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역사 탐방

임진강 황포돛배

임진강 황포돛배

황포돛배 뱃길 따라 이어진
1500년 역사의 숨결을 느끼다

휴전선을 가로지르는 임진강은 분단의 상징이다. 지난 7월부터 파주시에서 운행하고 있는 황포돛배관광을 이용하면 임진강 곳곳에 있는 역사적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 뱃길을 따라 이어진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았다.

글·최정윤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나라 최대 장강은 압록강(790km)이며, 낙동강, 두만강, 한강, 대동강, 금강에 이어 임진강은 7대강에 속한다. 임진강은 남북 양측에 걸쳐 60년 넘게 국경선 같은 역할을 해온 강이다. 그동안 숱한 사연과 비애를 담고 있지만 자유롭게 이 강을 건넌다거나 여기에 묻혀 있는 역사 현장을 간단히 찾아 나선다는 것은 지금도 쉽지 않다. 경기 파주시는 2004년 ‘임진강 황포돛배길 따라 서해로 가다’라는 주제로 ‘임진강 황포돛배관광’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부터 잠시 중단됐다 올해 7월부터 재개했다.

관광 코스는 출발지인 임진강 최북단 두지나루에서 출발해 고랑포 여울목을 돌아오는 6개 지점이다. 조선시대의 강선을 그대로 복원한 황포돛배를 타고 남쪽으로 임진강 중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 여울목에서 회항(回航)하는 뱃길관광이다. 임진강 전체 길이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구간이지만, 이 안에는 임진 8경이 곳곳에 위치해 있고 고랑포 나루의 역사와 분단 60년의 현장도 직접 살필 수 있다.

황포돛배 타고 즐기는 절경

KTX로 서울역에 내려 문산행 경의선 전철을 갈아타고 문산역에 내리면 택시로 1만 원 거리에 목적지인 경기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가 나온다. 두지나루는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와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의 두 마을이 강을 마주해 있는 임진강 북단의 조그마한 포구다. 100여 가구 남짓한 강촌으로 옛날에는 장단군 장남면 장단나루로 불렸다.

나루에는 황포돛배의 커다란 모형선이 위용을 뽐내고 있고, 소형 어선들의 작업 광경도 눈에 띈다. 내수면 어업이 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의 진미 쏘가리매운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유람선 황포돛배에 올랐다. 40여 명 정원에 요금은 성인 9000원이다.

배는 길이 약 15m 정도의 목선으로, 조선시대 조운선(曹運船)을 본떠 만들었으나 선미에 스크루를 달아 동력으로 움직인다. 후갑판에는 배 길이만 한 황포돛대가 높이 솟아 있고, 위에는 바람막이 지붕이 올려져 있다. 양쪽에는 나무 의자를 부착해 승객들이 편안하게 기대앉아 주변 경관을 살필 수 있게 했고, 앞 갑판에서 중앙까지는 공간을 남겨 시야를 배려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두지나루를 출발한 배는 어느덧 하얀 물살을 가르며 커다란 거북 형상을 한 거북바위 옆의 적성면 ‘자장리 적벽’ 앞에 닿았다. 60만 년 전에 형성된 주상절리 적벽으로, 임진강 11개 적벽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곳이다.

돌 틈 사이로 마른 흙들이 부서져 내리고 적벽의 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현무암 절벽 사이마다 산벚꽃나무, 돌배나무, 조팝나무, 돌단풍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는 듯하다.

배는 괘암(卦岩)과 마주쳤다.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적벽’ 바위 위에 전서체 글씨가 마치 주역의 점괘처럼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의 대문장 허목(1595~1682) 선생의 글씨라 한다.

분단의 애한을 안고 흐르는 임진강. 분단의 애한을 안고 흐르는 임진강.

호로고루성의 발자국들

잠시 후 배는 장남면 고랑포 남동쪽 절벽에 위치한 호로고루성(瓠瀘古壘城) 앞에 닿았다. 표주박의 좁은 목같이 생긴 여울의 고성(古城)이라는 뜻으로, 임진강의 옛 이름인 호로하(瓠瀘河)에서 따온 이름이다. 고구려는 이 성을 요새로 하여 백제, 신라와 200여 년간 긴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최종 승리는 김유신 장군이 이끈 신라군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신라는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

6·25전쟁 당시에는 북한군 주력부대가 이 성을 지나 파죽지세로 서울까지 밀고 왔다. 경기 연천군과 파주시 경계의 감악산 아래에 영국군 설마리전투비가 있다. 6·25전쟁 당시 설마리전투에서 고지가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혈전을 벌이다 젊은 생을 마감한 영국군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6·25전쟁 때 무수한 중공군과 맞서 싸운 유엔군의 임진강 적성대첩이 얼마나 치열했던가를 말해준다.

