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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뿐인 북한의 무상치료제

이준혁(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맥 짚는 사진

남한은 유상치료제, 북한은 무상치료제다.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의료정책이 우월해 보이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조상들께서 가르쳐주지 않았겠는가. “국가는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더욱 공고히 발전시키며 예방의학적 방침을 관철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근로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북한 헌법의 보건정책 목표가 실제로는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다?

북한은 1980년 4월 채택된 인민보건법을 통해 △전반적 무상치료제 △의사담당구역제 △예방의학적 방침 △고려의학(한의학)과 서양의학의 배합 등의 보건의료정책 기조를 마련했다. 시·군 인민병원의 진료과목에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신경과, 가족상담과, 종합시험검사과, 약재과(약국), 고려수기과(안마), 고려내과(한방약), 고려침구과(한방침), 구강분원(치과) 등이 있다. 리(면)·동 진료소의 진료과목에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고려치료과, 구강과 등이 있다.

북한의 보건제도는 사실상의 예방의학이다. 김일성의 로작 ‘사회주의 보건제도의 우월성’이란 논문에서 “사회주의 의학은 본질에 있어서 예방의학”이라고 제시하였고 그것이 곧 정책으로 이어졌다.

'한약 북한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환자들에게 치료 목적의 뇌물을 받아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고, 해외에 진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작용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빈곤한 나라들에서 산부인과나 외과의가 ‘대접받는다’는 인식이 각인된 것처럼 일종의 ‘단기 탈북의사’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남한의 의료보건체계는 개방적이고 합리적이며, 의료서비스의 선택권이 보장되고 경쟁체제로 하여금 서비스의 질 향상에 집중한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북한은 환자의 의료선택권이 없어 거주지에 기반한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하고 상급병원 파송제를 실시하는 등 의료체계도 중앙집권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남한은 1953년에 국민의료법을 제정하고 양한방의 일원화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국가는 국민 개인이 소득의 일부를 분담하는 건강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이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거나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해 치료를 받는다.

죽었던 사람도 살려내는 북한 의술

'북한 옥류아동병원 의사와 간호사들 ▲ 북한 옥류아동병원 의사와 간호사들 2012년 어느 여름 밤, 평양의 서성구역 도로변에서 자전거를 치고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자전거에는 운전자와 한 청년이 짐칸에 타고 있었는데, 승합차에 치어 의식을 잃고 쓰러져 모란봉에 있는 평양 제1인민병원으로 실려 갔다.

구급과 당직 의사들이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해보니 피를 많이 흘려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일단 사체실로 옮겼다. 의사는 사고처리를 위해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두 명의 신분증을 꺼냈고, 자전거를 운전하던 사람은 보통강구역 당 조직 부원, 뒤에 탄 30대 청년은 평양시당 간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결과 40여 분만에 북한 최고위급 간부들만 진료하는 봉화진료소에서 구급차로 청년을 후송해 갔고, 깜짝 놀란 의사는 남은 남성을 사체실에서 꺼내 산소호흡기를 달아놓았지만 새벽 3시 숨을 거뒀다. 북한 의사들이 의사로서의 책임감보다 야근 시 겪게 되는 피범벅 사고를 ‘소름 돋는 일진’ 쯤으로 여기는 모습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사명감의 정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새벽 4시 봉화 진료소 구급과에는 뜻밖에 김정은이 찾아왔다. 김정은은 산소호흡기를 달고 의식 없는 청년을 가리키며 “어떤 일이 있어도 살려내라, 최 씨 가문의 대가 끊어지면 안 된다”고 지시했다.

봉화 진료소 의료일꾼들은 한 달 12일 만에 청년을 살려냈고, 안정치료를 거듭하다가 2013년 청년을 싱가폴로 보내 떨어진 고막수술까지 받도록 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명령이 죽었던 사람도 살려내는 힘을 보여준 셈이다. 죽다가 살아난 30대 청년은 바로 북한의 ‘백두혈통’을 지키는 문지기의 화신 최룡해(당시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외아들 최현철이었다.

휘발유 값을 내야 출동하는 119구급차

'지난해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구급차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 ▲ 지난해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구급차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119구급차가 사람이 죽어가니 길을 내라고 고성을 지르며 내달리고, 앞서있던 차들이 “생명이 위급하구나” 하고 비켜주는 감동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서해 섬에서는 한 어르신이 딸의 출산이 임박하여 119헬리콥터를 타고 육지에 도착한 후 사실대로 말해 벌금을 문적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북한에 있을 때 필자는 남조선이 돈이 판치는 사회라고 들었다. 하지만 119구급차가 무상(국민건강보험으로 대치)이라는 사실과, 실손보험 이용 시 치료를 받고 진료비를 보험회사에 청구해 80%를 돌려받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에도 큰 병원에는 구급차가 2~3대씩 있다. 그러나 절대 무상치료가 아니다. 90년대 초까지는 어느 정도 무상으로 운영됐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는 휘발유표 1장(약 20달러)을 지불해야 이용할 수 있다.

