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24일 한중 양국이 82년 만에 국교를 재개한 지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수교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은 탈냉전 이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대전환기에 놓여 있었고, 세계 각국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한국도 야당의 분열로 출범한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통해 정당성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보수정부의 통일정책은 적어도 국내의 이념 갈등을 상당 부분 줄여나가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국도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렸던 덩샤오핑이 1992년 1월부터 남순강화(南巡講話, 남방을 순회하면서 개혁·개방을 촉구한 일련의 연설)를 통해 주춤거리던 개혁·개방의 동력을 되살리는 한편, 사회주의에 대한 사상 해방을 주문했다. ‘전족을 한 여인처럼 걷지 말고 대담하게 돌파하라’는 그의 호소는 한국을 새롭게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비교우위에 있던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의 보완재가 되면서 한중관계를 실질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이 무렵 수교하거나 복교한 다른 어떤 국가보다 한중 양국은 모범적 양자관계를 유지해왔다.
물론 그동안 한중관계는 마늘 분쟁과 같은 통상 마찰,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 분쟁, 문화원조 논쟁 등 연성 안보 이슈가 빈발했음에도 큰 틀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왔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경제적 상호의존도 심화되었다.
실질적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
1992년 양국은 우호협력관계를 수립했고, 1998년에는 협력동반자관계를 구축하면서 이른바 동반자(Partnership)관계의 초석을 놓았다. 2003년엔 기존의 양자관계를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켰다. 2008년에는 한 단계 높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시켰다. 한중 양국이 ‘전략’ 관계를 구축한 것은 양자관계뿐 아니라 지역과 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전략적으로 협력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2014년에는 기존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내실화하기로 했으며, 문재인 정부도 한중관계를 실질적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발전시킨다는 한중관계 발전의 공약을 제시하는 등 좀 더 고도화된 한중관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한중 수교의 성과는 무엇보다 경제에서 두드러졌다. 2016년 말 양국 간 교역 규모는 2114억 달러로 수교 당시 63억7000만 달러에 비해 33배 증가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자 투자·수입 대상국이 되었고, 한국도 중국의 3대 교역국이자 4대 투자 대상국이다. 2015년 12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2016년부터 상품 분야의 관세 인하가 이뤄져 새로운 경제협력의 모멘텀을 찾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2016년 말까지 60여 회의 정상회담이 있었고, 한중관계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양자회담은 물론이고 핵안보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한·중·일 정상회담 등 다양한 다자회의나 국제회의에서도 이러한 정상회담은 소통 부재에서 오는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양국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원동력이 됐으며,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제도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예컨대 한국의 국가안보실장과 중국의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 전략대화를 비롯해 다양한 소통 채널을 구축했다. 특히 양국관계 발전의 걸림돌이었던 군사 방면에서도 인사 교류, 정책 교류, 군사교육 교류로 발전했으며 한국 국방차관과 중국 부총참모장 간 국방 전략대화 채널이 구축됐다.
사회문화적으로 가장 인상적 발전은 인적 교류에 있다. 2016년 말 양국 국민의 교류는 약 1000만 명에 달했고, 매주 한중 양국의 수십 곳의 도시에서 830여 편의 항공기가 이착륙하고 있다. 중국에 상주하는 한국인 수는 약 50만 명에 이르고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등 주요 도시엔 ‘코리안타운’이 형성됐다. 향후 한중 양국의 가교가 될 양국 유학생 규모도 각각 6만여 명에 달했다.
한중 수교 이후 중국에 진출해 고속성장을 이루던 우리 기업들이 사드로 인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한중관계는 25년 동안 건실하게 발전했다. 그러나 국가이익을 둘러싼 갈등이 점차 연성 안보 이슈에서 경성 안보 이슈로 변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점차 어려워질 뿐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경제·통상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역사 문제도 양자관계에 국한돼 있다는 점에서 관리가 가능한 영역이다.
그러나 미·중관계의 성격이 변하고 한반도의 지(地)전략적 위상이 달라지면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남중국해 문제, 북핵, 한·미·일 안보협력과 같은 경성 안보 이슈가 빈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슈가 한중관계의 외생변수라는 점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의 국가이익을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있고, 유사한 사례가 시간을 정하지 않은 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향후 한중 간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인식 차이다. 중국의 기본 원칙은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선호하며 그 방법론은 대화, 신뢰, 협상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반도 통일이 자국의 국가이익에 유리하고 남북한이 구체적 통일 과정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먼저 움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둘째, 한미동맹에 대한 인식 차이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한미동맹을 외교안보의 기본 축으로 간주해왔고,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에는 현실적으로 전략적 차등화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점차 한미 군사동맹을 ‘냉전의 유산’으로 보는 인식이 강화되었다.
