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월 1일 북한 관광 여행사를 통해 평양을 방문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가 17개월 만에 혼수상태로 석방돼 미국으로 이송됐다. 그는 가족 품에 안긴 지 엿새 만인 지난 6월 19일 사망했다. 북한 당국에 의해 강제 억류된 이후 외국 기자와의 기자회견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퇴장하던 웜비어 씨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 사건으로 한동안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북한 내 억류자들의 안전과 인권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정부 당국이 좀 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이들을 송환하기 위한 협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사망한 웜비어 씨의 상황을 보면 북한에 억류 중인 외국인과 한국인들의 신변이 극히 위험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 같다. 또한 웜비어 씨의 의식불명 상태가 거의 1년이 넘었다는 점에서 그동안 북한 당국이 이를 철저히 감추고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다 환자 상태를 더욱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만든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런 가운데 지금까지 북한에 억류된 사람들이 미국인 3명, 캐나다인 1명 외에도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추가 희생자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북한에서의 수감 생활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물론 억류됐다가 풀려난 외국인 수형자도 있지만, 개별적으로 격리 수용되는 특수대상들임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러하다. 다만 웜비어 씨의 경우는 미국에서 자란 20대 청년이라 생소한 환경에서의 수감 생활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폐쇄공포증이 있다면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게 수감 생활이다. 그의 생전 인터뷰를 보면 강박증과 불안감을 보이는 등 심리적으로 아주 위험한 상태로 보였다. 그러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도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 당국이 고문을 통해 사람을 손상하기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외국인이기 때문에 외부에 나타나는 고문 흔적보다는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자포자기 상태를 유도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할 것이다. <평양의 영어선생님>이라는 책을 쓴 수키 김 씨는 이렇게 전언한다.
“웜비어 사건은 오랫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이들에겐 놀랍지 않은 일이다. 북한 당국이라는 게 그만큼 무자비하다. 북한 권력집단의 실체가 드러난 사건이라고 하겠다. 웜비어가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포스터를 실제로 훔쳤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웜비어가 혼수상태에 빠졌는데도 미국에 알리지 않은 것도 비인도적인 일이다.”
한국 정부 당국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 억류된 인원은 총 10명이다. 한국인 6명, 미국 국적자 3명, 캐나다 국적자 1명 등이다. 미국 및 캐나다 국적 억류자들 모두 한국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단체와 인권단체는 비공식적으로 북한에 억류 중인 외국인이 당국의 집계보다 훨씬 더 많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조선족이나 화교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현재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국인은 토니 김(김상덕) 씨와 김학송 씨, 김동철 목사 등 총 3명이며, 한국계 캐나다인 목사 임현수 씨도 지난 2015년 2월부터 북한에 구금돼 있다.
오토 웜비어 씨의 시신이 안치된 미국 신시내티의 오크힐 묘지 정문에 추모의 뜻을 담은 천이 매달려 있다.
억류자들의 현황과 범죄 혐의
평양과기대 교수 출신 한국계 토니 김 씨는 지난 4월 북한에서 출국하기 전 평양국제공항에서 체포됐고, 지난 5월에는 북한에 ‘적대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구금된 김학송 씨가 기차를 타고 중국 단둥에 있는 집으로 가다 평양역에서 체포됐다.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 목사도 2015년 10월 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에서 ‘간첩’ 혐의 등으로 북한 당국에 체포돼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캐나다계 임현수 목사는 2015년 1월 말 나진·선봉 지역에서 평양으로 향하던 중 국가 전복 음모 혐의로 억류됐다. 약 2년 만인 2016년 12월 캐나다 외교부 대표단이 임 목사를 처음으로 면회한 바 있다.
