을 활용해 지정학적 취약성을 극복하고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에 못지않은 제3의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플러스’는 동북아가 우리의 생존이 달린 핵심 지역임을 인정하고 최우선 순위로 대처해야 하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동북아의 틀에 갇혀버릴 경우 생존 문제에만 급급할 수 있고, 안보 딜레마와 진영 대결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교안보정책의 대상 영역을 아세안, 몽골, 인도, 호주, 러시아, 유럽까지 확대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정치적 생존을 넘어 경제적 공영, 사회문화 영역까지 확대하자는 의미이며, 가치외교와 공공외교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동북아 시대를 발전적으로 계승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외교 분야에서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국민을 위한 외교이자 국민에 의한 외교를 지향하는 것이다. 전문 외교관에 의한 외교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 전체의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므로 대국민 소통과 참여를 강화해 국민의 의견을 외교정책에 충실히 반영하는 소위 ‘국민외교’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힘을 통한 위대한 촛불혁명으로부터 탄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으며,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2007년 10월 29일 판문점에서 6자회담 실무회의가 열리고 있다. 2007년 10월 29일 판문점에서 6자회담 실무회의가 열리고 있다.

남북 간 화해 협력과 핵 없는 한반도

두 번째는 통일정책 분야인데, 남북 간 화해협력과 핵 없는 한반도 관련 과제들이다. 북한의 증대되는 핵·미사일 위협은 우리의 안보 위기를 심화시키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이에 신정부는 국제사회와 공조해 제재 일변도가 아니라 대화와 병행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 핵 문제를 근본적이고, 포괄적이며, 단계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남북대화와 교류를 재개해 남북 합의를 법제화하고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본격 추진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남북 경제 통일을 도모할 것이다. 또한 북한 인권 개선 및 이산가족 등 남북의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고 다방면의 사회문화 교류를 활성화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초당적 협력과 국민적 지지를 강화해 통일 공감대를 확산하고, 국민통합적 대북정책을 국민과 함께 수립하고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세 번째는 안보 및 국방 분야로 책임국방의 실현이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자기 보호의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책임국방을 통해 강한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긴급 현안인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은 물론이고 한국 안보체계의 중·장기적인 체질 개선까지 고려한 전략을 설정하고자 노력했다.

지난 두 보수정부는 겉으로는 안보제일주의인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대외적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내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이른바 안보 포퓰리즘으로 일관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으로 이는 곧 ‘가짜 안보’인 것이다. 안보가 오직 국방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며, 국방 역시 무기만 사 모으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전환을 통해 우리 군 주도의 새로운 연합 방위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인력과 구조 등 군 전반에 걸친 국방개혁을 실행하고 장병들의 복무 여건을 개선해 미래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능하고 강한 군대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통일정책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더욱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정책 결정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이 정책 결정 시스템의 부재였다. 또한 국익과 민생을 고려하지 않는 비실용적이고, 이념적인 정책 성향도 문제였다. 우선순위와 장기 전략이 결여된 대증요법으로 점철돼온 것이다. 신정부는 이런 점들을 엄중히 인식하고 정책 결정 시스템을 온전하게 만들어가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전환을 통해 우리 군 주도의 새로운 연합 방위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한미합동군사훈련. 문재인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전환을 통해 우리 군 주도의 새로운 연합 방위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한미합동군사훈련.

평화는 대북정책의 수단이자 목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통일정책의 청사진이 지향하는 목표는 한마디로 한반도의 평화다. 진짜 안보를 추구하고, 평화를 통한 국익 확보, 평화를 통한 민생, 그리고 평화를 통한 공동 번영을 추구한다. 이는 안보를 통한 평화보다 평화를 통한 안보가 훨씬 낫다는 세계적 평화학자 요한 갈퉁의 명언과 그대로 일치한다. 당면한 대외 환경의 복잡성, 불안정성,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도의 자강외교를 통해 평화 주도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 평화 담론으로 안보 포퓰리즘과 가짜 통일론을 극복하고, 남북관계의 적극적 개선을 통해 긴장을 해소하고 운신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

민족의 숙원인 통일 역시 평화의 과정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평화는 대북정책의 수단이자 목표다. 시발점은 남북관계 개선이고 종착점은 동북아 평화가 될 것이다. 대미, 대중, 대일, 대러시아의 강대국 외교는 진영을 넘어서는 중첩적 전략대화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미·중관계가 나쁠 때는 갈등의 완충자로서, 좋을 때는 협력의 촉진자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동북아에서의 진영 대결의 부활을 극복하기 위해 다자협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동북아 안보 질서는 다자협력보다는 양자동맹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고 다자 안보협력에 대한 회의론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높은 수준의 다자 안보협력을 재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를 위한 모멘텀을 우선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기에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요구된다.

특히 6자회담 부활을 통한 동북아 다자체제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무용론마저 제기되고 있지만,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안보협력을 매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플랫폼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국이 주도해 북·미 협상을 진행하고, 평화협정과 비핵화의 동북아 안보 협력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중·장기적인 평화 구축 및 신성장동력 전략도 중요하다. 한반도에서 환동해권, 환황해권, 그리고 휴전선이 만들어내는 ‘H’ 형태의 신경제지도 구상과 함께 적극적인 남북 화해정책을 통해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고, 러시아, 몽골, 유라시아로 향하는 신북방정책과 아세안과 인도로 가는 신남방정책으로 동북아의 안보 딜레마를 우회하자는 원대한 계획을 적극 추진하려 한다.

photo 김 준 형
한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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