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온다’ 함은 분단의 끝이 보인다는 뜻이다. 새로운 여행 테마로 떠오른 중부전선 최북단에 놓인 우리만의 슬픈 경계선을 찾아 강원도 철원으로 비무장지대(DMZ) ‘안보 견학’을 떠난다. 철원군은 철원 도처에 흩어져 있는 제2땅굴부터 철원 평화전망대, 월정리역으로 이어지는 3시간 짜리 안보 견학 코스를 운영중이다. 민족 분단의 현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노동 당사, 백마고지역도 개별 관람이 가능하다.
철원 하면 겨울 추위, 최북단, 최전방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이곳엔 백마고지, 피의 능선, 철의 삼각지대 같은 6·25전쟁 격전지도 있어 무거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나가 되어가는 한반도의 여름날, 철원에 가면 전쟁의 상흔은 잠시 저만치 물러나고 마치 알프스 산맥처럼 웅장한 산세와 광활한 평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내륙 깊숙한 산간지대에 펼쳐진 이국풍의 광경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저 끝 지평선까지 평야가 이어진다. 명성산(923m)과 금학산(947m)을 거느린 산줄기가 길게 뻗어 있다. 화산암이 분출돼 이뤄진 국내 유일 용암대지 평야와 그 사이를 깊이 파고든 한탄강이 유유히 흐른다.
강원 철원군 동송읍에 들어선 고석정 관광단지로 차를 몬다. 이곳에 둥지를 튼 철원관광안내소에선 하루 네 번 ‘안보 견학’ 참가 신청을 접수한다(오전 9시 30분, 10시 30분, 오후 1시, 2시 30분). 코스는 고석정을 출발해 제2땅굴을 거쳐 철원 평화전망대, 월정리역으로 이어진다.
여름 휴가지로 떠오른 철원 ‘안보 견학’
안내소 직원이 안보 관광 지도를 펼쳐 이것저것 설명한다. 안보 견학 신청서와 함께 제출하는 신분증은 코스를 모두 돌고나면 제5호 통제소를 지날 때 돌려받게 된다는 것과 양지리 검문소에서 왔던 길을 되짚어가도 되지만 좀 더 다양한 철원을 둘러보고 싶다면 464번 도로에서 좌회전 후 노동당사, 도피안사, 백마고지 등을 개별 관광하면 되며 이렇게 돌아도 총 거리는 40㎞ 남짓이라는 정보까지 덧붙인다.
매주 화요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자가용으로, 주말엔 셔틀버스로 이동해야 하지만 최근 한반도 해빙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관람객이 늘면서 관광지마다 주차공간이 협소해 7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한 달 동안은 평일과 주말에 셔틀버스로만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요즘 같은 땐 주말이면 이곳을 찾는 관람객이 1000명에 달할 정도로 많이 와요. 관광 해설은 견학 30일 전에 신청해야 합니다. 해설이 꼭 필요한 외국인들은 한국에 들어오기 한두 달 전부터 국내에 머무르는 지인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먼저 보낸다고 해요. 견학일에 맞춰 관광 해설을 들으려는 거지요.”
고석정 입구를 벗어나 30분을 달린 차량은 첫 번째 방문지인 제2땅굴에 멈춘다. 이곳은 1975년 3월 19일 군사분계선 남쪽 DMZ에서 발견됐다. 한국군 지역에서 두 번째로 발견한 북한군의 기습 남침용 지하 땅굴이다. 경계근무 중 땅속에서 울리는 폭음을 듣고 수십일 간의 끈질긴 굴착 작업 끝에 1975년 3월 19일 발견했다고 한다.
1975년 3월 강원 철원군 북쪽의 군사분계선 남쪽 900m 지점에서 발견된 제2땅굴 입구.
제2땅굴은 높이 2m, 폭 2.2m, 길이 3.5m에 이른다. 아치형의 땅굴이라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으면 부딪혀 혹이 생길 정도로 돌이 삐죽삐죽 나와 있다. 폭은 두 사람이 겨우 교행할 정도로 비좁다. 북한이 군사분계선 남쪽 방향으로 1.1㎞ 남침했고, 그중 현재 땅굴 500m 까지만 관람 가능하다.
제2땅굴은 전쟁의 심각성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저 땅굴 파놓은 것이 얼마나 위협적일까 싶어도 실제로 그곳을 보고 또 걷노라면 얘기가 다르다. 땅굴을 도보로 20여 분간 돌아본다. 군데군데 다이너마이트를 썼던 흔적들이 눈에 띈다. 배수로에는 물이 졸졸 흐른다. 땅굴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이따금 널따란 공간이 나오는데, 땅굴 굴착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먹고 자고 휴식하던 장소와 굴착 작업 중에 땅굴 내부를 밝히고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를 설치한 장소라고 한다. 끝 모를 땅굴 안에서 서늘한 한기를 느낀다. 땅굴 밖으로 나오자 철원군청 의 문화해설사인 이영애 문화해설사가 북한이 땅굴을 팠다고 보는 세 가지 증거에 대해 설명한다.
