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민간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던 2005년, 남북·해외가 함께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이하 6·15민족공동위)를 결성했다. 이창복(80) 의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6·15남측위는 6·15민족공동위의 남측 단위이다. 6·15와 8·15 등 남북의 기념일을 계기로 추진해온 민족 공동 행사는 2008년 금강산에서 열린 6·15민족 공동 행사를 끝으로 더 이상 열리지 못했다. 마지막 공동 행사가 개최된 지 10년이 지났고 내부의 동력도 많이 상실됐지만, 이창복 의장은 그 길을 다시 열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2018년 한반도 대전환의 흐름 속에서 민족 공동 행사도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6·15를 비롯해 남과 북이 다 같이 의의가 있는 날들을 계기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 공동 행사를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6·15민족공동위 위원장 회의가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다. 남과 북, 해외의 대표들이 참가했고, 이창복 의장도 15명의 남측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해 회의에 참가했다.
이번에 평양에서 열린 회의에는 남측에서 이창복 의장을 비롯해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한국진보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YWCA,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의 단체 대표들이 함께했고, 북측위원회는 박명철 위원장과 양철식 부위원장을 비롯해 조선직업총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단체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 의장은 “아무리 좋은 합의를 내놓는다 해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바로 폐기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 비준이라는 법적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측, 통일 이루겠다는 의지 뚜렷”
6·15남측위원회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왔는데요,
어떻게 구성된 단체이며, 어떤 활동을 해왔나요.
“헌법상 대통령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달리 공동위는 정부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순수 민간단체입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선포한 6·15 공동선언과 그에 이은 10·4 선언의 정신을 이어받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2005년 결성됐지요. 그동안 남북·해외가 모여 회의를 하고 민족 공동 행사를 여는 등 활동을 펼쳤지만 2008년 금강산에서 개최한 행사를 끝으로 남북 상호 방문과 공동 행사 개최가 중단됐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남북관계가 급속히 경색됐으니까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9년간 공식적인 남북관계는 두절됐지만 6·15남측위는 보수화된 정부의 통일정책에 반대하며 6·15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각종 대중활동을 펼쳤다. 남북 상호 방문은 가로막혔어도 해외에서 북한과 만남을 가지며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5년 전, 민간 통일운동이 여의치 않은 조건 속에서 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을 맡은 이창복 의장은 이러한 활동의 중심에 있었다. 이 의장은 평생을 통일운동, 민주화운동에 투신해왔다. 고향인 원주에서 가톨릭노동 청년회 활동을 시작으로 민주통일민중운동엽합(민통련) 사무처장,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의장, 전국연합 의장 등을 역임하며 1980~90년대 민주화운동 한복판에 있었다. 2000년에는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해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남북 민간 교류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나, 북한의 경우는 순수 민간이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북에 순수 민간단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곤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북측 체제의 특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며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북측에서 6·15민족공동위 활동을 하는 담당자들은 민간 신분은 아닐지언정 북의 일반적 공무원들과는 사고나 태도가 사뭇 다릅니다. 한국 사정에 대해 놀랄 정도로 정통하고 사고가 유연하며, 민간운동에 대한 이해도도 높죠. 그래서 이런 유연한 대화 상대들과의 교류와 소통이 결국 북의 정권에도 파급 효과를 줄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 방북 때 북한 사회나 북한 측 인사들의 분위기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셨나요?
“대표의장을 맡은 뒤로 1년에 한 번씩은 북측위 인사들을 만났으니 이번이 다섯 번째 만남이었는데, 이번 회의에서는 확실히 많은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북핵 문제 등으로 남북관계에 긴장이 고조됐을 때는 북측위 사람들도 매우 경직되고 수세적이었는데, 이번에는 눈에 띄게 적극적인 자세로 대화에 나서더군요. 그들 스스로 평화통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고, 통일을 이루겠다는 의지 역시 확실히 보였습니다.”
6·15남측위는 이번 회의에 세 가지 의제를 북에 제안했다. 첫째는 4·27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공동위의 역할과 과제, 둘째는 8·15, 10·4, 내년 3·1 100주년 행사를 민족 공동 행사로 개최하는 문제, 셋째는 분야별 접촉을 통한 교류협력 확대 등이다. 분야별로는 ▲하반기 추수 한마당 개최, 농기계 및 통일쌀 지원(농민) ▲7월 중순 개성이나 금강산에서 청년학생 대표자회의 진행, 10·4를 전후해 청년학생통일농구대회 개최(청년학생) ▲평양 단군릉에서 개천절 민족 공동 행사 개최,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봉안사업 공동 진행(민족)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 개최(노동) ▲백두산 역사기행 사업, 북측예술단 초청 지역순례 공연(지역) 등을 제안했다.
북측은 이 같은 남측위 제안에 대부분 긍정적 답을 했고, 추후 협의를 통해 사업을 구체화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기대가 모아졌던 8·15 행사에 관해서는 완전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추후에 상황을 봐가며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이러한 합의가 이뤄지려면 정부와의 협력이 중요해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년간 취한 통일정책의 기조는 정확하고도 훌륭하다고 판단합니다. 또한 대통령은 말로만 통일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이에 상응하는 열정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이것이 집권 초기에 국한되지 않고 말기까지 관통하고 지속됐으면 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민간 교류와 관련해 아직 제한이 많다는 점입니다. 이번 평양 방문과 관련해서도 신청한 사람 중 5명에 대해 정부가 방북 불허 판정을 했는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의장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평화통일에 걸림돌이 될 만한 법적·제도적 제약을 폐지 혹은 수정하고, 통일에 디딤돌이 될 만한 법안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합의를 내놓는다 해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바로 폐기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 비준이라는 법적 제도화가 필요합니다. 개성공단의 경우를 보십시오. 수많은 북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남측 기업가들에게도 수익을 주었던 개성공단이 합당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폐쇄되지 않았습니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청년학생 통일 인식 전환 시급
이 의장은 “체제와 민주화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의 과제는 이제 어느 정도 해결됐다. 지금부터는 민족 공동의 미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진단한다. 그런 화두 중 하나로 젊은 층을 통일운동으로 끌어들이는 문제를 꼽는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통일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통일 무용론 혹은 반대 의견을 갖기도 합니다.
“1970년대부터 재야운동을 하며 청년학생이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지켜본 사람으로서 요즘 학생들의 저조한 학생운동이 몹시 안타깝습니다. 젊은이들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은 불투명한 진로에 대해 걱정하고 취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지요. 우리가 깊이 고민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입니다. 통일이라는 대전제를 염두에 두면서도 직업적 이윤까지 창출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해 제시해주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6월 25일 서울 종로구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사무실에서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이 6·15 민족공동위원회 남북해외위원장회의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합의를 내놓는다 해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바로 폐기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 비준이라는 법적 제도화가 필요합니다.”
통일정책 바로 세우는 게 민주평통 역할
통일운동을 해나갈 협력 주체로서 민주평통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민주평통이 해줄 일,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 민주평통이 통일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통일 항아리’ 모금운동을 펼쳤다거나, 이번에 베를린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며 평화 마라톤을 펼친 강명구 씨(‘통일시대’ 1월호 소개)를 민주평통 미주 지역 관계자들이 가는 곳마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일 등이 고무적인 사례입니다. 민주평통은 헌법 기관이고 정부에 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직인 만큼 평화와 통일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민주평통이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데’ 머물지 않고 ‘통일정책을 바로 세우는 데’ 더욱 적극적 역할을 해주길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