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한인풀뿌리대회에 참가한 한인들. 한인풀뿌리대회에 참가한 한인들. 美 의회를 움직여라!

미국 권력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그리고 빨리 예측해 미리 로드맵을 만들어내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공동 번영을 구축하는 데 있어 대미관계 경쟁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미주지역 민주평통의 사업도 이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국 민주당이 숨겨온 지도자, 차기 대들보로 불리는 뉴욕의 보물 정치인, 민주당 전국 서열 3위인 조 크라울리가 6월 26일 뉴욕주 당내 예비경선에서 탈락했다. 뉴욕시의 슬럼가로 소문난 브롱스에서 빈민 유권자활동가로 알려진 28세의 남미계 여성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에게 패했다. 코르테스는 2016년 대선전에서 뉴욕에서 ‘버니 샌더스’의 자원봉사를 한 경력이 전부다.

지역의 힘 있는 유지들을 조직해 그들의 돈과 힘을 기반으로 20년 동안 자리를 굳건히 보존해오던 조 크라울리가 유권자를 가가호호 직접 방문하면서 민심을 얻은 풀뿌리 활동가에게 패배해 정치생활을 접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민심을 경시하고 지역 유지들의 힘에만 의존해오며 중앙정치에 집중하다가 그만 망한 꼴이다.

이 같은 이변은 2014년 중간선거전의 공화당 예비경선에서도 나타났다. 버지니아 리치몬드가 지역구인 공화당 원내대표 에릭 캔터가 지역구 내 무명의 대학교수에게 보기 좋게 패한 것이다. 공화당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면서 젊은 보수의 총아로 불렸던 에릭 캔터가 순식간에 지역 민심에 의해서 사라져야만 했다. 대중 외곽의 바람이 순식간에 폭풍으로 변하는 것이 이젠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풀뿌리의 위력

외곽이 중심을 순식간에 몰아내는 선거판의 이 같은 풀뿌리 바람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미국의 흐름을 예측할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 선거판의 사이클은 이러한 방식이 공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간선거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 풀뿌리 바람이 대선을 향해서 서서히 폭풍으로 변하고, 대선전에선 양당 공히 순식간에 광풍으로 변했다.

그래서 미국 정치의 키워드는 ‘풀뿌리’다. 풀뿌리는 중간이 없고 입장이 명쾌하고 분명하다. 풀뿌리의 근간은 서민이자 여성이며 소수계이고 영세·중소 자영업자이자 시골이다. 선거판에 불어오는 풀뿌리 바람은 비주류 소외계층이 세상의 중심으로 나오는 희망을 보여주기에 예상치 못한 힘이 있다.

‘한반도의 평화’라는 주제로 7월 12일부터 2박 3일간 한인풀뿌리대회(KAGC)가 열렸다. 연방의회만을 타깃으로 하는 시민 로비다. 미국 전역의 한인 정치 참여 활동가 600여 명이 워싱턴에 모여 풀뿌리 시민 로비 교육을 받고, 20개 조로 나눠 자기 지역의 상하 양원 의원들을 직접 만났다.

선거의 해에 지역에서 유권자인 풀뿌리 활동가가 직접 찾아오는데, 이를 만나지 않을 정도로 용감한 의원은 없을 것이다. 의원마다 회의실에 커피와 스낵을 준비하고 맞이할 정도이다. 미리 준비한 의견을 책자로 전달하며 의원의 의견을 묻고, 풀뿌리의 입장을 설명했다. 또한 의사당 옆 호텔에서 열리는 저녁 만찬에 20여 명의 연방 의원들이 직접 참가했다.

매년 7월 중에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KAGC가 올해로 5회째를 맞았다. 2005년 한미 간 비자 면제 프로그램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연방 의회에 한인들이 직접 시민 로비를 펼쳐 성사시킨 것을 시작으로, 2007년 7월에는 일본의 강력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강제위안부 결의안을 연방 하원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일을 주도한 뉴욕의 시민참여센터는 이 일에 동참한 각 지역의 핵심 멤버들을 조직화하는 것을 구상했다.

드디어 2014년 각 지역의 활동가들이 자기 지역의 한인들을 모아 워싱턴으로 모였다. 지역구 의원의 사무실을 방문해 한인 사회의 이슈를 전달했다. 만찬장에도 의원을 초청했다. 첫해에 10명 이상의 의원들이 만찬장을 찾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풀뿌리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매해 참가 인원이 늘었고, 올해에는 의사당 안에 소문이 자자했다. 일반 시민사회가 조직적, 전문적으로 시민 로비를 펼치는 사례는 유대계가 유일한데 드디어 한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역구에선 유권자 활동을 조직하고, 워싱턴에선 현안을 설명하는 등 이러한 뜻을 관철시키는 시민 로비 방식이 조직됐다. ‘Local Action, Washington Impact’가 한인 풀뿌리 조직의 활동 방식이다.

KAGC는 연방 의회를 상대로 하는 미국 내 유일한 전국적인 한인 유권자 시민 로비단체다. ‘로비(Lobby)’라는 단어가 한국에서는 불법을 연상시킬 만큼 부정적인 이미지이지만 워싱턴에선 하나의 산업으로 형성돼 있다. 연방법에 등록된 직업 로비스트들은 영리 목적으로 현안(이슈)을 의원들에게 전달할 뿐이지만 KAGC는 유권자 그룹으로, 비영리의 공공이익을 위한 정치적 조직이기 때문에 현직 의원들에게 강하게 압력을 가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영향력도 대단하다.

