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평양의 맥주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과거 북한의 음주 문화라고 하면 소주와 중국 술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최근 들어 맥주가 평양의 새로운 유행이 되고 있다. 일단 맥주 중에서 제일 유명한 브랜드는 대동강맥주다. 북한은 2000년 김정일 지시로 180년 전통의 영국 어셔양조장을 350만 달러에 사왔다. 영국 남부 윌트셔카운티의 트로브리지에 있던 이 양조장의 부품들은 북한에 실려가 2002년 대동강 맥주공장으로 바뀌어 생산에 들어갔다. 대동강 맥주공장은 현재 평양 사동구역 송신1동에 있고, 근로자는 1000명이 넘는다. 1차로 영국에서 설비를 들여온 뒤 2002년과 2005년에는 독일 설비로 시설 보강을 했다. 연간 생산능력은 5만 톤 정도다.
대동강맥주는 전문가들도 인정할 만큼 풍미가 깊다. 맥주의 보리 함량은 맛의 풍부함을 좌우하는 요소인데, 한국의 일반적인 맥주의 보리 함량이 4%라면 대동강맥주는 그 3배인 12%라고 한다. 대동강맥주는 황해도 보리, 양강도 홉, 대동강 지하수를 원료로 사용한다. 참고로 북한에선 캔맥주를 ‘떼기식 통맥주’라고 부르는데, 대동강 떼기식 통맥주는 2017년에야 비로소 생산되기 시작됐다.
대동강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5%부터 시작되며 1번부터 7번까지 다양한 종류가 생산된다. 번호마다 다른 도수와 맛을 가지고 있고 부가물 등의 구성이 다르게 돼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에 넘버링을 매기는 것은 러시아 맥주 발티카의 영향이다. 대동강 1번 맥주는 원엑스(몰트 원액 함량) 10%, 알코올 4.5%, 100% 보리 길금으로 생산된다. 2번 맥주는 원엑스 11%, 알코올 5.5%, 엿기름(맥아) 70%, 흰쌀 30%로 맛이 연하고 깨끗하며 거품성이 좋아서 북한에서 인기가 가장 좋다. 3번 맥주는 원엑스 11%, 알코올 5.5%, 엿기름 50%, 흰쌀 50%로 생산되는데 ‘흰쌀의 깨끗하고 상쾌한 맛과 길금의 부드러운 맛, 쓴맛이 조화롭게 겸비되어 유럽과 아시아의 맥주 풍격을 다 같이 갖춘 맥주’라고 소개한다. 이런 식으로 7번까지 종류가 다 다르다.
대동강맥주 생산공장이 생긴 뒤 평양 곳곳에 약 200개의 대동강맥주를 파는 술집이 생겨났다. 이런 맥줏집은 과거 동네 공원에 앉아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던 애주가들을 흡수하고 있다.
진짜 맛있는 대동강맥주를 마시려면, 전문 맥줏집보다는 ‘전문판매공’을 통해 집으로 배달시켜 먹는 것이 훨씬 낫다. 왜냐하면 평양의 200여 개 대동강맥주 전문집 중에는 냉동 보관 설비와 가스 주입 설비, 맥주 코크(맥주를 호스를 통해 뽑아내는 수도꼭지) 등이 없는 곳이 많다. 그래서 전문 맥줏집의 대동 강맥주는 집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일반적으로 최근에 건설된 미래거리와 려명거리의 맥줏집은 설비가 새것이기 때문에 맛이 좋다.
요즘 평양에선 돈만 있으면 서울 못지않게 각종 음식이 집으로 배달된다. 직장 생활을 하는 가정주부들은 늦게 퇴근하거나 저녁을 지을 수 없는 형편이면 특정 음식을 잘하는 ‘전문집’에 저녁 식사를 주문한다. 몇 시까지 배달해달라고 하면 시간도 비교적 정확하게 맞춰서 가져온다. 음식을 날라주는 배달원을 평양에선 ‘전문판매공’이라고 부르는데, ‘치맥’도 당연히 배달된다. 맥줏집에 붙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전문판매공이 평양에는 많다. 이들 덕분에 전화 한 통이면 집에 앉아서 ‘치맥’과 각종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
맛이 연하고 깨끗하며 거품성이 좋은 대동강 1번 맥주는 북한에서 인기가 가장 높다(위). 북한에선 캔맥주를 ‘떼기식 통맥주’라고 부른다. 대동강 떼기식 통맥주는 2017년부터 생산됐다.
비닐통에 맥주 밀봉해 냉동 보관
맥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판매공들은 평판이 좋아야 계속 고객 주문을 받기 때문에 프로 의식이 있다. 이들은 ‘경흥관’처럼 평양 시내에서 맥주로 유명한 전문집에서 가져다주거나, 미래거리와 려명거리의 우수한 맥줏집에서 맥주를 갖고 온다. 전문판매공들은 유명 맥줏집에 뒷돈을 주고 뒷문으로 맥주를 뽑아낸다. 보통 비닐통에 담는데, 뽑아낸 맥주를 곧바로 밀봉해 냉동 보관했다가 배달해준다. 대동강맥주는 1ℓ 배달에 북한 돈으로 5000~6000원 받는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배달 맥주를 병맥주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양에서 정식 포장이 되지 않은 ‘바라맥주’는 2018년 7월 기준으로 1ℓ에 북한 돈 1700원부터 2500원 사이이다. 장마당 환율이 1달러에 8000원 좌우인 점을 감안하면 1ℓ에 한국 돈으론 200~350원 정도인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눈엔 정말 어마어마하게 싼 가격이다. 그러니 평양에서 맥주는 허리띠를 풀고 실컷 마셔도 된다. 물론 대동강맥주는 일반적인 바라맥주에 비해 꽤 비싸다. 바라맥주로 가장 유명한 것은 경흥관맥주이다.
병맥주는 조금 더 비싸다. 북한에서 많이 마시는 병맥주로는 대동강맥주, 룡성맥주, 평양맥주, 제비 등이 있다. 개인들이 플라스틱 통에 담아 팔던 개인 제조 맥주에 자극받아서인지 2017년부터 평양 선흥식료공장을 비롯한 큰 식료공장들에서 ‘진달래’라는 상표를 붙여 1.2~2ℓ 단위로 플라스틱통에 담아 파는 맥주가 시중에 대거 풀렸다.
병맥주 가격은 대동강 약 5000원, 룡성 약 3000원, 평양 약 2500원이며, 진달래맥주는 1.2ℓ짜리 한 통에 6500원이다. 물론 이들 가격이 확실하게 고정된 것은 아니다. 전문 도매상점에선 이것보다 100~200원 정도 싸고, 소매상점이나 일반 맥줏집에선 또 100~200원, 심지어 500원 이상 비싸기도 하다. 대동강맥주가 생산 되기 이전인 1990년대에 북한을 대표하는 맥주는 룡성 맥주였고, 그 외에 봉학맥주, 금강맥주 등이 있었는데 이 맥주들도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긴 하다.
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