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통일 | 당신이 통일 주인공

낮에는 과장님, 밤에는 선생님?

전기기능장 김용남 씨의 멋진 이중생활

요즘 같이 더운 날 만국민의 피난처가 되는 곳이 있다. 백화점, 은행, 영화관 같은 대형 건물들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이 큰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탈북민 김용남 씨는 이런 대형 건물의 냉난방과 전기 시스템을 관리하는 ‘전기기능장’이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전기기사학원 강사가 된다. 낮에는 관리 과장, 밤에는 직업훈련 교사가 되는 김용남 탈북민을 만나봤다.

김용남 씨

브로커에서 탈북민이 된 용남 씨

사무실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빌딩 지하, 김용남 씨가 커다란 기계들을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다. 층층마다 안전한 전력을 공급하고 건물 전체의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용남 씨가 일하는 오피스텔에는 약 50여 개의 사무실이 있고, 건물을 사용하는 인구는 600여 명에 달한다.

용남 씨는 2007년 아내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북에서는 전기 용접기사로 8년간 일했는데, 그것만으론 먹고 살기가 어려워 장사를 했다. 당시 용남 씨는 돈이 되는 것은 뭐든 팔았다. 겨울에는 산토끼, 꿩, 노루, 조개, 명태, 잣 등을 팔았고, 여름에는 골동품을 비롯해 중국인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구해다 팔았다. 그렇게 중국을 오가던 용남 씨는 북한 사람들을 한국으로 보내주는 브로커 일을 했고, 용남 씨도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는 용남 씨가 중국에 있을 때 한국으로 보내줬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에 정착해 컴퓨터 교사로 일하게 된 탈북민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용남 씨에게 “한국에서는 컴퓨터를 꼭 알아야 한다”고 말해 6개월 동안 파워포인트, 엑셀, 워드, 전산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여권이 나온 뒤에는 한동안 주중에는 중국에, 주말에는 한국에 머물렀다. 예전처럼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다 달라는 요청 때문이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가 번져 이내 그만두게 됐고, 용남 씨는 전기기사학원을 다니며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실력과 의지를 어필하는 방법 ‘자격증

용남 씨의 첫 직장은 백화점이었다. 2010년 2월 전기기능사로 입사해 초봉 135만원을 받았다. 주말마다 틈틈이 공부해 따둔 전기기능사 자격증 덕분이었다. 이후 용남 씨는 자격증 공부를 계속했다. 한국 사람들 틈에서 자신을 확실히 어필하는 방법은 자격증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직까진 탈북민보다 한국 사람을 선호해요.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그렇다고 말로 저를 내보이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제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자격증을 딴 거죠.”

용남 씨는 입사 1년 반 만에 ‘전기기사 면허’도 땄다. 쉬면서 준비하는 사람도 1년 넘게 걸린다는 전기기사 시험을 직장생활을 하며 1년 반 만에 취득한 셈이다. 이에 친한 동료들은 그런 용남 씨의 노력을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월급 인상과 진급에서는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고, 때문에 몇 번은 큰 소리를 내며 싸우기도 했다. 그때마다 직속 상사였던 김병대 대리가 용남 씨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었고, 몇몇 어린 친구들은 용남 씨보다도 더 화를 내며 그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시설물관리실에서 업무 중인 김용남 씨 ▲ 시설물관리실에서 업무 중인 김용남 씨

얼마 전 용남 씨는 첫 직장에서 인연을 맺었던 한 친구와 다시 같이 일하게 됐다. 전 직장보다 월급이 30만 원이나 적은데도 용남 씨에게 기술을 배우겠다며 따라온 친구다. 그도 그럴 것이 용남 씨는 전기기사학원 직업훈련 교사이기 때문이다. 굳이 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용남 씨 곁에 있다 보면 용남 씨가 아는 것만큼은 가르쳐주지 않겠냐는 것이 그 친구의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좋은 사람들 덕분에 버텼던 것 같아요. 제 마음을 헤아려주고 함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죠. 그런 동료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직장생활에 적지 않은 위안이 돼요.”

‘유한공업고등학교에서 강연하는 김용남 씨 ▲ 유한공업고등학교에서 강연하는 김용남 씨

전기기사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김용남 씨 ▲ 전기기사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김용남 씨

김용남 학생, 메인 강사로 초빙되다

'냉난방 시스템을 점검 중인 김용남 씨 ▲ 냉난방 시스템을 점검 중인 김용남 씨 용남 씨가 학원 강사로도 일하게 된 것은 그의 노력과 의지 덕분이었다. 현재 용남 씨가 일하는 학원은 그가 직장생활을 하기 전부터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다녔던 곳이다. 용남 씨는 이곳에서 전기기능사, 전기공사기사, 전기기능장, 승강기기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학원에서는 그런 용남 씨를 눈여겨보다 보조 강사를 제안했다.

물론 보조 강사 역시 ‘직업훈련 개발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조건이 따랐다. 이에 용남 씨는 학원의 권유대로 교사 자격을 취득했고 현재는 여섯 과목의 4년 차 메인 강사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용남 씨는 지금도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전기기술사’와 ‘소방시설물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자격증만 20여 개이지만 강사로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꼭 필요한 자격증이라고 한다. 백화점에서 작은 건물로 직장을 옮긴 것도 같은 이유였다. 정시 퇴근을 해야만 강의가 없는 날을 이용해 자격시험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봄에는 다른 학원에서 제의를 받았어요. 기술전문학교인데 제가 회사 두 곳을 다니며 버는 만큼 월급을 줄 테니 오라고 하더라고요. 감사하고 솔깃한 제안이긴 했는데, ‘전기기술사’를 따고 싶어서 거절했어요. 전문 강사가 되면 제 공부는 할 수 없거든요.”

누군가의 이정표가 된다는 기쁨

용남 씨가 이토록 공부에 욕심을 내는 것은 언제나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삽질로 만 원을 버나, 책상에 앉아 만 원을 버나 똑같은 돈이라고 생각했지만, 같은 만 원을 벌면서도 누군가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더 큰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인드 때문인지 요즘 그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이 많다. 그래서 용남 씨는 하나센터와 일부 공업고등학교들을 방문해 자신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때마다 용남 씨가 강조하는 것은 “나만의 기술을 가져라”라는 것이다. 물론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꿈은 자유이긴 하지만, 많은 탈북민과 학생들이 겉보기에 좋은 직업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요즘 발에 차이는 게 박사, 교수잖아요. 제 직업이 기술 쪽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기술은 터득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일단 자격을 갖게 되면 확실하고 안정적이에요. 기술이 있으면 누구의 도움 없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나이 들어서도 공구가방 하나만 있으면 출장 다니면서 일할 수 있으니까요.”

통일 후 용남 씨는 남한에 있는 전기기술을 북한으로 옮겨가 북한쪽 전기기술협회 회장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때는 자신이 배워온 기술들을 북한 이웃들에게 가르쳐주며 남한처럼 편리하고 안전한 건물 시스템을 만들 생각이다. 그때까지 용남 씨는 지금처럼 낮에는 전기기능사, 밤에는 직업훈련 교사로 일하며 다른 누군가의 좋은 이정표가 되려고 한다.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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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행 : 2017-08-14 /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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