위원장 은퇴, 지금이 바로 기회

KAGC는 최근 미국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는 양당의 대중 외곽 풀뿌리 조직들과 연계를 맺고 활동하고 있어 초당적인 조직으로도 알려져 있다. 기존의 미국 내 시민단체들은 이념 성향(진보적 좌파, 보수적 우파)으로 구분돼 활동했기 때문에 당파 싸움장이 돼버린 지금의 연방 의회를 작동시킬 수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미국 평화단체들과 연계한 한반도 평화 문제는 지금의 연방 의회에선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이다. 의원 누구에게 로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지금 한반도 평화 문제는 주의를 요한다. 더구나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초강경 일변도였고, 그래서 미국 의회의 의원 대부분은 그렇게 적응된 상태다.

그래서 연방 상·하원 의원들을 접촉할 때 애로사항이던 점이 미주 한인들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반대한다고 알고 있는 것이었다.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의 은퇴 선언으로 현재 외교위원회에서는 대부분의 일들이 민주당 랭킹멤버(미 의회 야당 간사를 지칭)인 뉴저지주 출신의 밥 메넨데스가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밥 메넨데스는 한인들과 매우 가까운 인물이다.

풀뿌리 대회의 둘째 날 아침 8시 30분. 전국에서 모여든 한인 600여 명이 의사당 앞에 집결해 메넨데스를 불러냈다. 메넨데스 의원이 직접 나온다는 말에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도 몰려들었다. 평소에 상원 외교위 랭킹멤버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다나 그동안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회의 입장을 전해들을 수 없었던 터라 메넨데스가 한인 유권자 그룹 앞에 나선다는 건 ‘빅 뉴스’였다.

KAGC가 만난 의원들 중 전략적으로 공을 들인 의원은 메넨데스를 비롯해 상원 외교위원회 아태소위원회의 코리 가드너 위원장, 야당 랭킹멤버인 에드 마키 의원과 하원 외교위의 랭킹멤버인 엘리옷 엥겔 의원과 아태소위원장인 테드 요호 의원, 민주당 랭킹멤버인 브렛 셔먼의원이다.

상하원 외교위원회의 위원장과 아태소위원회의 양당 중진 의원들에게 미주 한인 유권자 그룹인 KAGC의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한반도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휴스톤과 댈러스에서 온 100여 명의 한인 유권자와 1시간 동안 대화를 한 테드 쿠르즈 의원은 올해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부탁했다. 포스트 오바마로 불리는 뉴저지 출신의 코리 부커 의원은 뉴저지 한인들의 의견을 듣고서 자신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인 풀뿌리 대회를 알리는 전면 광고를 미국 정치권의 미디어를 석권한 ‘폴리티코(Politico, 미 연방의회 전문지)’에 냈다. 한인들은 그 신문 광고를 의원 보좌관들에게 건네면서 우리는 “발품을 팔았을 뿐만 아니라 돈까지 내고 이렇게 찾아왔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주 연방 14지구 민주당 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사회주의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가 10선의 조 크롤리 하원의원을 이겼다. 사진은 오카시오 코르테스(맨 오른쪽)가 5월 6일 뉴욕에서 벵골 공동체의 봉사활동에 함께한 모습. 미국 뉴욕주 연방 14지구 민주당 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사회주의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가 10선의 조 크롤리 하원의원을 이겼다. 사진은 오카시오 코르테스(맨 오른쪽)가 5월 6일 뉴욕에서 벵골 공동체의 봉사활동에 함께한 모습.

워싱턴의 눈으로 미국을 봐야

한국에서 미국 전문가를 만날 때마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갑갑할 때가 많다. 2008년 이미 오바마의 바람이 미국 전역에서 광풍으로 몰아칠 때도 아직 흑인 대통령은 이르다며 관심 밖에 두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 았다. 2016년 미국 전역에서 민심이 트럼프의 등 뒤에 빠르게 올라타고 있는데도 이를 인정 하지 않으려는 경향의 함정에 빠져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걸 봤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워싱턴의 전문가(싱크탱크) 그룹, 로비스트 그룹이 비교적 빠르게 그 영향력과 기능이 쇠퇴했다. 시민들이 무더기로 선거판에 나와 순식간에 권력을 만들기 때문에 정치 컨설턴트들과 로비스트들의 역할이 없어진 것이다. 워싱턴 내 전문가 집단이 서서히 무장해제되고 있다.

유권자가 직접 나서는 풀뿌리의 흐름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미국 권력의 향배를 전망할 수 없다. 북한의 핵 문제뿐만 아니라 각종 통상 관련 이슈도 마찬가지다. 향후 한 세기 이상 대미관계 경쟁력은 한국의 이익을 얻는 데 절대적인 요건이다. 이를 부인할 사람은 없다.

이제야 공공외교를 강조하는 한국의 외교 흐름은 사실상 늦은 편이다. 뒤처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위한 전략이 없으니 국민 세금만 축내는 게 될까 봐 걱정이다. 미국 권력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그리고 빨리 예측해 미리 로드맵을 만들어내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번영을 구축하는 데 있어 대미관계 경쟁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미주 지역 민주평통의 사업도 이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김 동 석 김 동 석
뉴욕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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