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교류협력은 분단 이후 1960년대까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데탕트 등 국제 환경이 변화하면서 남북한도 국제 정세에 부응해 긴장 완화를 모색했다. 그 결과 6·25전쟁 이후 남북 당국이 합의한 최초의 문서인 ‘7·4 남북 공동성명’이 도출됐다. 총 7개항으로 구성된 이 공동성명은 통일을 위한 3대 원칙뿐 아니라 ‘다방면적인 제반 교류의 실시’, ‘남북 적십자회담을 통한 이산가족 문제 해결’ 등 남북 교류협력을 위한 포괄적 합의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성명은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라는 표현이 말해주는 합의 형식에서 보듯이 남북 모두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국내적 공감대 없이 추진됐다. 그리고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대내적 정권 강화를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성명이 활용됐다. 이 때문에 7·4 남북 공동성명이 남북한 간 실제 교류협력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냉전 체제가 해체되는 국제적 환경 변화 속에서 노태우 정부는 남북관계를 불신과 대결 구조에서 신뢰와 협력 구조로 바꿔가기 위해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모색하게 됐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7월 7일 ‘남북 동포 간의 상호 교류’, ‘이산가족 교류’, ‘남북 교역의 문호 개방’ 등 6개 항으로 구성된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후속 조치로 1990년 8월에는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남북협력기금법’ 등 관련 법령을 제정했다.
내부적으로 교류협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가운데, 세계적인 탈냉전이라는 국제 환경의 변화에 힘입어 남북한 사이에도 총리급을 대표로 하는 고위급 회담이 열릴 수 있었다. 그 결과 1991년 12월 13일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됐다.
그리고 1992년 9월 17일 경제 교류협력(제1장), 사회문화 교류협력(제2장), 인도적 문제의 해결(제3장)로 구성된 ‘제3장 남북 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가 구체적으로 채택됐다.
이러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말미암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합의서대로 교류협력이 실천에 옮겨지지 못했다. 또한 남북 기본합의서에 대한 국내 합의 절차를 둘러싼 갈등과 함께 고난의 행군으로 대변되는 북한 체제의 안정성에 대한 평가 등이 겹치면서 교류협력의 장이 열리지는 못했다.
6·15 남북 공동선언과 10·4 남북 정상선언
김대중 정부는 안보를 고려하면서도 북한을 대화의 상대, 협력 및 지원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우호적인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 정상이 직접 만나 남북한 간 현안을 풀려는 정상회담을 개최했고 ‘6·15 남북 공동선언’이 도출될 수 있었다.
6·15 남북 공동선언은 기존의 합의와 달리 ‘선언적’ 의미를 넘어 남북한 간 교류협력의 ‘실천’의 기반이 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교류협력이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심화되면서 남북 4대 경협 합의서, 개성공단 남북 공동위원회 구성·운영 등 교류협력을 위한 제도화도 동시에 진전됐다.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도 제2차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에 합의했다. 이 선언은 남북 교류협력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한 실천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10·4 남북 정상선언’에서는 종전 선언의 추진 등 평화의 기틀을 다지는 동시에 공동 번영, 특히 경제 공동체 기반 조성에 역점을 두고 교류협력에 접근했다.
양 공동선언은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만나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면 상호 간 호혜적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그렇지만 대북정책 추진 방향을 둘러싼 남남갈등으로 그러한 교류협력의 성과가 차기 정부로 계승·발전되지 못한 점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7·4 남북 공동성명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압박과 안보 중심의 정책과 교류협력의 후퇴
이명박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교류협력에 긍정적인 ‘상생 공영의 대북정책’을 표방했다. 그렇지만 사실상 ‘비핵·개방 3000’의 기조 속에서 ‘북한의 ‘비핵화’, ‘북한의 ‘개방’이라는 선 변화와 교류협력을 강하게 연계하면서 교류협력보다는 압박 중심의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무엇보다도 천안함 폭침사건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는 안보와 교류협력을 엄격하게 연계한 ‘5·24 조치’를 취함으로써 교류협력이 사실상 중단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 5·24 조치는 충분한 국내적 논의 과정 없이 취해졌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시기 남북관계 경색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 주목하면서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겠다는 균형된 정책을 표방했다. 그렇지만 대화보다는 사실상 압박 중심의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남북 교류협력은 복원되지 못했다. 그리고 신뢰를 강조했지만 신뢰 쌓기는 쌍방 지향이 아니라 북한의 태도 변화를 전제로 함으로써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특히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따른 제재 국면 속에서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지속했다. 또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의 설치에 대해 북한이 제도 통일, 흡수통일 기도라고 반발하면서 전반적으로 교류협력은 더욱 위축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원칙이라는 명분 아래 전략적 신축성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이 시기 남북 교류협력은 후퇴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원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사실상 인도적 지원을 정치·안보 상황과 강하게 연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한미동맹 등 국제 공조를 중시하고 남북 교류협력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남북 교류협력의 역사 및 정책 환경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토대로 한반도 평화, 남북관계 발전, 통일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교류협력을 추진해나가야 한다.
첫째,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남북 합의나 국내 조치에 대해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남북 교류협력 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추진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남북 교류협력이 지속되고 신뢰의 초석이 되기 위해서는 교류협력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야 한다. 동서독은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동서독 관계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교류협력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도 ‘남북 기본협정’ 체결을 추진할 때 동서독 사례와 같이 교류협력을 조항으로 명문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후속 협정의 체결을 명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건이 조성되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실질적인 교류협력의 동력을 마련하는 것도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1997년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정상이 만났다.
남북 교류협력의 추진 방향과 과제
셋째,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해나가기 위해서는 쌍방향의 관점에서 신뢰 쌓기에 접근해야 한다. 통일은 쌍방이 공존 공영하면서 민족 공동체를 회복해나가는 과정이다. 희망적인 북한 붕괴에 기댄 정책이나 북한 당국을 적대·경계의 대상으로만 규정하고 압박 위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넷째, 남북 교류협력에 미치는 국제 환경의 구조적 제약을 최소화하고 우리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북한 핵문제와 남북 교류협력의 관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립하고 국제사회를 상대로 설득해나가야 한다. 제재와 무관한 교류협력에 대해서는 병행의 원칙을 확고하게 견지해나가야 한다.
제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남북 교류협력의 자율적인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대 심화시켜나가야 한다. 특히 정치·군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 교류는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흔들림 없이 정착시켜나가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남북 교류협력과 국제 공조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남북 상호 신뢰 형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교류협력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말라리아 공동 방역 등 남북 공동의 문제 해결을 통해 남북한 주민 모두가 혜택을 보는 교류협력의 쌍방향성이 강화돼야 한다. 또한 산림 복구 등 북한 당국이 정책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고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사업을 확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여섯째, 남북관계 경색이 장기화되면서 교류협력 단절도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재개 및 복원, 활성화, 제도화 등 단계적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 분야 교류협력 등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일곱째, 교류협력 과정에서 민관 협력을 강화하고 교류협력 거버넌스 구축을 통한 민간·지자체의 자율성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교류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남북 교류협력법의 정비 등 제도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통일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