어느 사이에 배는 회항 지점인 고랑포(高浪浦) 여울목에 닿았다. 고랑포의 현재 행정구역은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로 되어 있으나 옛날에는 장단군 장서면 관송리 고랑개로, 비호(鼻湖)라고도 했다. 고랑개에 포구 이름을 붙여 고랑포라 한 것은 김정호의 청구도(靑邱圖)에서 비롯됐다. 일제강점기에 와서는 상고랑포, 중고랑포, 하고랑포로 나뉘었다. 황포돛배의 회항 지점은 상고랑포이다.

6·25전쟁 때 전사한 영국군들의 넋을 기린 영국군 설마리전투비. 6·25전쟁 때 전사한 영국군들의 넋을 기린 영국군 설마리전투비.

상고랑포는 강폭이 좁고 수심이 얕아 걸어서 임진강을 건널 수가 있다. 1950년 10월 19일 평양 입성을 앞둔 백선엽 장군의 국군 제1사단이 문산을 거쳐 맨 먼저 도강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1968년에는 북한 김신조 일당의 무장공비 31명이 임진강을 건널 때도 이 여울목을 이용했다.

6·25전쟁 전까지 고랑포에는 장단군의 여러 행정기관이 위치했을 뿐 아니라 화신백화점이 들어섰을 정도로 상업이 번창했다. 서해로부터 조류를 타고 올라오는 화물선이 조기, 새우젓, 소금 등을 가득 싣고 고랑포 하구에 닿으면 특산물인 콩, 삼, 잡곡 등과 교환이 이뤄지는 중부지방의 가장 큰 물물집산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고랑포는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민통선 안에 갇혀 있어 포구 전체가 무성한 갈대숲으로 변해 옛날의 명성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고랑포 여울목을 돌아가는 길에 또 하나의 임진강 적벽과 마주했다.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에 위치한 ‘원당적벽(元堂赤壁)’이다. 한가로이 오후의 햇살을 받고 있는 이 적벽에도 여름이 완연했다. 선장의 안내 방송을 따라 배에서 잠시 내려 남쪽을 향하니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화석정(花石亭)과 조선조 초기의 명재상 황희(1363~1452) 선생이 세운 반구정(伴鷗亭)이 아련하다. 경북 영주 구성산 아래에도 반구정이 있다 하나 그 경관을 이곳 임진강의 반구정에 비길 것인가. 갈매기를 벗 삼아 수려한 강변 경관에 취했을 옛 선비의 여유로움을 떠올려본다.

화석정은 율곡(1536~1584)의 조부 이숙함이 짓고 붙인 이름이다. 이이 선생의 호를 율곡(栗谷)이라 한 것은 이 정자가 파주시 문산읍 율곡리에 소재한 데서 유래한다.

조선조 초기 명재상 황희가 세운 반구정. 조선조 초기 명재상 황희가 세운 반구정.

‘장마루촌의 이발사’

선장은 화석정 위쪽에 자리한 긴 석벽의 산자락을 가리키면서 ‘장마루촌의 이발사’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석벽 안쪽이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로, 바로 영화의 주 무대가 된 그때의 ‘장마루 이발관’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고 한다. 1960년대 말 반공작가 김기 감독의 작품으로 최남현, 김지미, 신성일 등 당대의 유명배우들이 출연해 임진강변 실향민들의 삶과 애환을 엮은 전형적인 6·25 드라마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서북쪽 전방에 우뚝 솟은 산이 개성 송악산이다. 지척에 있는 명산이건만 갈 수 없으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배가 지나오는 왼쪽 강변 들녘이 옛 장단군이고, 강을 넘어 그 안쪽은 북한의 개풍군과 금천군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비닐하우스는 들녘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는다. 땅이 남아도는 데다 대자본을 요하는 시설형 농업 같은 것은 이곳 조건에 맞지 않다는 의미다.

하고랑포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능이 있고, 그 아래 진동면 화포리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한의학자 허준의 묘가 있다. 허준 선생의 묘가 이곳에 위치한 것은 양천 허씨의 묘향이라는 것에 근거하지만, 신라의 왕이 임진강 언덕에 묻힌 데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10세기 중엽에 이르러 국운의 쇠락을 맞이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신라 최후의 경순왕을 인질로 삼아 자신의 딸 낙랑공주와 혼인을 하게 하고 지금의 도라산역 부근 도라산 암자에 살게 했다. 왕건의 사위가 된 망국의 왕은 고향 서라벌을 애타게 그리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되자 신라를 향한 임진강변 동남방향 산자락에 묻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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