소문난 평양산원도 기존에는 구급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90년대 이후에는 휘발유를 준비해놓아야 온다고 하여 “아기를 임신하지 말고 휘발유를 임신해야 오는 구급차”란 시대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제도는 무상인데 실생활에서는 유상이라고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하는 이야기다.

돈의 두께는 생명의 길이?

'약 제조 북한에도 100살 장수자가 있다. 장수는 북한 보건제도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의 명이 타고난 운명이라는 것을 의심할 바는 없지만, 100세 생일을 맞으면 노동당의 명의로 ‘100세 선물상’을 차려주며 장수자의 생명 길이를 체제효과 홍보용으로 도둑질한다.

북한은 지역별 의료체계로 운영된다. 중앙병원에 가려면 주거지 말단 병원에서부터 ‘파송증’을 받아야 한다. 주거지에 등록된 사람은 자기 주거지에서 치료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있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선 치료, 후 파송증을 제출하는 특혜를 받는다. 권력자나 돈 있는 사람들은 규정 밖의 의료범주에 속해있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암’과 같은 불치병 앞에서는 돈을 다 쓰지 못하고 죽는다는 서러움에 두려움은 배가 된다.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은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한 달 만에 사망하기도 한다. “돈이 많아 걸린 ‘암’은 시한부라는 구매속도도 빠르다”는 비아냥 유머가 생겨난 이유다.

북한에서도 약국에 가면 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는 비싼 의약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병원에 입원해도 의사는 처방만 해줄 뿐, 약은 개인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때문에 돈이 있는 사람들은 의사들의 질 좋은 서비스를 받지만 서민들은 민간요법이나 아편 같은 순간의 고통을 멈추는 ‘마약’에 의존하는 일이 많다.

남북한의 평균수명만 봐도 두 사회의 ‘돈 두께’가 확연하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남조선은 아프면 돈이 많이 들어 병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많다”고 선전한다. 북한의 최고위급 전용병원인 ‘봉화진료소’와 군 장성들을 대상하는 ‘어은병원’, ‘조선적십자종합병원’에만 있는 MRI첨단의료기가 2000년대 남북경제협력이 활성화될 때 한국에서 기증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의료 수준은 곧 국가 경제력 높이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무상치료제는 사실상 소멸된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이 인체에 필요한 음식을 섭취해야 건강한 몸을 유지한다는 것은 세 살 난 아이도 안다. 고로 경제의 피폐함이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는 것도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북한에서는 다이어트 할 필요가 없다. 남한 다이어트맨들이 꿈꾸는 ‘몸매’를 그냥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북한 체험 한 달이면 다이어트에 실패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도 질병예방을 하고 있지만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식수의 소독도 엉망이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오염된 하천에서 잡은 물고기가 시장에서 위생검역도 받지 않고 버젓이 파는 이곳에서, 오염된 물고기를 먹고 병에 걸리는 것은 돈이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다.

'평양 옥류아동병원 전경 ▲ 평양 옥류아동병원 전경 평양에서는 겨울이 오면 더 많은 눈이 내려 차사고 열풍이 일어나길 바라는 차 수리 업체들의 고약한 심리도 작용한다. 북한 의사들이 북한의 경제가 피폐해 환자가 많아지는 것을 돈 벌이 기회로 여기지는 않는지 내심 걱정도 되는 이유다.

해외에 파견되는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벌어온다는 것을 잘 아는 북한 의사들이 ‘무상치료’보다 ‘유상치료’를 더 선호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북한은 정책적으로 ‘세금 없는 나라’, ‘무상교육’, ‘무상치료’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무너진 정책 앞에 돈을 받고 치료를 공식적으로 해주길 바라는 의사들의 절실한 요구를 언제까지 외면하려는지 난감하기만 하다.

남북한 의료보건 통합이 가져다줄 생명의 길이

한민족이라 할 때 반만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조상들은 분명 하나의 핏줄로 이어지고, 하나의 언어를 쓰며 사랑과 정으로 살았다. 숱한 외세침략을 몰아내며 강토를 지키고 민족을 지켜온 조상들 앞에 후대들이 이어가야하는 것은 강토와 더불어 의료기술의 발전도 아닐까 싶다.

경제를 외면하고 국방에만 치중해 병들고 지쳐가는 북한 주민들의 ‘치료받을 권리’가 사라져가는 현실 앞에, 남측이 제의한 군사당국자회담을 출발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응답했으면 한다. 평화로운 한반도의 좋은 그림을 그리자는 남한의 성의 있는 노력에 북한은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북한 주민들에게 ‘좋은 약’인 ‘평화’를 선사해야 한다.

70여 년간 본의 아니게 갈라진 두 강토에서 살아가는 두 나라 민족이 아닌 ‘한민족’, 남북한 의료보건의 통합이 가져다 줄 민족구성원들의 생명의 길이를 과연 언제쯤 잴 수 있을까? 통일도 이제는 ‘마하속도’로 찾아올 때가 된 듯하다.

<사진자료: 연합뉴스>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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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행 : 2017-08-11 /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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