사실 중국은 미국의 역외균형자(Offshore Balancer)의 역할을 현실적으로 수용해왔으나 한국의 대미경사(傾斜) 정책이 강화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한미동맹을 좀 더 강하게 문제 삼는 경향이 나타났다. 7월 5일 중국과 러시아 외교부가 ‘역외세력이 이 지역에서 군사 배치를 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은 한국이 대미경사 정책으로 흐를 경우 미·중 간 세력 경쟁을 한반도에 끌어들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북핵과 북한 문제 해결에 대한 목표와 방법의 차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햇볕정책’과 엄격한 상호주의 정책을 모두 실시한 바 있다. 일정한 성과가 있었지만 동시에 한계도 있었다. 반면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고수하면서도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유 있는 안보 우려’와 체제 안정을 통한 변화를 추구했다. 구체적으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북한의 핵·미사일을 동시에 중단하는 ‘쌍중단’과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함께 다루는 ‘투트랙 병행’의 해법을 제시했다.
구분 | 시기 | 정치 환경 | 정부 | |
---|---|---|---|---|
한국 | 중국 | |||
선린우호관계 | 1992년 | 탈냉전, 북방정책, 남북관계, 경제 협력 |
탈냉전, 주변외교, 한반도 안정, 경제 협력 |
노태우, 장쩌민 |
협력동반자 | 1998년 | 금융위기, 남북관계, 북핵 문제, 경제 협력 |
책임대국론, 북핵 문제, 신안보관, 경제 협력 |
김대중, 장쩌민 |
전면적 협력 동반자 | 2003년 | 북핵 문제, 균형외교, 경제 협력, 동북아 시대 |
북핵 문제, 대국외교, 경제 협력 |
노무현, 후진타오 |
전략적 협력 동반자 | 2008년 | 한미동맹, 경제 협력 | 한미동맹, 다극화, 경제 협력 |
이명박, 후진타오 |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내실화 |
2014년 | 북핵 문제, 한중 FTA, 인문 교류, 한반도 통일 |
북핵 문제, 한중 FTA, 인문 교류 |
박근혜, 시진핑 |
실질적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 |
2017년 | 북핵 문제, 평화체제, 사드 문제, 경제 협력 |
북핵 문제, 사드 문제, 한미동맹, 일대일로 |
문재인, 시진핑 |
미래 한중관계에 놓인 도전과 과제
넷째, 양국의 경제적 분업구조가 보완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제 협력의 방향에 대한 차이다. 향후 양국 정부가 기업들에 공정한 경쟁 환경을 제공하고 경쟁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식 보호주의, 위안화 환율제도의 공정성,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이니셔티브 등 한중 양자관계를 뛰어넘는 글로벌 경제 이슈도 양국 관계의 성격 변화에 영향을 줄 것이다.
다섯째, 한중 경제관계를 내실화하고 고도화하는 일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새로운 가치사슬 형성,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경제 일체화, 제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무역 확대에 따른 협력 증대 가능성,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세계 교역의 위축 가능성, 한중 FTA 등에 새롭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여기에 대비해 한중 양국은 핵심 정책 영역에서 협력을 강화해 인프라 건설, 물류, 자원 개발, 신산업 분야의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고, 중국의 대한국 투자가 확대되면서 투자 불균형의 해소나 중국의 대한국 투자의 역전 현상이 나타날 때를 대비한 제3국 진출과 같은 협력 틀도 필요하다.
여섯째, 사회문화적 협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중관계는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교류에도 불구하고 사안별로 갈등 가능성이 남아 있다. 한중 교류의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중국내 ‘한류’에 대한 중국의 이미지도 점차 악화되는 한편 한국 내 중국 문화가 일상생활에 파고들면서 쌍방향적 소통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하고 체감할 수 있으며 쌍방향적 교류를 위한 플랫폼을 만드는 한편 다양한 인문 교류를 질적으로 발전시키고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지혜
한중 수교 25주년을 회고하면서 한중관계가 무엇을 지양하고 무엇을 계승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지혜를 살릴 필요가 있다. 미래 한중 수교 50주년을 맞이할 무렵 한반도는 통일을 달성했거나 지금보다 더욱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예측해볼 수 있다.
수교 25주년을 맞아 한중 양국은 사드 문제로 일종의 값비싼 성장통을 겪었다. 역설적으로 양국관계 발전을 점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한중 양국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는 책임공동체, 경제 이익을 창출하는 이익공동체, 사람과 문화의 교류를 통해 상호 이해를 발전시키는 인문공동체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한중 양국의 이익뿐 아니라 지역에도 기여하는 트리플 윈(Triple Win)의 철학을 필요로 한다.
성균관대 교수
성균중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