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평양 거리와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변화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평양시와 일부 도시 곳곳에 대규모 고층 아파트들과 거리가 조성돼 도시의 경관이 변화된 것은 물론, 상점과 식당 증가, 휴대폰 사용 증가, 형형색색의 다양한 주민 패션 등장, 종합시장을 비롯한 시장의 증설과 도심 이동 등 하루가 다르게 북한 도시 풍경이 변화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제재 국면을 생각한다면, 이런 풍경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난 변화된 모습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약 20년 이상 진행돼온 시장화의 강한 힘과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과거와 달리 시장 중심의 경제 운용이 20년 이상 지속되면서 기존 정치적 신분 중심의 계층 구분이 경제적 능력이나 소득 중심의 계층 구분으로 재구성되는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경제적 능력과 소득 중심으로 계층이 재편되면서 소위 중산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계층이 증가하고 있는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위 중산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계층은 소득수준에서 대략 4인 가족으로 보면 북한 돈으로 월 5만~10만 원 이상을 버는 세대로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공식적인 직장 평균 월급은 3500~6000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시장에서 쌀 1kg도 구입할 수 없는 돈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 소득의 대부분은 공식적인 직장보다는 부업이나 시장과 관련된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다고 할 수 있다.
구분 | 정치적 특권 수준 계층 | 시장 활용 수준에 따른 계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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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계층 |
백두산 줄기 (김씨 일가 및 친인척) |
핵심 엘리트 |
항일혁명가 가족 (빨치산계) |
고위간부 · 군당 비서급 이상 간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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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관료 계층 (테크노크라트) |
무역일꾼 · 외화벌이 기관 간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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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및 공로자 (공화국 영웅, 노동영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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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계층 |
기본군중 · 영예군인 · 전사자 가족 · 애국희생자 가족 · 제대군인 |
무역상인 건설·부동산 돈주 |
중개상·수공업자 · 브로커(데꺼) · 되거리 장사 · 식당·상점 운영 · 개인 임가공·편의봉사 · 창고 임대 및 창고형 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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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관료·사법일꾼 | ||
일반 주민 · 노동자 및 농민 · 매대 상인 · 기타 비공식 상행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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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계층 |
복잡군중 · 귀환 군인 및 시민 · 반동단체·일제 복무자, 의거 입북자 · 정치범·출소자 가족 · 월남자 및 미귀환 포로 가족 · 해외 도주자 가족 · 종파 연루자 가족, 간첩 가족 |
일반 주민 및 극빈층 · 노약자 · 꽃제비 · 장애인 · 농장원 · 삯벌이 |
적대계급 잔여분자 · 지주, 부농, 친일파, 친미파 · 악질 종교인 · 종파분자, 종파 연루자, 간첩 |
정치적 신분 계층과 경제적 능력 계층
결국 북한의 중산층이 영위하는 경제적 삶은 시장 활동과 긴밀하게 관련이 있다. 현재 북한에서 ‘계층’은 크게 정치적 신분 중심의 계층과 시장을 활용하는 능력 중심의 계층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중산층은 주로 시장을 활용하는 능력, 소득 규모에서 중간에 속하거나 속한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경우이다.
물론 정치적 출신성분이 직간접적으로 경제적 신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정치적 연줄이나 배경이 경제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체로 중산층은 정치적 신분에서 보면 ‘기본군중’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상위계층과의 연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상기 표는 북한의 계층을 정치적 신분과 경제적 능력 두 측면에서 거칠게나마 구분해본 것이다.
위 표에서 보면, 시장 활용 수준에 따른 계층 분류에서 중간계층들은 국내외 시장 활동에서 중요한 시장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중간계층은 시장 상위계층과 상호 공생적으로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중·상위 계층의 네트워크들은 단순히 시장 잉여를 챙기는 것 이상으로 자원, 물자, 운송, 에너지, 기술, 정보 등의 흐름을 일정하게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시장 활동의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식시장에서 매대 장사를 하는 계층은 일반 주민 중 중간계층에 주로 해당한다. 최근에는 소위 상업자본가라고 할 수 있는 중간 이상의 돈주가 여러 매대의 자릿세를 내고 매대 대리 장사를 시키며 외부에 대형 창고를 두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북한 중산층의 형성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들 중산층의 시장 활동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북한에는 허가된 공식시장 이외에 다양한 시장 활동들이 활성화되어 있다. 특히 김정은 정권 들어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시장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확산·심화되고 있다.