북한 억류가 확인된 우리 국민은 탈북민 3명을 포함해 총 6명이다. 김정욱 선교사는 2013년 10월 밀입북 혐의로 북한 당국에 체포돼 국가 전복 음모죄와 간첩죄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14년 10월과 12월에 각각 억류된 김국기 목사와 최춘길 선교사도 국가 전복 음모죄와 간첩죄 등으로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억류된 탈북민 3명 중 북한이 신원을 공개한 사람은 지난해 5월 북·중 접경지역에서 납치된 고현철 씨다. 북한은 지난해 7월 고 씨의 자백 기자회견을 열어 그가 어린이 유괴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2명 중 1명은 지난해 3월 북·중 접경지역에서 납치된 김원호 씨로 알려졌으나, 탈북민 출신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아직 북한이 최종 판결을 하지 않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그 외 탈북민 신분으로 중국 등지로 여행을 갔다가 실종된 사례도 많다. 바로 얼마 전 종편방송에서 활동했던 미녀 탈북민이 중국에서 실종됐다가 북한 방송에 나타나 자진 입북이니 유인 납치니 하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과 외국 국적자들은 외부와 격리된 상태로 갖은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추정만 가능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북한은 평양 주재 스웨덴대사관을 통해 억류한 외국인에 대한 영사 접견을 선택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의 요청엔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4년 풀려난 재미교포 케네스 배 씨가 북한 억류 중 미국 CNN과 인터뷰하고 있는 장면.
인질외교의 진수
북한은 왜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나라를 찾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인질외교에 집착하는 것일까. 북한의 인질외교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데는 해당국들의 약점을 정확히 치고 들어오는 것에서 기인한다. 특히 지난 2월 김정남 암살 사건이 터졌을 때 당시 북한 내부에 있던 말레이시아인을 인질로 삼아 김정남 시신과 암살 용의자들을 맞교환하는 데 성공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북한은 자국민 보호를 중시하는 미국을 상대로 핵·미사일 협상 등에 인질을 이용해왔다. 2009년 미국 여기자 억류와 2010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의 석방 협상 모두 핵실험이나 천안함 도발 등으로 빚어진 대치 시점에서 국면 전환용으로 민간인 인질 활용을 극대화한 결과물이었다.
향후 전망은 어떻게 될까. 웜비어 씨 사망 이후 미국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가 관건이다. 지금껏 인질외교를 미국과의 대화 수단으로 삼아온 북한의 의도와는 달리 앞으로는 미국 내 북한에 대한 여론이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임을 당연시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수치로 웜비어 씨 사망에 대해 북한에 책임을 묻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답했다. 설령 북한이 추가적인 인질 석방이라는 국면 전환의 행동을 취한다 해도 웜비어 씨 사망 사건에 대한 책임 소재와 진상 규명, 재발 방지 등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9년 북한에 억류 중인 여기자 로라 링 씨(사진)의 석방을 위해 클린턴 전 대통령을 특사로 파견했다.
북한 문제는 국제사회와의 공로로 해결해나가야
웜비어 씨 유족은 북한에서 당한 고문과 학대가 그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미국 의료진은 웜비어 씨의 뇌 조직이 광범위하게 손상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는 외부적인 충격에 의해서건 약물 투입과 같은 방식으로건 간에 북한 당국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륜적 범죄 행위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했고, 미국인들의 북한 여행을 전면 금지하는 ‘지리적 여행 규제’를 승인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30일 후인 8월 말부터 발효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여러 차례 각종 회담을 제기해둔 상태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북한 당국이 벼랑 끝 전술 말미에 보여온 행태대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회담장에 나올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인 성과라는 측면에서는 요원하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당장 이산가족 상봉만 해도 그렇다. 한국 차원에서 보면 일찍부터 모든 이산가족의 데이터베이스 작업이 완료됐고, 상봉 순서까지 모두 정해진 상태에서 북한 쪽만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북한은 전혀 다르다. 한국에서 상봉자 명단을 전달하면 북한은 이것을 가지고 자체 조사를 진행해 최종 대상자를 선정해서 통보해온다. 그리고 상봉 의사 확인, 이송 대책과 철저한 상봉교육 등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기적처럼 합의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물리적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은 이미 남북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북한 식당 여종업원 송환과 북한 최고수뇌부 테러범 압송 등을 요구한 상태다. 여기에 상응한 조치가 이뤄지고 어느 정도 수긍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한 치 앞도 나가지 못하는 게 한반도의 현실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국제사회와의 공조 외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한민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괜한 편법이나 무리수를 둔다면 점점 더 수렁으로 빨려들어갈 것이 뻔하다.
모든 것이 막혀 있을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지혜를 제대로 기억하고 살펴야 할 때이다. 북한 문제는 한반도를 넘어 이미 국제적인 숙제가 됐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피랍탈북인권연대,
행복한통일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