“다이너마이트 장전공의 방향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한다는 것은 북에서 암반을 폭파하면서 갱도 공사를 했다는 뜻이에요. 갱도 배수로의 방향이 남에서 북으로 향하고 있는 건 북한이 갱도 공사 후 물을 빼내는 이중 작업을 피하려고 땅굴 100m당 약 3도가량 경사를 두고 공사를 진행했다는 의미고요. 땅굴 벽면이 그을린 자국 역시 북한이 폭발 공법을 이용해 남측으로 파내려왔음을 알 수 있죠.”
DMZ가 허리를 가로지르는 철원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서려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외지인을 사로잡은 철원의 매혹은 바로 남철원과 북철원의 짙은 녹음 속 대지를 눈으로 보는 순간일 것이다. 드넓은 들판을 지나 동송읍 중강리 끝자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DMZ 철책선 바로 앞에 세워진 철원 평화전망대다. 이곳은 중부전선의 DMZ와 북한 지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민간인이 들어갈 수 있는 최북단 지점이다. 50인승 규모의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오르자 물결치는 초록빛 수풀처럼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산지와 평야가 펼쳐진다. 이 안에도 생명과 질서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경계선 너머로 보이는 또 하나의 철원
“전망대 정중앙에서 1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세요. 저 멀리 붉은 점 두 개가 보일 겁니다. 북한군 초소에 세워져 있는 북한의 인공기랍니다.”
남한 측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 게양된 인공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관광해설사의 말처럼 손에 잡힐 듯 인공기가 게양된 북한군 초소가 보인다. 안타깝게도 휴전선은 평야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들판은 반쪽이 됐고, 용암지대의 원인이 된 분화구는 휴전선 북쪽에 숨어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용암대지는 평강고원이라고도 하는데 전체 면적이 600㎢로 서울 면적과 비슷하다. 백마고지, 피의능선, 낙타능선, 김일성고지, 북한 선전마을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 분단의 현실을 피부로 실감하게 된다. 관람객들은 “북한 땅 저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어 전후세대의 망향의 한을 시각적으로나마 달래준다”고 입을 모은다.
DMZ 철책선 바로 앞에 세워진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북한 측을 바라보고 있는 관람객들.
마지막 여정 월정리역으로 이동한다.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의 철마가 잠시 쉬었다 가는, DMZ 남방한계선에 가장 가까이 자리하는 마지막 기차역이다. 전쟁 통에 폐역이 된 이곳은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철의 삼각지에 위치한다. 원래 DMZ 안에 있던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지금의 장소에 재현해놓았다고 한다.
아담하고 소박한 월정리역을 통과해 그 아래로 뻗은 철길로 걸어 내려간다. 수십 년간 어느 기차도 지나가지 않은 철길이 보인다. 그 옆에는 고철이 되어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그대로 멈춰선 철마가 놓여 있다. 바로 역의 맞은편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통일을 기원하는 간절함을 담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철원(鐵原)과 가곡(佳谷)을 표시하는 월정리역 표지판도 보인다. 세월의 풍상으로 페인트는 벗겨지고 ‘月井里’라고 쓴 기차역 이름도 커다란 소나무에 일부분 가려져 있다.
수십 년간 방치되다시피 한 월정리역은 최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의 일환으로 경원선 복구가 논의되면서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 경원선 복구는 아직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듯싶다.
잡초 무성한 철길 옆에는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멈춰선 철마와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기대를 모았던 남북 철도회담에서 경원선 복구가 빠져 있어 아쉬움이 큰 건 사실이지만, 머지않아 가시화되겠지요.”
철원군 출신 김영애 문화해설사가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땅, 철원
태양이 한껏 고도를 높이는 7월의 평일 오후 무렵. 철조망과 ‘지뢰 주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군부대 초소를 빠져나오자 오래된 낡은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촬영 무대가 되어준 노동당사다. 노동당사는 지상 3층의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면적이 1850㎡에 이른다.
노동당사는 적막하다. 한때 공산당사로 맹위를 떨쳤다는 이 건물은 3층이 내려앉는 바람에 2층이 허물어져 지금은 건물의 뼈대만 남아 있다. 기둥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총알 자국은 노동당사가 있던 이곳이 6·25전쟁 때 얼마나 치열한 전투지였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1946년 북한 노동당이 지었으나 6·25전쟁 때 상당 부분 파괴됐다.
한 종교인이 노동당사 건물을 마주보며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를 드린다. 이따금 탄식 같은 기도 소리가 서늘한 공기를 가른다. 한때 노동당사의 정원이던 잔디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천천히 걷는다. 발밑에서 풀잎이 발에 밟혀 눕는다. 총알이 오고갔을지 모를 땅에서 초목은 아랑곳없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오고간다. 노동당사 맞은편 광장에선 매주 토요일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청정 철원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철원 DMZ마켓’ 이 열린다.
4월 한식이 지나야 철원의 어느 땅이든 눈이 녹고 긴 겨울이 끝난다. 날이 따뜻해지면 경계선 저 건너편에서 겨울 안개를 밀어내고 봄바람이 산마루를 넘어온다. 남과 북, 모두 같은 바람이 부는 하나의 땅덩어리다
노동당사 외벽에는 수많은 총알 자국과 포탄의 흔적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