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지 일주일 만에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공식 방문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밝히 는 한편, 북한식 개혁·개방의 길을 제시했다. 이것은 지난해에 열린 북한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당의 중점을 사회주의 경제 건설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할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중국도 여기에 화답하듯 북·중 정상회담 직후 ‘세 가지 불변’ 원칙을 제시했다. 즉 국제 정세와 역내 정세가 어떻게 변화하든 ‘중국 당·정이 북·중관계를 공고하게 발전시키는 것, 북한 인민에 대한 중국 인민의 우호적 정의(情誼),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정상국가 대 정상국가’라는 양자 관계를 ‘정상적 관 계이면서도 특수한 관계’로 다시 정의하기도 했다.
북한이 여섯 차례 핵실험을 하는 동안 중국은 북한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고 국제 제재에 참여해 북한을 압박했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새로운 북·중관계는 놀라운 변화다. 여기에는 우선 북한발 변화가 컸다. 즉 시장의 확산에 적응할 필요가 있었고, 이데올로기나 유훈이 아니라 탄복할 만한 경제적 업적을 통해 정당화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가장 현실적인 요소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인식과 정책의 전환이었다.
일단 북한이 핵 보유를 곧 국체(國體)로 간주했던 입장을 조정하자, 중국도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제시했다. 그것은 북한의 피(被)포위 의식을 완화시키는 한편 한반도 비핵화의 역진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일종의 중국발 전략적 인내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은 김정은 위원장과 경제관료들에게 개혁·개방의 현장을 보여주면서 북한에 정책적 자극을 주고자 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덩샤오핑 선생의 길을 일찍 걸었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다”고 밝히는 등 북한 특색을 지닌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진핑 주석이 이례적으로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를 강조한 것도 이데올로기 차원의 연대라기보다는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본격적으로 나설 때 중국이 정치적으로 지지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 북한은 9월 9일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아 정상국가의 문턱을 넘고자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하고 숨 가쁜 외교 협상이 진행되고 있고, 일종의 전술적 힘겨루기 국면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북·미 협상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진전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런 점에서 한중 협력도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빈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국제사회 앞에서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우려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소극적 태도가 새로운 북·중관계 때문이라는 단선적 인식보다는 이를 통해 남북관계와 한중관계를 선순환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이후, 남·북, 북·미, 북·중,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과정에서 한중 양자 정상회담이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것은 어색하다. 올 해는 한중 간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맺은 지 10년이다. 형식에 걸맞은 내용을 담을 필요가 있다.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