우선 장터(marketplace) 형태로 장소화되어 있는 종합시장이나 장마당이 있다. 종합시장 매대 장사 이외에도 도로나 길가에 있는 편의봉사 매대, 국영상점 매대, 집 매대, 시장 인근의 ‘막매대’ 등 매대 장사 형태도 다양하게 늘어나고 있다. 물론 공식적으로 허가된 종합시장도 허가되지 않은 물품을 거래하고 비공식적인 시장 활동과 연계되어 있다. 이런 공식적인 상행위의 대부분을 중간계층에 속하는 주민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크고 작은 공식·비공식 무역거래도 해외 시장과의 시장 교환이란 측면에서 시장 활동 영역에 해당한다. 대외시장의 환경 변화는 공식·비공식 무역거래를 통해 국내 시장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대외시장과 국내시장을 연결하는 크고 작은 시장 활동에도 중간계층의 주민들이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공장이나 기업소의 생산·경영 활동 역시 시장 영역과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 자재 수급, 생산, 보수·시설관리, 생산물 처분 등 대부분의 활동이 시장을 경유해 이뤄지고 있다. 사실상 공장·기업소의 생산·경영 활동에서 계획과 시장,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불분명하고 유명무실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도 역시 중간계층에 속하는 주민들이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돈주’
다음으로 건설시장은 최근 들어 ‘붐’이 조성되면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시장 활동 영역이다. 건설시장은 당국의 건설 실적 필요성, 건설 인허가권, 그리고 민간의 자본과 수요 등이 결합하면서 활성화돼왔다. 특히 2010년 평양 살림집 10만 호 건설계획을 시발점으로 김정은 집권 이후 건설시장은 대형 돈주들의 투자와 수익 창출의 주요 영역이 되고 있다. 또한 건설 ‘붐’에 따라 부동산시장, 자재시장, 인력시장 등도 함께 활성화되고 있다. 건설시장은 중상위 계층에 속하는 주민들이 다소 규모가 크게 시장 활동을 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국적인 시장 유통구조가 작동하면서 물자와 사람을 나르는 운수·운송사업이 각광 받는 시장 영역이 되었다. 돈주들이 운영하는 사설 운수업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중앙기관과 결탁해 운송업 허가를 받은 개인들이 돈을 투자에 차량을 구입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돈주가 운영하는 시외버스 이외에도 택시 운송사업도 성업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늘어나고 있는 운송 수요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시장 활동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시장 영역에 종사하는 방식이 다양화되고 종사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물건을 날라 시장에 넘겨주는 ‘뜀뛰기꾼’ 또는 ‘달리기꾼’, 이들을 아파트 뒷골목의 ‘벌이뻐스’와 연결해주는 ‘몰이꾼’, 무역회사와 짜고 수입상품을 통째로 들여와 파는 ‘차판 장사꾼’, 이들을 매대와 연결해주거나 흥정을 대행하는 ‘거간꾼’과 ‘데꺼’, 시장 앞 살림집을 이용해 통제품을 파는 ‘살림집 밀매꾼’, 시장 앞 아파트 단지 내에 기성양복을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옷촌’, 가방을 만들어 파는 ‘가방촌’, 신발을 만들어 파는 ‘신발촌’, 밀주나 담배를 만들어 파는 ‘술촌’, ‘담배촌’이 형성돼 성업 중이다.
북한에 상점이 늘고 제품들도 화려해졌다. 휴대폰 사용자가 증가하고 택시 이용도 일반화되는 등 북한 모습이 크게 변모했다(위쪽부터).
북한 중산층 확대는 시장화 산물
이 밖에 최근에는 좀 더 진화해 직접 매대를 차리거나 나가서 팔지 않고 단골을 상대로 개인 살림집에서 규모 있게 거래하는 개인기업 형태도 만연하고 있다. 또한 짐이나 물건을 보관해주는 ‘창고업’, 창고로 자신의 살림집을 임대하는 ‘임대업’, 차판 장사나 거간꾼에게 흥정 및 숙박 장소를 제공하는 ‘숙박업’, 이들을 거래 장소로 안내하고 수고비를 받는 사람, 철도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시장으로 물건을 날라주는 ‘손수레꾼’, 건설인부나 물건 나르는 잡부를 알선하는 ‘가대기’, 공터에서 머리를 잘라주는 이발업, 골목에서 자전거를 수리해주는 자전거수리업 등 이제 시장은 단순히 매대에서 장사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시장경제 영역은 다양한 분야로 확산·심화되고 있으며 여기서 공식시장이 갖는 비중은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렵지만 제한적인 수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일연구원이 2016년에 조사한 북한 전국 공식시장 관련 종사자 수는 약 109만9052명이었다. 북한 전체 인구의 약 4.4~4.6%에 해당하는 규모다. 공식시장 매대에서 주로 여성이 장사를 하는 점을 고려해 전체 여성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본다면 약 8.2%에 해당한다. 공식시장에서 매대 장사가 가능한 20~65세의 여성 인구 약 735만6183명 중 약 15%에 해당하는 숫자다.
공식시장 이외에 다양하게 확산돼 있는 시장 영역을 고려하면 시장 관련 종사자는 이보다 몇 배 더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 북한이탈주민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장사 경험을 가진 비중이 70%로 나타나고 있고 여성의 경우 75%를 상회하고 있다. 결국 북한 중산층의 확대는 시장화의 추이와 깊게 연관돼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