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Ⅱ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단독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단독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북·미 비핵화 이행조치 이견
이젠 실질적인 조치 마련할 때

미국과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약속을 쉽게 파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 모두 실질적인 이행의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핵화 모멘텀이 지속되는 동안 미국과 북한은 실질적인 조치를 하나씩 만들어나가야 한다.

6월 12일 미국과 북한의 두 정상은 공동성명서에 사인을 했지만, 성명서에 담긴 비핵화 내용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노력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끝났다. 비핵화 의지와 노력 사이에 들어갈 세부적인 이행 조치는 이른 시일 내에 갖기로 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북한의 고위 인사 간의 후속 협상으로 넘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종료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일주일 안에 고위급 비핵화 협상이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7월 6일이 돼서야 1박 2일 일정으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평양을 방문했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고위급 회담에서도 비핵화 이행과 관련된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워킹그룹 구성과 동창리 엔진시험장 폐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협상 개최 및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문제를 7월 12일 판문점에서 진행한다는 데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안전보장 제공을 약속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안전보장 제공을 약속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북·미의 간극

비핵화 조치와 관련된 논의는 여전히 ‘의지’와 ‘노력’이라는 추상적 기준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비핵화에 대한 ‘의지’와 ‘노력’ 모두 상반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명확하고 확고하게 강조한 ‘비핵화 의지’는 전략적 큰 결단을 내린 만큼 빠르게 이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여주는 한편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추진 과정이 북측의 요구가 충족되는 우여곡절의 환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달성될 최종 목표임을 시사한다.

한편 ‘비핵화를 향한 노력’ 역시 두 가지로 나눠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비핵화의 실질적인 조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을 합의하는 것 자체를 노력이라고 할 수 있고, 두 번째 해석은 합의된 사항을 거짓 없이 실질적으로 이행해나가는 것을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양극단으로 해석될 수 있는 비핵화 의지와 노력 사이에서 ‘완전한 비핵화 조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쟁점이 왜 미국과 북한 간 완전한 비핵화 노력의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하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완전한 비핵화 조치’란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7월 6일 3차 방북에 앞서 소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라는 용어 대신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용어로 대체했다고 하지만 비핵화를 위한 CVID의 기본 취지와 개념은 그대로다.

첫째, ‘완전한’ 비핵화란 앞으로 더 이상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핵물질, 핵탄두, 핵무기 투발 수단을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 핵 개발과 관련된 시설에 대해 신고 리스트를 제출해야 하고, 신고 내역과 사찰팀의 사찰 결과가 일치해야 하며, 북한이 신고한 이외 의심 지역에 대한 사찰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해나가야 한다.

셋째, 불가역적인 비핵화나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 모두 비핵화 이행 과정뿐만 아니라 비핵화 완료 이후에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고 비핵화가 영구히 지속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핵 폐기 대신 비핵화라는 용어로 대체됐다고 하지만, 비핵화는 모든 핵 시설, 핵무기, 핵물질, 핵 관련 자료 및 데이터의 폐기뿐 아니라 핵 개발에 종사했던 엔지니어링, 과학자들의 분산과 이직 및 관련 정보 해외 유출에 대한 통제 등을 포함한다.

그런데 북·미는 ‘완전한 비핵화 조치’의 측면에서 볼 때 큰 간극을 보이고 있다. 첫째, ‘비핵화 노력’과 관련해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로 진입했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조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은 세부적인 비핵화 논의를 지속해나가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

문제는 비핵화 조치와 관련된 세부적인 논의를 하는 동안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중단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핵화 조치의 노력 중 가장 급선무는 현재 가동되고 있는 핵 프로그램의 중단과 동결이다. 그리고 핵 프로그램 중단이라는 전제하에서 완전한 비핵화 조치와 관련된 세부적인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비핵화 조치와 관련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고 워킹그룹을 통한 실무회담, 그리고 고위급 회담으로 회담의 모멘텀만 이어가고자 한다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노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대될 수밖에 없다.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하는 모습. 2번 갱도와 관측소 건물이 폭파되면서 돌무더기와 건물 잔해물이 무너져있다.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하는 모습. 2번 갱도와 관측소 건물이 폭파되면서 돌무더기와 건물 잔해물이 무너져있다.

북한의 비핵화 vs 한반도 비핵화

둘째, 비핵화 조치와 관련된 ‘시간’의 개념 차이다. 미국은 비핵화 프로세스가 시작되는 초기 조치의 시간을 강조하고 있다. 초기 조치로는 현재 가동 중인 핵 프로그램과 가동 시설, 핵물질, 핵탄두, 핵 투발 수단 등에 대한 동결 조치와 더불어 신고서 작성과 제출에 대한 내용과 일정에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초기 조치의 신속성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며 오히려 최종적으로 달성되는 완전한 비핵화의 장기적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북·미 간의 입장 차이는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을 통해 드러났다. ‘빈손 방북’이라는 비판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수십 년간에 걸친 북한의 비핵화 도전을 단시간 내에 해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밝히며,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그들에게 안전보장을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위협을 주는 잘못된 전략이라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트에 ‘비핵화 표현’이 빠진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공개하며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비핵화를 위한 대화 모멘텀을 늘어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6개월 뒤에 내가 틀렸는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사실상의 실질적인 조치가 단행되는 비핵화 프로세스 개시와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엔진시험장 폭파 등의 조치가 6개월 이내에 단행돼야 할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셋째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선행 조치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다르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의 대상인 ‘북한 핵무기’에 초점을 맞추며 북·미관계 개선을 진행시키고 있는 반면,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에 방점을 두고 비핵화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북한의 비핵화’ vs ‘한반도 비핵화’로 개념을 차별화해온 북한의 해석에서 비롯된다.

북한은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밝힌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 중지와 풍계리 핵시험장 폐쇄 배경을 비핵화를 위한 정책 전환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3년 3월 전 원회의에서 채택한 핵·경제 병진노선 정책으로 북한은 세계적인 핵 강국으로 재탄생됐고, 5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국가 핵무력 건설 이라는 역사적 대업을 완벽하게 달성했기 때문에 이제는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채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트럼프 대통령의 왼팔을 잡고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트럼프 대통령의 왼팔을 잡고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의지와 노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과거와 현재의 핵’을 배제한 채 ‘미래 핵능력’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나아가 북한은 미래 핵능력 중단을 북·미관계 개선과 연계하고 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 조항 순서에 따라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추구를 위한 선행조치를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4개 항이 병렬적으로 놓인 것 같지만, 북한이 과거부터 주장해온 내용들에 기초해볼 때 1항부터 3항은 선후가 전제돼 있고, 유해 송환인 4항만 독립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1항의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2항의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될 때 3항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약속한다는 걸로 북한은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을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는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미 간의 새로운 미래 개척과 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진전에 대한 평가와 차기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만 밝혔지 비핵화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완전한 비핵화’, 북미 문제 아닌 우리의 문제

그런데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북·미 간의 큰 간극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진전됐다고 평가할 만한 요소가 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국제사회를 향해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높인 만큼 불신에 따른 비용도 동시에 높여놨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이 생각하는 전략적 계산이 어떠했든, 미국과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약속을 쉽게 파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 모두 실질적인 이행의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핵화 모멘텀이 지속되는 동안 미국과 북한은 실질적인 조치를 하나씩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 또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의 문제는 북·미 간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호 령 이 호 령
한국국방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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